영광교회 이야기

첫 만남

어저나 2009. 4. 14. 23:10

1997년 4월 수요일 어느날이었다. 그 때 대구복지교회 부설 열린선교원(장애인 주간보호센터)과 열린문 열린 마음 선교회 간사로 교회를 섬기고 있었다. 매일 오가는 대구대학교 부설 특수학교에 교회가 있다는 사실도 전혀 모르고 있었으며 그 교회가 특수학교의 모태라는 사실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한 상태였다. 어느 날 담임목사님이 '영광교회' 수요일에 설교를 부탁하셨다. 당연히 강도사인 저는 하나님 말씀전하는 것이 너무나 당연했기에 하나님 말씀전하러 갔다.

 

교회를 찾는데 시간이 좀 걸렸다. 그 때 사범대학관 2층에 있었기에 잘 보이는 곳에 있었는데 교회의 표시나 간판이 없었기에 그랬던 것 같다. 찬양 소리가 울려 나왔는데 참 아름다웠다. 제법 큰 장소였는데 40명 정도 찬양을 드리고 있었다. 처음 인사한 사람은 이대희형제(현재 GBT 선교 훈현 중)와 인사했고 말씀을 전하고 예배가 끝이 났다. 처음 인상이 너무 좋았다.

 

얼마 후 한 형제(김영대형제 당시 종교부장)가 다가왔다. 그리고 수고했다고 인사를 하고 감사하다는 이야기를 하고는 힌 봉투를 건냈다. 잠시 어색했지만 받는 것이 도리라 생각하고 받았다. 돌아오면서 흰 봉투 안에 들어있는 3만원,너무도 소중하게 느껴졌고 감사했다. 어쩌면 이것이 영광교회와의 13년이 지난 지금까지의 연결고리가 아니었나 생각한다.

 

그 후 목사님은 광명학교 황재환선생님을 소개해 주셨다. 처음 만났을 때 무지 긴장 되었다. 그 때 34살 작은 나이가 아님에도 낮을 가리는 성격때문이었던 것 같다. 선생님은 저에게 교회를 같이 섬겨 주시기를 원하셨고 대구복지교회로서는 장애인 선교사로 파송하였다. 주일과 수요일 두 교회를 오가며 말씀 사역과 장애인 선교 사역을 병행하게 되었다.

 

주일 날 교회에는 많은 대학생들이 있었다. 그 당시 사범대학과 재활과학대가 있어서 교회에 시각장애인 학생에게 말씀을 공부시키고 어러가지로 교회를 섬기고 있었다. 시각장애인 대학생도 많이 있었다. 하경혜(현재 CCM사역자)와 성가대의 찬양소리는 천사의 소리와 흡사했다. 예배 드리면서 감격에 빠져들었다. 황재환 전도사님은 양쪽 눈이 보이시지 않고 한쪽 팔이 없는데도 찬송가 반주를 해내셨다. 하옇튼 영광교회에서 예배드리면서 하나님의 은혜를 전한 것보다 오히려 더 층만히 받은 둣 했다.

 

빠듯한 시간들 이었지만 하나님을 섬기면서 이곳에서 평생 사역자가 되고 픈 꿈이 내 가슴속에 조금씩 조금씩 싹이 트는 듯 했다. 그 당시 영광교회 주일 오전 9시 30분에 예배를 드렸는데 말씀 사역자가 없었다. 교회는 대학생과 광명학교 학생들로 구성되어 재정적인 능력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복음에 대한 열정과 사랑과 섬김의 정신으로 모두가 하나되어 주의 교회를 섬기는 것을 보고 깊은 감명에 젖어들었다.

 

지금은 재정적인 부분과 교회의 쳬계가 잡혀가고 있지만 그 당시 훨씬 열악한 환경이었지만 재미있었고. 학생들고 많았다. 지금은 토요 휴업일일이 있어 학생들이 집으로 다 돌아가지만 그 때는 방학을 제외하고는 늘 학사가 시끌법적했다. 주일 날 예배드릴 때도 지금보다 더 먾은 사람들이 예배를 드렸다. 지금도 행복하지만 그 때도 행복했다. 말씀전하고 함께 할 공동체가 있엇던 것은 하나님의 큰 축복이었다. 하나님이 인도하여 주신 축복의 통로였다. 현재 내가 있기에는 바로 그 때의 활기찬 영광교회가 있었기 때문이다. 이곳에서 매년 새로운 사럼을 만나고 떠나 보낸다. 이제는 들어오는 이가 줄어들었다. 하지만 하나님이 하시는 일에는 뜻이 있다고 믿는다. 이제 다시 한 번 공동체에 대한 열정을 불 태운다. 하나님의 능역을 사모하며 주님앞에 다시 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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