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림절과 3. 1운동 “잊지 말고 기억합시다.”(에9:20~32) (2009. 3. 1)
부림절은 이스라엘의 절기 중 모세 오경에는 기록되어 있지 않지만 유대인 사는 곳이면 어느 곳이나 지켜지는 절기입니다. 부림절은 이른 봄에 지켜지며 2월 말에서 3월 초 중에 지켜지고 있습니다. 이 날은 특히 성경 중 에스더서를 읽으며 유대민족의 애국자인 에스더와 모르드개를 생각하고 조국애를 다짐하는 날입니다. 어린이들에게는 에스더의 이야기를 들려줌으로써 목숨을 걸고 자기 민족을 구해낸 에스더의 애국 애족심을 가르칩니다. 이날에는 ‘하만의 귀’라고 불리는 삼각형 모양의 과자를 만들어 먹으면서 하만을 조롱하기도 합니다. 부림절이 세속적인 절기였기에 탈무드에서는 “부림절에는 모두가 취하여서 ‘모르드개에게 축복’과 ‘하만에게 저주’를 서로 혼동해도 무방하다.”는 기록까지 등장할 정도입니다.
이 날에는 이웃, 친척, 친지들과 선물을 교환하기도 하고 포도주를 마시며 집집마다 웃음꽃을 피우며 지내는 것이 특징입니다. 그리고 어린이들에게 이 날은 1 년 중 가장 기쁜 날로 이스라엘의 모든 학교나 유치원 등에서 가장 행렬, 연극, 춤 등의 다채로운 행사가 개최됩니다. 예쁜 공주의상, 카우보이 차림, 옛 로마 호민관의 관복, 색색의 가면 등을 알맞게 차려 입은 어린 아이들이 온 거리를 누비며 퍼레이드를 벌일 때면 이 축제는 절정에 이릅니다. 모르드개와 에스더의 가면이 가장 많은 인기를 끕니다.
유대인들은 회당에 모여 에스더서 두루마리를 낭독하는데 이때 유대민족을 몰살시키려다 도리어 자신이 죽임을 당했던 하만이라는 이름이 낭독될 때마다 모든 참가자들은 각자 준비해온 도구들을 이용해서 시끄러운 소리를 내고 발을 구르면서 야유를 보내기도 합니다. 참고로 에스더서에는 모두 54번에 걸쳐 하만이라는 이름이 등장합니다. 지금도 예루살렘의 명동인 ‘벤 예후다’거리에는 부림절이 되면 울긋불긋한 옷, 머리에 쓴 마스크 등으로 길거리 전체는 마치 거대한 카니발을 연상케 합니다. 지나가는 사람마다 플라스틱 망치를 들고 있고, 서로 머리를 망치로 때릴 때 마다 '삑' 소리가 나며 때린 사람이나 맞은 사람이 함께 어우러져 웃고 있었습니다. 참 즐거운 축제의 장입니다.
에스더서(9:22)에 의하면 부림절은 슬픔이 기쁨으로 초상날이 잔칫날로 바뀐 날입니다. 모르드개는 이 날을 서로 음식을 나누며 가난한 사람들에게 선물을 주는 명절로 정하였습니다. 이 전통에 따라 유대인들은 부림절이 되면 최소한 두 사람 이상에게 음식을 마련하여 보내며, 두 명 이상의 가난한 사람들에게 돈을 보내는 풍습을 지킵니다. 이 풍습은 중요한 의미를 지는데 가난한 사람들에게 돈을 보내는 유대인들은 유대인의 생존이 어느 정도는 자기가 보내는 구제금(쩨다카) 에 달렸다는 것을 깨닫기 때문입니다. 오늘날도 수 만 명의 유대인들이 러시아에서 이스라엘로 들어오고 있으며 이들의 생존은 전적으로 이스라엘이나 디아스포라에 흩어져 있는 다른 유대인들에게 달려있습니다.
유대인들은 천문학적 숫자의 구제금을 마련하여 동료 유대인들을 돕습니다. 랍비들은 부림절에 가난한 사람을 위해 바치는 "구제(쩨다카)"를 출애굽기 30장 12절의 성전세(Temple Tax)와 비교하여 설명하기도 합니다. 부림절이 들어있는 아달월 첫 주가 되면 첫 번째 맞는 샤밧(안식일)에 이 달이 반 세겔에 해당하는 성전세를 내는 달인 것을 광고합니다. 성전이 없는 유대인들은 가난한 사람을 위하여 구제금을 준비하는 것으로 성전세에 대한 의무 이행을 완수합니다.
부림절의 배경과 내용
1. 역사적 배경
유다 백성들이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가고 얼마 후 바벨론은 페르시아(메대, 바사) 제국에 의해 멸망을 받았기 때문에 유대인들은 페르시아의 지배를 받게 되었습니다. 그들은 소수의 민족이었지만 하나님의 선민이라는 자긍심과 아울러 하나님은 은혜 아래 그의 뜻을 따르고자 노력하고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예정하신 바벨론 포로 70년의 역사가 끝나고 1차로 예루살렘의 귀환이 이루어지고 제 2차 예루살렘 귀환의 사이에 일어난 사건으로 페르시아 아하수에로(크세르크세르)왕 당시의 일입니다.
2. 왕후가 된 에스더
페르시아 왕 아하수에로는 모든 문무백관을 모으고 잔치하는 자리에서 왕후 와스디의 아름다운 자태를 보여주려고 왕후를 불렀습니다. 후원에서 부녀들과 잔치를 하고 있던 왕후는 왕의 부름을 무시하고 왕의 앞에 나아오지 않았습니다. 분개한 아하수에로 왕은 왕후를 폐위시키고 새로운 왕후를 간택하게 되었습니다. 이 때 페르시아의 도성 ‘수산’에 살고 있던 유대인 모르드개의 조카 ‘에스더’가 왕후로 간택되어 페르시아의 왕후가 되었습니다.
3. 모르드개가 왕의 생명을 구함
하루는 왕의 두 내시가 왕을 모살할 음모를 꾸미는 것을 모르드개가 엿듣고 왕후 에스더에게 알려 아하수에로 왕은 생명을 구하게 되었고 두 내시는 나무에 처형당하게 되었습니다.
4. 하만과 모르드개
후에 아하수에로 왕이 ‘하만’이라는 자를 높여 모든 대신 위에 세우게 되었는데 모든 대신들과 왕의 신복들은 하만에게 꿇어 절하였는데 모르드개는 꿇지도 아니하고 절하지도 아니하였습니다. 이에 화가 난 하만은 모르드개를 죽일 계략을 생각하다가 모르드개 뿐만 아니라 모르드개가 속한 유다인 전체를 멸하려는 음모를 꾸미고서 유다인을 죽일 달을 제비뽑았는데 그 달이 ‘아달월’ 곧 12월이었습니다.
5. 하만의 참소
간략한 하만이 아하수에로 왕에게 나아가 참소한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어느 한 민족이 왕의 나라 각 도의 백성 중에 흩어져 거하는데 그 법률이 만인보다 달라서 왕의 법률을 지키지 아니하오니 용납하는 것이 왕에게 무익하니이다. 왕이 옳게 여기시거든 조서를 내려 저희를 진멸하소서....” (하만은 ‘아말렉’의 자손 아각 왕의 후손입니다. 모르드개는 베냐민 지파 기스의 후손입니다. 그들은 원한 관계에 있습니다. 사울 왕이 ‘아각’ 과의 전쟁에서 그 나라를 크게 멸한 적이 있습니다.)
6. 위기에 처한 유다인
왕은 인장 반지를 손에서 빼어 하만에게 주며 “너는 너의 소견에 좋을 대로 하라.”는 영을 내리게 되었고 유다인들의 대적 하만의 소집한 서기관들에 의해 각 도의 방백과 각 민족의 관원에게 아하수에로 왕의 이름으로 조서를 쓰되 각 도의 문자와 각 민족의 방언대로 쓰고 왕의 반지로 인을 쳤습니다. “12월 13일 하루 동안에 유다인을 노소나 어린 아이나 부녀를 무론하고 죽이고 진멸하고 죽이고 도륙하고 또 그 재산을 탈취하라!” 이 조서가 각 도에 알려지자 유다인들은 대성통곡하며 금식하며 부르짖고 굵은 베를 입고서 재에 누워 하나님께 구원하여 주시기를 청하기에 이르렀습니다.
7. 죽으면 죽으리라.
유다인 모르드개는 왕후인 에스더에게 사람을 보내어 왕께 청해 이 위기에서 구해 주기를 구하니 “네가 왕후의 위를 얻은 것이 이때를 위함이 아니지 누가 아느냐” 에스더는 3일간을 금식하고서 누구든 왕의 부름을 받지 아니하고 왕에게 나아갔을 때 왕이 금홀을 내어 밀지 아니하면 죽이는 것이 페르시아의 국법임을 말면서도 두려워 아니하고 ‘죽으면 죽으리라’는 각오로 왕에게 나아갑니다. 금홀을 내어 민 왕에게 에스더는 자신이 준비한 잔치에 하만과 함께 참여할 것을 청하였습니다. 내막을 모르는 하만은 자신 혼자만이 왕과 함께 왕후의 초대를 받았다며 즐거워합니다.
8. 모르드개를 존귀케 함
밤에 왕이 역대 일기를 검토하던 중 암살을 꾀하던 두 내시를 고발한 모르드개에게 아무런 관직을 베풀지 않았었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됩니다. 한편 모르드개을 처형하기 위하여 높이가 50규빗(약 22.5미터)되는 장대를 준비하고 왕의 허락을 받고자 나온 하만은 오히려 모르드개를 존귀케 하라는 왕의 명령을 받게 됩니다. 모르드개에게 왕복을 입히고 왕이 쓰는 왕관을 씌우고 왕이 타는 말에 태우고서 성중 거리을 다니며 이르기를 “왕이 존귀케하기를 기뻐하시는 사람에게는 이같이 할 것이라.”하고 외쳐야만 했습니다.
9. 하만의 죽음
왕후 에스더는 잔치에 초대된 왕의 앞에서 자신과 자신의 민족에 대해서 고하는데 “왕이여! 나와 내 민족이 죽임을 당하게 되었나이다. 만일 우리가 노비로 팔렸더면 내가 잠잠하였을리이다.” 애절하게 말하였습니다. “감히 이런 일을 심중에 품은 자가 누구며 그가 어디 있느뇨.”왕후와 왕후의 민족을 죽이려 하는 자가 있다는 말을 들은 아하수에로 왕은 노기가 동등하였습니다. “적과 원수는 이 악한 하만이니이다.”결국 유다인을 죽이려고 했던 원수 하만은 모르드개를 매달려고 세워 둔 장대에 자신이 매달리게 되었고 죽기로 작정되었던 유다인들에게는 사는 길이 열리게 되었습니다.
10. 유다인을 위한 조서
왕의 인장 반지로 인을 친 조서는 설령 왕이라고 할지라도 변개시킬 수 없는 것이 페르시아의 법률이어서 왕은 새로운 조서를 내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왕이 여러 고을에 있는 유다인에게 하락하여 저희로 함께 모여 스스로 생명을 보호하여 각 도의 백성 중 세력을 가지고 저희를 치려하는 자와 그 처자를 죽이며 도륙하고 진멸하여 그 재산을 탈취하게 하되 아달월 즉 12월 13일 하룻 동안에 하라.” 이 조서가 각 도에 전해지게 되었고 유다인에게는 영광과 즐거움과 기쁨과 존귀함이 있었습니다. “유다인들이 칼로 그 모든 대적을 쳐서 도륙하고 진멸하였고 하만의 열 아들을 죽여 시체를 나무에 달았으나 그 재산에는 손을 대지 아니하였더라.” 하나님은 유다인을 구원하여 주셨습니다.
부림절의 교훈
부림절을 통하여 우리가 깨달은 영적 유익은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 기쁨과 즐거움과 구제의 삶은 하나님의 구원에 대한 응답이어야 합니다.
왕의 새로운 조서로 인해 생명의 구원을 얻은 유다인들은 그 날을 기념하여 잔치를 베풀고 즐기며 서로 예물을 주고 가난한 자들을 구제하는 것으로 나타납니다. 그들이 잔치를 베풀고 즐거워할 수 있는 것, 서로 예물을 줄 수 있는 것, 가난한 자를 구제할 수 있는 이유는 다름 아닌 그들이 먼저 구원의 은혜를 받았기 때문입니다. 새로운 조서를 통해 유다인들이 받은 구원의 은혜가 그들을 기쁨과 즐거움과 구제의 삶으로 나아가게 한 것입니다. 그들의 기쁨과 즐거움과 구제의 삶을 살아간 결과로 구원의 은혜를 입은 것이 아니라 기쁨과 즐거움과 구제의 삶은 생명을 구원받은 백성들이 하나님 은혜에 대한 마땅한 반응이며 결과일 뿐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들의 신앙은 하나님이 주실 미래의 어떤 것에서 기인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이미 우리에게 주신 것에 대한 마땅한 반응이여야 합니다. 하나님이 이미 주신 구원의 은혜가 바로 우리들의 모든 삶의 이유가 되어야 하고 우리들의 삶의 동기가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이 이미 주신 은혜 때문에 우리는 예배하는 것이고 하나님이 이미 베푸신 사랑 때문에 우리는 가난한 자를 구제하고 사랑할 수 있는 것이고 하나님이 이미 주신 구원으로 인해 우리는 기뻐하고 감격하는 삶을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이다. "~무엇을 하면...하나님이 복주십니다."라는 말은 엄밀히 말하면 진리가 아닙니다. 진리는 "하나님이 이미 우리에게 은혜를 주셨기 때문에 우리는 마땅히 ~무엇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가 되어야 합니다. 그래야만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다."라는 바울과 같은 고백이 나올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에 기인하여 마땅히 반응하다 보니 결국 오늘의 내가 되었다."라고 말입니다.
둘째는 믿음과 순종의 결단으로 살아가면 영광스런 삶을 살게 됩니다.
하나님을 개인적인 삶뿐만 아니라 역사의 주관자로 바라보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믿음으로 순종한 모르드개는 처음부터 자신이 영광과 이름을 위해 일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유다인으로서 세상의 기준이 아닌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했고 음모를 밝혀내 왕의 생명을 구했으며 자신의 목숨 뿐 아니라 자기 민족인 유다인 전체의 생명을 위해 그들의 애통에 동참했으며 왕후 에스더에게 유다인이 직면한 죽음의 상황에 호소하여 은혜를 구했습니다. 그 결과 모르드개는 아하수에로 왕에게 지극히 존귀하게 여김을 받았고 왕 다음의 권력을 갖게 되었으며 유다인 중에 존대하여 수많은 사람들에게 귀하게 여김을 받게 되었고 그는 백성의 이익을 위해 일하고 모든 종족을 안위하는 일을 하게 되었습니다. 모르드개가 누린 영광을 통해 어떤 상황에서건 하나님의 주권을 신뢰하며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가기 위해 날마다 생명을 건 믿음과 순종의 결단으로 살아가는 우리들도 존귀함을 받게 되며 주님 다시 오는 날 마지막 영광에 동참하게 되는 줄로 확신합니다.
3.1절
우리는 이러한 믿음의 삶으로 하나님의 이름과 영광을 위해 나아서야 합니다. 각 민족은 그 나름대로의 역사와 문화를 가지고 있습니다. 특히 한민족은 이스라엘과 같이 단일민족으로서의 자긍심이 높습니다. 민족의 어려운 시기마다 하나가 되어 민족의 장래를 걱정하며 민족의 어려움을 타개해 나갔습니다. 우리는 지금 위기 속에 있습니다. 밖으로는 세계 경제 위기 때문에 대외의존도가 높은 우리에게는 큰 타격으로 다가오고 있습니다. 안으로는 남북 문제와 사회적 빈부의 차로 인한 갈등과 반목의 시기를 보내고 있습니다. 이러한 위기 상황 속에서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강 건너 불구경하듯 팔짱만 끼고 있을 수 없습니다. 실제하는 삶 속으로 들어가 변화의 파고로 역사하는 힘을 보여야 할 때가 아닌가 합니다.
오늘이 3.1 운동이 일어난 지 90주년이 되는 해입니다. 학생들에게 3.1절을 물으면 ‘유관순 누나’가 일으킨 운동이라 말해 당황스럽기까지 합니다. 3.1 운동의 전 민족적 운동이었습니다. 전국 팔도 방방곡곡, 해외(만주, 미국 등) 어느 곳이든 태극기의 물결이 흘러넘치는 함성의 날이었습니다. 조선이 하나의 독립국임을 만방에 선포하는 날이었습니다. 멀게는 일본 2.8독립운동 과 서울 태화관의 33인을 비롯하여 가까이 저의 외할아버지도 만세운동 동참하여 옥고를 치렀습니다. 저는 나름대로 긍지와 자부심을 지니고 있습니다.
우리 대구는 항일 운동에 있어 큰 구심점 역할을 하였습니다. 대한제국 말에 있었던 국채보상운동은 IMF때의 금 모으기 운동에 큰 영향을 주었습니다. 지금도 그것을 기리기 위해 ‘국채보상운동’공원이 시 중심지에 위치해 있습니다.
대구 개신교의 성지에는 ‘3.1운동의 길이 있습니다. 동산동 대구 제일교회에서 서문시장으로 이어집니다. 아마 한번쯤은 그날을 기억하며 걷는 것은 좋은 일이라 생각합니다. 대구의 3.1운동에는 제일교회 이만집목사, 서문교회 정재순 목사, 남산교회 김태련 조사(현재 전도사를 이름), 계성학교 김영서, 백남채, 최경학, 최상원, 권희윤, 이영식(학생신분 영광학원 설립자 항일 운동으로 두 차례 투옥 옥고를 치름), 신명학교 이재인, 이선애, 임봉선 등이 앞장섰습니다. 이들 외에도 산운교회 이태학 조사, 김천교회 박제원 조사, 경산 사월교회 김무생 씨 등이 동참했습니다. 3월 8일 오후 1시에 이만집 목사와 김태련 조사가 독립선언서를 낭독하고 독립만세를 부르려다 일본 경찰에게 발각되자 다급해진 이만집 목사가 “오늘 우리의 독립을 선언한다. 독립성취를 위하여 만세를 부르자.”고 선언한 뒤 대한독립만세를 외쳤습니다. 이때에 계성학교 선창하여 “동포들아, 우리는 오늘부터 독립이다. 다 함께 뭉쳐라. 총 진군으로 독립을 성취하자”고 외치니 교인, 학생, 시민이 뭉쳐서 독립만세를 외쳤습니다. 2만 여 명의 시민들이 동참하였습니다. 이 운동은 각 군, 면 소재지와 교회가 있는 곳 마다 시위운동이 퍼지게 되었습니다.
그 이후 “하나님이 너희 나라를 구하리라,”는 구국 신앙을 가졌던 개신교 인사 가운데 이만집 목사는 징역 3년, 김태련 김영서 각 2년 6월, 백남채 최상원 정재순 김무생 징역 2년 박제원 이태학 권희윤 각 1년 6월, 이재인 임봉선 각 1년을 선고 받았습니다. 두 차례에 걸친 만세 운동의 결과 계성학교는 일년 동안 휴교를 했고, 대구고보에서는 4학년 신현욱, 백기만, 2학년 허윤실, 1학년 김수천을 비롯해 전교생 200명이 동참했습니다.
3.1운동의 중심에는 많은 기독교인이 중심이 되었습니다. 우리는 이러한 유산을 자랑스럽게 생각해야 합니다. 이들의 민족 사랑의 정신을 받아들여 기독교인이 하나가 되어 하나님의 나라와 그 이름을 위해 앞장서 나가길 바랍니다. 모르드개와 에스더의 하나님에 대한 사랑과 믿음과 민족 사랑의 정신이 한 민족을 구원했듯이 오늘날 위기 속에 한국을 새롭게 일으키며 사회 개혁 운동에서 비판의 대상인 교회가 되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이제 분열을 뛰어넘어 하나님의 나라와 영광이 우리들의 손에 달려 있기에 영향력 있는 그리스도인 되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지금 우리의 처한 환경이 좋지 않고 우리가 미미한 존재로 보일지언정 굴하지 말고 ‘하나님의 공의’와 ‘하나님의 사랑’이 있는 교회되기를 축복합니다. 하나님은 우리들 통해 민족 구원의 길을 예비하리라 믿습니다. 그러한 꿈을 통하여 우리와 우리 자녀들에게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낼 수 있다고 확신합니다.
하나님은 매 시대마다 ‘하나님의 사람’을 찾고 계십니다. 하나님의 뜻에 따라 사는 사람들을 찾고 계시며 그 사람들을 통하여 놀라운 일들을 행함을 말씀을 통하여, 역사를 통하여 배 웁니다. 배움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행함으로 믿음을 드러내고 나아가야 합니다. 이시대를 바르게 세우기 위해 우리가 해야 될 일이 많이 있습니다. 앞으로 이런 일들을 계획하며 하나님의 공의와 정의와 사랑을 세우기 위해 애쓰며 동참하는 그리스도인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부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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