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광교회 이야기

영광교회 이전

어저나 2009. 6. 22. 17:35

 ♡ 영광교회 이전 이야기

 

 

 

 

 

 얼마 전 아는 전도사님과 통화를 한 적이 있었습니다. 교회 사역에 대해 이야기하다가 “아직도 영광교회에 계세요?” 그 이야기를 듣는 순간 내가 영광교회를 섬긴지 정말 오래 되었는가?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생각해 보니 이제 만 13년째 섬기고 있을 뿐인데... 그때 지나간 시간 영광교회와 함께 순간을 다시 한 번  되 내어 보게 되었습니다. 마치 떠날 사람인 된 것처럼 이것, 저것 내 생각 속에 곱게 접혀있던 것들이 하나 둘 떠오르게 되었습니다. 다 잊혀져 있었던 게 아니었습니다. 언제가 생각날 때마다 내 기억의 장소에서 꺼내면 다시 다 떠오르나 봅니다. 아련하게 사람들이 가장 많이 생각납니다. 보고 싶습니다. 어려운 시간 주님의 나라를 위해 헌신하던 사랑스런 젊은이들이 제 가슴 속에 떠나지 않고 있었습니다.


영광교회! 지금도 함께 하고 있으며 앞으로 얼마나 오래 함께 할 지 내 자신도 모르고 있으며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기대하고 있을 뿐입니다. 뒤를 돌아다보면 나쁜 일보다 좋은 추억과 떠오르게 하시는 하나님께 감사들 드립니다. 그 순간 아픔의 시간이었고 힘든 시간이었지만 소중하게 생각나게 되는 것은 주님의 은혜라 생각합니다.


1997년 4월 조금 춥게 느껴지던 봄 날, 조금은 어두운 교회, 저녁 시간이라 곧 어두어지던 때라 저에게는 모든 것이 조금 어둡게 보였습니다. 시각장애인들이 있는 교회라 그런 생각이 들었나봅니다. 지금 돌아다보면 전혀 그렇지 않았는데 말입니다. 그때는 교회가 사범대학관 2층(현 덕희학교)에 있었습니다. 학교의 중심이 되는 곳이라 찬양의 소리가 학교 내에 들려지게 되어 보기가 참 좋았습니다. 그 교회에 한 번의 사역이 아니라 매 주일 섬기게 되었습니다. 너무 기뻤습니다. 부족한 사람을 장애인을 위한 사역자로 목회자로 불러 주심에 대해 너무나 감사했습니다. 많은 대학생들과 학생들이 함께 하고 있어 경제적인 부분은 전혀 걱정이 되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13년을 달려왔습니다.


학교의 사정이 변화되어졌습니다. 사범대학이 경산으로 이주하고 그 건물에 덕희학교(정서장애)와 보명학교(정신지체)가 들어오기로 결정되었고 학교가 장애인이 쓰기에 불편함이 없도록 리모델링을 하게 되었습니다. 문제는 교회가 갈 곳이 없어진 것입니다. 지금도 가슴이 아픈 것은 2003년 1월 신년 첫 주일 예배드릴 때입니다. 그날 바람이 매섭게 불던 추운 날이었습니다. 여느 때와 같이 교회에 도착했을 때, 교회가 너무 추웠습니다. 전기가 단전되어 온풍기를 쓸 수가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모두 손을 호호 불며 신년예배를 마쳤습니다. 갈 곳도 정해지지 않는 2003년은 그렇게 시작되었습니다.


곳곳에 건축물이 널려 있고 못들이 비져 나온 것이 많이 있어 통행의 불편함은 이루 말할 수 없었습니다. 특히 앞 못 보는 장애인이 다닐 수 있는 길이 아니었습니다. 지금 생각하니 너무 슬프네요. 황재환 전도사님과 결정을 내린 곳은 특수학교 학생들이 사용하는 식당 자리였습니다. 교회의 모든 물품과 장의자는 구 광명학교(지금 추모공원 자리)의 창고에다 차곡 차곡 쌓아놓은 뒤 성찬상 하나만 가지고 특수학교 학생들의 식당에서 2003년 3월 첫 주 수요일부터 예배를 드렸습니다. 한 번 세콤의 오작동으로 아무도 들어갈 수 없어서 소리 예술단 사무실에서 예배를 드리기도 했습니다.


시련과 어려움에 있었지만 다들 감사한 마음으로 하나님께 예배를 드렸습니다. 2004년 11월에 구내식당이 문을 닫은 자리에 황재환전도사님이 법인에 청원하여 그 자리에 예배처소를 꾸미게 되었습니다. 저희는 꿈이 부풀어 있었고 우리가 직접 페인트도 칠하고 교회를 아름답게 만들려고 노력했습니다. 그리고 2004년 11월 첫 주일부터 예배를 드리게 되었습니다. 너무 감격적 이었습니다. 아무도 통제하지 않는 우리 교회가 만들어진 것이었습니다. 우리는 고무되어 특수학교 뿐 만 아니라 대명시장에도 복음을 전하려고 애썼습니다. 정말 그 넓은 대구대학교 대명동 캠퍼스에서 가장 끝자락 물어 찾아와야 할 자리에 교회가 자리를 잡게 되었습니다. 그래도 우리는 하나님께서 학교와 지역 사회의 통로를 우리에게 주신 것은 대구대학교와 지역 사회를 향한 하나님의 뜻이라 생각했습니다.


가장 큰 문제는 화장실이었습니다. 화장실에 갈려면 대학교 도서관까지 가야했습니다. 불편함을 잊고 그렇게 얼마간을 지났습니다. 다행히 대학을 졸업하고 사회에 진출한 형제 자매들의 십일조와 선교헌금이 들어왔습니다. 저도 직장에 다녔기에 재정적으로 힘들지 않았습니다. 저희들은 그래도 도움받지만 돕는 교회였습니다. 화장실을 만들고 그해 박세흠, 고강순 형제(지금은 집사)와 함께 교제할 수 있고 식사를 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었습니다. 지금도 그 수고로움에 감사하고 있습니다. 아무튼 어려움 없이 예배처소로 사용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2008년초 부터 들리는 이야기는 이곳도 리모델링이 되면 교회가 설 자리가 없어진다는 위기감이 저희를 힘들게 했습니다. 그래서 기도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그 때 황재환전도사님(그때 광명학교 교장)께서 재단에 강도 높게 말씀하셨습니다. 이 학교는 원래 이영식목사님이 기독교 정신으로 세우셨고 학교 정관에도 기독교 정신과 대한민국 교육정신에 입각하여 세워진 학교이기에 교회는 당연히 있어야 하고 각 학교는 기독교 정신에 입각하여 예배드리는 것이 마땅하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마침 재활과학대가 경산으로 이전할 계획을 가지고 있었기에 재활과학대가 이전하면 그 건물에 교회를 세우게 해 달라고 힘주어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2008년 2학기에 재활과학대 이근용교수님이 교회에 출석하시면서 교회이전에 탄력이 붙게 되었습니다. 여러 말이 오가는 중에 건물의 5층이 우리에게 주어진 것을 2008년 12월 둘째 주에 확신하게 되었습니다.


해가 넘기고 2009년 학교에는 예상하지 못한 일이 많이 생겼습니다. 순조롭기만 하던 이전 계획이 학교의 상황이 변함에 따라 또 한 번 흔들리게 되었습니다. 우리의 기도는 다시 한 번 뜨거워졌습니다. 밀고 당기기가 계속 되던 중 황재환 전도사님 이근용 교수님과 저는 이제 이전하지 않으며 계속 힘들 것이란 판단아래 이전을 결심하게 되었습니다. 5월 28일과 재단 사무국에서 이전을 결정하고 이근용 교수님이 대학과 협의하여 주방시설을 먼저 설치하게 하셨습니다. 6월 2일에 교육관이 될 곳에 먼저 수돗물을 들어오게 하는 공사를 하였습니다. 6월 7일 주일날 이전하기로 결정하였습니다. 강대상, 장의자, 피아노, 책 등 이 많은 것을 재활과학대 5층까지 어떻게 운반해야 할 지 막막했습니다. 사실 믿음에 의한 의지였지 제대로 된 계획은 전혀 없었습니다. 경대 기독센터 청년들을 불러 모으고 최대한 많은 사람을 모으기로 했습니다. 당일 날 이현미 간사님의 친구 외에는 아무도 없었습니다. 하옇튼 예배를 마치고 결의를 다지는 때 기독센터 형제들이 무려 5명이나 함께 해 주었습니다.


박세흠, 고강순 집사님은 그냥 들어 옮기기엔 너무 힘들다 하시며 도루레를 이용해야 한다면 우리들의 공구를 개발하였습니다. 아마 이걸 만들지 않았으며 옮기는 데 일주일은 족히 걸렸을 거라고 추측됩니다. 그날 때맞추어 박세흠 집사님 아버지의 트럭이 있게 되어 천군만마를 얻은 듯했습니다. 그래도 쉽지 많은 않았습니다. 장의자 옮기는 일이 쉽지 않았습니다. 땀이 온 몸에 베여났지만 모두들 웃는 얼굴로 힘든 기색 없이 다 하였습니다. 피아노는 원래 전문가에게 맡겨야 하는데 한 층당 5만원이랍니다. 피아노 두 대를 ... 우리의 결정은 우리의 힘으로 하는 것이었습니다. 물론 다 완수했지요. 저녁 8시가 되었어야 마무리를 했습니다. 그래도 아직 완전히 다 하지 못했습니다. 수고해주셔서 감사합니다.(고강순 박세흠, 오병희 집사, 엄성은, 최반석 형제, 기독센터의 형제님들, 지오간사님, 이현미간사, 한혜정, 보이카자매, 저의 아내 사랑하는 두 아들 모두 감사합니다. 빠진 분들 연락주세요.) 7일에 교회의 전기공사를 마무리했습니다.


6월 10일 수요일 함께 예배를 새 예배당에서 드렸습니다. 길이 익숙지 않아 불편했지만 옛날 이스라엘 백성들이 성전에 올라 갈 때 시편 찬송을 부르면서 갔듯이 우리도 찬양하며 가자고 했습니다. 찬양하면서 학교 운동장을 지나가며 너무 기쁘게 하나님의 전에 나아갔습니다. 14일 첫 주일 예배를 드렸습니다. 아직도 채워야 할 빈 자리가 너무 많았습니다. 이제 우리의 기도와 헌신이 이 자리를 채우리라 믿고 있습니다.


15일 금요일에 이춘권장로님(이범희 아버지)께서 헌납하신 강대상이 교회에 들어왔습니다. 그전에 쓰던 강대상은 이태영 장로님이 장립 받은 것을 기념하여 교회에 헌납한 것이라 계속 가지고 있었습니다. 지금 교회에서 너무 커 맞지 않아 작고 아담한 것으로 장만하게 되었습니다. 어려움 중에라도 작은 교회를 위한 귀한 헌납 잊지 않고 기억하겠습니다. 이제 교회는 더위와 싸움을 할 것 같습니다. 5층 맨 윗 층이라 매우 덥습니다. 물론 하나님께서 주시겠지만 사람을 통하여 이루시는 것이라 쉽지 만은 아닌 것 같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이 예비하신 곳이라 하나님의 응답이 곧 이루어지리라 믿습니다.

 

 

2009년 6월 7일 이사가는 주일 날 오전예배입니다. 설교는 '이 산지를 내게 주소서' 인데 우리가 가는 곳이 5층이고 제일 높은 곳입니다. 그리고 분명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곳이기에 우리가 믿음으로 나아가야 함을 설교했습니다.

 

 

우리 교회에서 교육관이자 사랑방이었습니다.  박세흠, 고강순 그리고 제가 만든 곳입니다. 사랑과 기도가 있었던 곳입니다.

 

 

제가 보이네요. 그리고 제일 왼쪽의 자매가 보양다와(보이카) 몽골에서 제일고등학교에 유학 온 자매입니다. 그옆이 이현미 간사님입니다. 몽골에서 3년간 선교사 자녀의 교육을 도왔습니다. MK사역을 했습니다. 선교사로 나갈려고 준비하고 있습니다.

 

 

정말 수고한 형제님들 아마 정말 힘들거라고는 상상못했을 것입니다.

 

 

 

지훈이가 보이네요. 지훈이는 21살 입니다. 시력도 좀 나쁘지만 시야가 좁습니다. 보통 우리가 130도 정도 본다면 90도 직선방향으로만 볼 수 있습니다. 자신도 장애인이지만 동료들을 많이 도와주고 있습니다. 찬양도 정말 잘합니다. 그런데 아직 예수님은 영접하지 못했습니다.

 

 

옮기기 전의 모습입니다. 멀타미디어 강의실로 사되었던 곳입니다.

 

 

 

6월 10일 옮기고 첫 수요 예배입니다. 허경호선생님(광명학교 안마 담당교사)와 이현미 간사님이 찬양을 인도하고 있습니다.

 

 

광명학교(시각장애인) 학생들 입니다. 호준이가 하품하고 있네요. 2007년에 처음에 교회왔을 때 얼마나 돌아다니는지 이제 적응해서 잡니다.^^건욱이, 이준휘, 장준휘, 박영재, 소라, 은혜, 해은, 보람, 민혁, 장완(광명학교 학생회장), 보옥(안 보이네요 작아서), 승만(종교부장), 안승철형제 다들 사연이 많이 있어요... 장애를 갇고 산다는 것이 힘든 일이죠. 근데 다들 표정이 밝습니다.

 

 

 

한혜정 대구 예술대 2학년입니다. 찬양도 잘하고 피아노도 보통 실력이 아닙니다.

 

 

한올이(래브라도 리트리버)입니다. 시각장애인 안내견입니다. 방송에 많이 나오죠. 거의 우리 교회에서 형제입니다. 정말 똑똑한 녀석입니다. 삼성 화재에서 후원하고 있는데 한 마리 교육시키면 8,000 만원 정도의 경제적 가치가 된다고 합니다. 절대 사람을 공격하지 않습니다. 혹 지날 때 보더러도 함부로 대하지 마시고 먹을 것 함부러 주지 마세요.

 

 

이전한 교회에서 6월 24일 주일 예배입니다." 광야에서의 축복을 기억하라!" 제목으로 말씀을 전했습니다.

 

 

전 교회랑 분위기가 확 달라졌습니다. 우리 성도들이 이것을 다 보지는 못하지만 마음으로 보고 있고 기뻐하고 있습니다.

 

 

워낙 잘 꾸며져 있던 곳이라 그림으로 강대상 앞면을 장식해도 멋있습니다. 이 그림을 얻기위해 한 일주일 고민했습니다. 

 

주일 오후예배입니다. 고강순집사님, 이현미 간사님이 찬양을 인도하고 있습니다.

 

 

결이 입니다.(고결입니다.) 고강순 집사님의 첫째 딸 예쁘죠. 우리의 꿈이자 미래입니다. 엄마한테 삐치면 안고 있는 강아지랑 말하며 놀고 한답니다.동생이 율이가 생기고 아빠가 안동자연고등학교에서 교사로 있어서 요즘 나름대로 힘드다나요...^^

 

박유준 박세흠 집사님의 맏아들입니다. 귀엽죠. 놀라운 언어 능력이 있어 저를 간혹 놀라게 하기도 한답니다.

유준이도 동생 주이가 생겨서 나름 힘든다고 합니다. 믿음으로 키우고 있는 가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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