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웃사이더의 눈

대구지역 장애인 선교의 현황과 대한 모색

어저나 2009. 10. 6. 17:51

대구지역 장애인선교의 현황과 대안 모색

이원보 (영광교회 담임목사(대구대 대명동 캠퍼스)


Ⅰ. 들어가는 말

지금 이 자리에서 장애인선교에 대하여 평가를 내린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아직 장애인선교는 상당 부분 미개척분야이기 때문이다. 아직 준비되어지고 진행되고 있는 분야이기에 매력적인 곳이기도 하다. 그리고 상당부분 그들의 전인격인 변화에 초점을 맞추어 선교하는 선교적 모델링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기에 많은 연구와 노력이 필요한 분야이다. 대부분 장애자체에 관심을 가질 뿐 장애인에 대한 체계적인 이해도 역시 떨어지기에 각 교회에서 장애인선교나 목회에 관심을 갖기 어려워 대부분 후원하는 것으로 만족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 글은 준비하면서 대구지역에 있는 장애인 선교에 관심을 갖거나 실제적으로 장애인들과 삶을 살아가는 많은 사람들, 그들 역시 장애를 갖고 있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에 주목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역시 주변의 현실과 삶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는 분야인 것 같다. "유유상종"이란 말을 많이 쓰는데, 장애인들에게 쓰여지는 의미는 별로 좋은 의미로 느껴지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의문을 표해본다. 아직도 우리 나라 현실은 장애인 스스로 독립할 수 있는 제반 여건이 이루어지지 않은 나라이다. 서구 선진국에 비하여 장애인에 대한 복지나 시설들이 많이 부족하고 교육적 프로그램이 다양하지 못한 것이 사실이다. 그리고 교육시설 역시도 부족하다는 것은 익히 알려진 사실이다. 이 글에서는 이러한 여건과 현실을 비판만 하고자 하는 글이 아니라 어떻게 하면 장애에 대한 성경적인 생각과 어떻게 이들을 복음화 시킬 것인지에 대하여 주력할 까 한다. 신대원을 졸업하고 (지금은 하나님의 뜻으로 받아들이지만) 대구복지교회에서 장애아동 주간보호센타(열린선교원)의 보육사로 있으면서 장애아동이나 장애인에 대한 태도가 많이 변화되었다. 분명 그들도 하나님의 관심의 대상(구원의 대상)임을 확인하였고 좀 더 적극적으로 그들에게 접근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이제는 구체적이고 체계적인 시스탬으로 장애인선교에 대한 생각을 정리하고 이루어나가고자 한다. 이번 조사를 하면서 아직 장애인 선교기관에 대한 체계적인 문건이 하나도 없다는 것에, 장애인 선교를 하고 있는 본인으로서도 아쉬움을 갖는다. 물론 장애분야별로 특수성이 있다는 것은 인정하지만 사람들에게 구체적으로 자료를 제시할 수 없는 점이 무척 아쉬웠다. 이번 조사도 아직 부족하다. 이 글을 필두로 다른 사람들의 좀 더 깊은 조사와 연구를 있기를 바라면서 이 글을 시작한다.


* 이 글을 쓰게 된 동기

첫째, 체계적인 기초자료를 얻기 위해서이다. 앞에서 밝힌 바와 같이 장애인 선교단체나 교회가 얼마나 되며, 복음화율이 어느 정도인지 제대로 파악되지 않은 실정이다. 장애인 선교단체에 대한 자료나 정보를 어디서, 어떻게 구하여 할지 모른다는 사실이며, 그러기에 일부 알려진 선교단체에만 집중적으로 후원이나 관심이 몰리 뿐 정작 어려운 선교단체나 교회에는 지원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을 수밖에 없다. 그러기에 이러한 자료나 정보가 많은 사람들에게 제대로 알려지길 바란다.


둘째는, 기독교의 사회선교가 특히 장애인 선교에 있어서 여타 다른 종교에 비하여 빨리 시작되었을 뿐만 아니라 많이 하고 있다는 사실을 다른 사람들에게 알리기 위함이다. 물론 성경에는 "오른손이 하는 일을 왼손이 모르게 하라"는 말씀이 있으나, 오늘날 교회에 대한 비난의 소리가 너무나 높기에 여기에 대한 기독교적 답변이 될 수 있다.


셋째는, 기독교가 여타 종교에 비하여 장애영역 선교에 빨리 뛰어 들었고 행했지만, 대부분 영세하고 소규모적이다는 것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다. 중대형 교회들이 이들에 대한 관심은 있으나 선교방법이나, 선교에 대한 올바른 관점을 가지지 못했음을 지적하고 싶다. 90년대 중반 이후 대구지역에도 중. 대형교회들이 장애인 선교에 대해 많은 관심을 드러내는 것에 대해 앞으로의 가능성을 가지게 된다.


넷째는, 앞으로 장애인 선교에 관심을 갖고, 장애인 선교에 헌신하려는 이들에게 바른 관점과 어떻게 방법을 잡아 갈 것인가에 대해 조금이라도 도움을 주기 위해서이다. 대구대 내에서 학생들에게 장애인 선교기관이나 이들이 헌신할 수 있는 곳의 자료를 제공해 줄 수 있을 것이다.


* 이 글의 방향성과 목적

이 글이 주고자 하는 것은 단순한 자료의 전달이 아니다, 궁극적으로 장애를 입든 입지 않는 모든 사람들은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 될 수 있으며, 하나님 나라의 구성원으로 살아가야 함을 모든 이에게 밝히고자 함이다. 장애를 입은 사람들도 하나님의 형상을 지음 받은 사람이며, 그들 속에는 회복되어져야 할 하나님의 형상이 있다. 이제까지의 구별, 또는 단절된 영역에서 벗어나 동등하게 하나님 나라의 구성원으로 삶을 살도록 끊임없이 양육하며, 목회의 대상으로 바르게 교육하는 일에 모든 교회들이 앞장서야 함을 이야기하고 싶다. 이제는 장애인이 적극적 선교의 대상으로 인식되어져야 한다. 모든 장애는 죄의 근원성을 갖고 있음을 부인할 길 없다. 아담의 타락이후 인간에게 주어진 죽음과, 질병, 고통, 그 모든 것과 장애는 똑 같이 아담의 범죄로부터 출발한다. 그러기에 이런 죄를 고백하며, 죄악의 고리를 단절할 때 참된 장애의 회복이 이루어진다고 본인은 생각한다. 그러하기에 그들의 영혼에 대한 갈망을 바라보며 선교에 주안점을 두어야 할 것이다.


또한 교회는 여러 가지 교육적 시설과 장애인과 정상인들이 함께 예배드릴 수 있는 수 있는 장소와 공간의 마련이 시급한 현실이다. 장애인에 대한 작은 배려로부터 장애인에 대한 선교는 시작된다고 할 수 있다. 그러기에 이 글에서 교회의 인식전환에 대해서도 언급할 것이다. 인식의 전환이 이루어지지 않는 가운데서 교회가 장애인에게 열려 있다고 외쳐도 장애인들은 교회의 높은 문턱을 넘지 못할 것이다. 이 글은 먼저 장애인에 대한 선교적 기초에 대하여 다루고 교회가 선교적 측면이 아니리 목회적 차원에서의 장애인선교에 대한 교회의 위상을 말한 뒤 대구지역의 장애선교의 역사에 대하여 서술하고, 현재의 처한 상황과 앞으로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에 대하여 다룰 것이다. 그리고 장애인 교회나 선교단체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부록에서 다루고자한다.(여러 사람의 글을 인용했으나 주를 달지 않은 점에 대하여 대단히 죄송하게 생각한다. 다음 보완된 글에서는 분명한 출처를 밝힐 것이다.)


Ⅱ. 몸 말

1. 장애인 선교의 성경적 기초

장애인에 대한 성경적 기초를 갖기 위해서는 성경이 장애인에 대해 어떻게 말하고 있는가를 살펴보아야 할 것 같다. 성경에는 장애가 역사적 사실로 존재했음을 보여 주고 있다. 구약89회, 신약에 74회 총 163회 등장한다. 이러한 장애가 사회적으로 불평등을 가지고 왔으며(창29:17-18, 삼하 5:6.8), 장애가 죄에 대한 징벌로 등장하기도 한다.(렘52:11 시드기야가 두 눈을 빼앗기고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간다, 삼하 3:29에서는 요압의 집에 죄에 대한 징벌로 문둥병자와 지체장애인이 계속해서 나타날 것임을 예언하고 있다.) 하지만 하나님은 이들 장애를 통하여 하나님의 영광을 들어내시도록 하셨으며(에훗) 자신의 죄과를 깨닫게 하시는 도구로 사용하셨다(삼손). 근본적 성경에서는 장애인들에게 해가 되는 일을 하지 못하게 했을 뿐만 아니라, 고아, 과부와 같이 보호의 대상으로 여겼다.(므비보셋). 장애인을 사회로부터 격리시키시지는 않았다. 구약의 경우 이미 모세오경에 장애인의 보호의 규정이 나온다. 그 시대에서 바라볼 때 매우 긍정적인 모습을 보여준다. 고대 그리스의 아리스토텔레스는 청각장애인의 경우 그들이 언어를 사용할 수 없으므로 이성을 갖지 않았다고 생각했을 뿐더러, 스파르타의 경우 장애인을 사회에서 추방시키기도 했었다.


성경에서 말하는 장애인은 첫째, 하나님의 형상을 지닌 장애인으로 바라본다. 창1장27절 하나님은 사람을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었으며 그들에서 생령을 불어넣어 주셨음을 말한다.(창2:7) 분명 하나님은 모든 사람을 자신의 형상을 지으셨기에 그의 공의와 사랑은 차별이 없으신 것이다. "그 때에 시각장애인이 눈이 밝을 것이요 청각장애인의 귀가 열릴 것이며, 그 때에 저는 자는 사슴같이 뛸 것이며, 벙어리의 혀는 노래하리니"(사 35:5-6) 둘째는, 예수님 사랑의 대상이었다. 예수님은 지극히 작은 자에게 한 것은 자신을 대접한 것이라고 몇 번이나 말씀하셨다.(마25:35, 눅17:2) 셋째는, 하나님나라의 구성원으로서 장애인을 생각할 수 있다. 하나님의 나라는 예수그리스도를 구주로 고백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열려진 곳이다. 분명 장애인도 하나님나라의 구성원으로 참예할 수 있다. 눅14:12-24에 하나님 나라의 잔치 비유에서 제일 먼저 잔치에 참석하는 사람은 장애인이다. 넷째는, 선교의 대상으로 장애인이다. 장애인은 분명 선교의 대상이다. 성전 미문에서 한 앉은뱅이의 구원사건은 5,000명을 변화시키는 일 나타난다. 장애인은 적극적 선교의 대상이다. 그리고 예수님 주위의 많은 병자들이 나음을 입고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고백하고 주님을 증거하는데 앞장섰다. 장애인은 교회의 걸림돌이 아니라 오히려 교회를 교회답게 만들고 하나님의 역사가 끊임없이 나타나는 모습으로 보여진다. 그들에 대한 책임이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 주어져 있다. 분명 성경 속에서 장애로 인한 구원의 차별성이 없음이 분명한 만큼 그들 영혼에 대한 적극적인 선교 프로그램들이 개발되고 이들에 대한 좀 더 깊은 신학적 성찰을 통하여 우리들에게 맡기는 하나님나라의 확장에 최선을 다하여야겠다.


2. 장애인선교에 대한 교회의 위상

얼마 전에 장애인에 대한 선교를 목회적 차원에서 바라보아야 되지 않겠냐는 생각을 깊게 했다. 장애인이 엄연한 하나님나라의 구성원이고 하나님의 구속의 경륜 속에 포함되어져 있기에 이들에 대한 양육에 깊은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장애인들도 교회의 한 구성원으로 자리매김 할 수 있는 공간을 확보해 주어야 한다. 대부분 사람들은 장애인은 선교의 대상이지, 목회의 대상이라고 생각하지 않는 것 같다. 그래서 교회는 연말에 불우이웃 돕듯이 후원금을 보냄으로서 자신의 책무를 다한 것으로 생각하는 것 같다. 그리고 장애인은 교회의 특성상 교육 프로그램에 충분한 투자를 하지 못하는 것 같다. 교회는 분명 그 지역사회에 대한 선교적 책임을 다해야 한다. 그렇다면 그 지역의 어려운 이웃(독거노인, 소년. 소녀가장돕기)을 돕기는 하나 장애인에 대한 서비스는 부족한 것 같다. 그들을 적극적 선교의 대상으로 바라보고 장기적 안목으로 그들을 바라보는 일이 시급하다 하겠다. 단순히 돕는 차원의 문제가 아니다. 오히려 그들을 연민의 정으로 돕기만 한다면, 장애인은 그 공동체 속에서 항상 약자로만 존재하여 끊임없이 도움만 받는 존재로 전락해 버릴 것이다. 동등한 인격체로서 바라볼 때 장애인들과 정상인들이 서로 서로 세워주며, 도움을 받을 수 있는 관계를 유지할 수 있을 것이다.


본인의 생각은 선교회는 교회를 도와주는 역할을 하며, 사람들이 바르게 양육 받을 수 있는 방법만 제시하고 장애인들은 그 지역사회의 교회에서 정상인들과 동등하게 교회를 세워감이 마땅하다 생각하나 지금의 현실로는 불가능하게만 보인다. 그 이유는 첫째, 교회가 장애인에 대해 편견을 갖고 있다는 사실이다. 장애인이 교회에 많으면 교회성장에 지장이 있다는 생각이 목회자와 성도들에게 깊게 박혀있다. 이는 분명 고정관념이다. 예를 들어 남산교회를 생각해 보라 . 미문 선교회의 역할을 통하여 '남산 기독교종합사회복지관'을 운영하여 지역사회에 큰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장애인은 오히려 교회성장에 큰 역활과 디딤돌을 할 수 있다고 본인은 생각한다. 둘째는, 장애인을 연민의 정으로 바라보기 때문이다. 정말 겉으로 보기에 뇌성마비의 경우 보기에 안스러운 정도로 보이는 게 사실이다. 그러나 정작 그들은 조금도 불편해 하지 않는다. 장애인 자신들 스스로 많은 문제들을 해결해 낸다. 시각장애인의 경우도 그들은 PC통신 뿐만 아니라, 인터넷도 하고 있다. 그리고 악도 잘 다룬다. 그들 스스로 살아가는 방법을 터득하고 있기에 교회를 장애인들을 서스럼 없이 받아 주어야 한다. 너무 과잉친절은 장애인을 더욱 불편하게 할뿐이다. 셋째는, 장애인들은 한 곳에 몰린다는 문제점이 있다. 이 부분은 정말 심도 깊게 논의 해 보아야 할 부분이다. 대부분의 장애인교회는 스스로 자활할 수 없다. 반드시 봉사자를 필요로 한다. 여기에서 봉사자들이 장애인교회를 오래 봉사하다 보면 자신의 영적 기갈을 느낀다. 늘 상 봉사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인적자원이 풍부한 교회들이 이러한 문제 해결에 적극적으로 뛰어들어야 한다. 오늘날 자원봉사교육을 많이 하지만 실질적인 교육의 미비로 교육을 받고 난 이후에 어떻게 봉사해야 할지 잘 모르는 것이 사실이다. 그리고 장애인들만 뭉치는 그 이유에 대해서는 장애인교회에 책임이 있다기보다 기성교회가 장애인들을 충분히 포용하거나 배려해 주지 않았다는데서 발견할 까 한다. 물론 장애인들의 결집성 자체도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이 문제에 대해 교회는 이제 장애인교회와 연계성을 통해 통합교육(유.초.중,고,청)에 대한 시도를 계획해보아야 할 것 같다. 그러니까 쌍방간에 신뢰가 수반되지 않고서는 이 문제의 해결은 요원하다.


교회는 이제 새롭게 장애인문제에 접근해야 한다. 다들 사회복지에 관심을 가지니까 사회복지에 뛰어드는 것이 아니라 차별성을 가져야 한다. 장애인선교의 다양한 영역에서 자신의 교회가 수행할 수 있는 부분을 생각해 보아야 한다. 그리고 자신의 지역에 대한 보살핌이 계속해야 한다. 장애인에 대한 통계자료도 확보하고 전문가를 두어서 목회방향을 설정하여야 한다. 이제 장애인선교 전문적인 사람들에 의해 이루어져야 한다. 교회에 사회복지 목회에 관심을 갖는 목회자가 하나의 팀을 조직하여 팀으로 다가서야 한다. 최근 장애인에 치료에 대한 접근은 사회통합적인 접근방법이다. 의사, 교사, 치료(언어치료, 미술치료), 재활교육가, 등 모든 사람이 종합적인 접근을 통하여 그들을 변화시키는데 더 다양한 방법들을 실행할 수 있다.교회는 지금 당장의 결과에 연연하지 말고 중장기적인 안목에서 바라보면서 장애인 교육에 투자를 해야 할 것이다. 그래야지 교회가 사회에 지탄을 받거나, 부정적인 모습으로 비춰지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지금 교회는 인재양성에 주력해야 한다.


3. 대구지역 장애선교의 시작과 전개

광명학교에서 점자에 대한 역사를 살펴보니, 그 시작은 1898년 Rosetta Stanly Hall여사가 4점 점자를 창안 성경의 일부를 해석하였으며, 십계명을 번역한데서 시작한다. 그렇다면 일찍이 개신교가 전래되면서 시각장애인에 대한 선교도 동시적으로 이루어졌음을 알 수 있다. 기독교의 정신이 사랑이고 약하고, 소외된 자들에게 복음이 전해지는 것처럼 초기에 장애인에게 일찍이 복음이 전파되었음을 알 수 있다. 지금 현재 대구대 사범대학관에 한국 최초를 특수교육을 시작한 Hall여사를 기념한다고 건물에 적혀있다. 대구지역에서의 특수교육의 시작은 해방 후 최초로 설립된 사립특수학교인 대구맹아학원(광명학교, 영화학교의 전신) 이다. 1946년 4월 19일에 이영식목사가 제생원 맹아부 출신인 박영생 등과 함께 대구 중앙교회 하층에서 맹학생 2명과 농학생 12명을 수용하여 첫 수업을 시작했다. 이영식목사가 맹. 농학생들을 신앙지도하고 그들과 교직원들이 함께 예배를 드린 것이 대구대 영광교회의 시작이다. 그렇다면 대구지역에 장애인선교의 시작은 대구맹아학원의 시작과 일치한다고 생각할 수 있다. 물론 그 당시 교회 시각, 청각, 지체장애인이 예배를 드렸으나 문헌상으로 고증할 자료가 전혀 없는 실정이다. 대구지역의 장애인에 대한 관심은 사립특수학교인 대구맹아학원을 시작으로 정신지체학교(보명학교)가 1966년에 전국 최초로 정신지체아동에 대한 공교육을 시작하였다. 대구대(구 한국사회사업대학)가 한국의 특수교육에 지대한 공헌을 했으며, 특수교육발전에 크게 기여하고 있다. 대구대학과 그 전신인 대구맹아학원은 기독교정신에 의하여 학생들을 양육하게 되어있다. 그러기에 장애인 선교의 기점과 그 역할의 산실은 분명 대구대 내의 영광교회가 주도하였음을 말하지 않을 수 없다.


대구에서 장애인 선교의 초기에는 시각장애인과 청각장애인에 대한 선교가 중심이었다. 1963년에는 청각장애인 교회인 에바다교회가 설립되었으며, 1970년 10월 5일에는 대구시 중구 1가 41번지에서 박명욱목사와 박영생장로가 중심이 되어 맹인복락교회가 설립되어 10여명이 예배를 드리기 시작하였다. 1984년에 대구시 중구 남일동 평강빌딩에서 벧엘교회로 입당식을 가졌다. 그 후 1988년에 박승남전도사를 중심으로 포도나무 맹인 선교회(담임 이순애전도사)가 조직되었다. 또한 청각장애인 교회는 영락농아인교회에서 1997년에 영락교회에서 독립하여 대구농아인의 교회(담임 손원재목사)가 설립되었다. 지체장애인의 경우 1983년에 남산교회 내에 미문선교회가 조직되어 지체장애인에 대한 선교가 시작되었다. 그후 등불선교회가 조직되어 뇌성마비에 대한 선교가 진행되었다. 등불교회가 일시 창립되었으나 분리되었고, 엘림교회(담임 김친종목사)가 1990년 2월 25일에 창립되었으며, 1993년 8월에 뇌성마비들이 중심이 된 만남의 교회(담임 김준우목사)가 설립되었다. 둥지교회(담임 신경희목사)가 1995년 3월에 창립되었다. 이들은 모두가 지신이 장애를 가지고 있기에 더욱 결속력을 강화할 수 있었는것 같다. 지체장애인 선교의 중심에는 미문선교회의 역할을 높이 평가하지 않을 수 없다. 교회가 중심이 되어 선교회의 역할을 강화시켰으며, 현재에는 남산복지재단을 세우고, 중구로부터 남산 기독교종합사회복지관을 불하 받아 사회선교에 전력하고 있다.


장애인선교는 서로 의사소통이 가능한 시각, 청각, 지체장애인들이 스스로가 중심이 되어 선교의 역할을 감당할 수 있었으나, 정신지체나, 정서장애인에 대한 선교는 비교적 그 시기가 늦어진다. 이들에 대한 선교는 장애인에 대한 관심이 높아가던 1994년을 기점으로 잡을 수 있다. 물론 그 이전에 장애인 복지시설이 먼저 이들에 대한 선교를 시작한 것은 사실이다. 성보재활원 내의 성보교회(담임 채명희전도사)의 경우 1956년 이미 정신지체, 뇌성마비인들과 보육사들이 예배를 드렸다. 1957년 7월에 세계 기독교 선명회에 가입했었다. 자유재활원교회경우에도 재활원이 설립되면서 보육사들이 이들 영혼에 대해 관심을 가지면서 예배를 드려왔다. 1991년 당시 보육사이던 김이진전도사가 주일예배를 시작했었다. 현재는 1996년 자유재활원교회에 박순태목사님이 원목으로 오셔서 목회하고 계신다. 이와는 달리 재가장애인들을 선교할 목적으로 1994년에 여러 선교단체와 교회가 동시에 결성된다. 대구 밀알선교단(단장 김광식목사), 나눔선교회(담임 이왕욱목사), 샬롬의 집(담임 김기일목사), 대구복지교회(담임 소재훈목사) 이 단체들이 대구지역에 거의 동시적으로 장애인선교활동을 시작한다. 이들의 장애인선교방식은 있는 시설이 있는 장애인을 선교하는 것이 아니라 찾아가면서 선교하는 방식을 택하고 있다는 것이다. 사회복지 차원에서의 선교로 장애인선교를 한 차원 높였으며, 많은 교회나 사회단체에 영향을 주었다. 또한 기존의 사회복지시설에서 탈피하며 작은 공동체인 그룹홈 중심의 생활공동체 선교를 시작하였으며 현재 진행 중에 있다. 이것은 앞으로의 장애인선교의 미래를 보여주는 것으로 좀 더 발전적인 방법 또한 모색되어져야 할 것 같다.


또 다른 것은 장애아동 주일학교의 시작이다. 대구복지교회는 설립 때부터 자페아동 주일학교인 소망부를 두었으며, 나눔선교회에서도 정신지체 주일학교를 하고 있으며, 밀알선교회도 주일날 장애인주일학교인 밀알학교를 시작하고 있다. 이에 서문교회에서 장애인 주일하교인 사랑부가 1996년에 조직되어 현재 교사30여명 아동 30여명의 주일학교를 운영하고 있다. 이 주일학교의 운동이 자연스럽게 정착되어 교회가 해야 할 대 사회적인 책임을 수행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장애인의 이미지를 또 다르게 보여 주는 곳은 "한국 장애인 소리 예술단"(단장 황재환전도사) 시각장애와 한 팔이 없는 상황에서 장애를 극복하고, 다른 장애인들(시각, 청각 장애인)과 전국 교회와 장애인시설, 그리고 교도소 등을 돌면서 연주회를 갖고 있으며, 오히려 해외에 더 알려져 있다. 청각장애인 경우 어릴 때부터 북의 소리를 통하여 진동을 느끼면서 박자를 맞추어 춤을 익힌다. 이것은 장애인 재활의 또 다른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4. 대구지역 장애인선교의 특징

대구지역의 장애인 선교를 특징을 이야기하면 대부분 지역(한국교회)이 비슷한 양상을 띠고 있다. 좀 더 폭 넓은 시각을 가지고 바라보아야 하겠지만 지금 한정된(대구와 대구인근지역) 지역에 한하여 논할까 한다.


첫째는 장애인 선교의 시작은 복음을 받아들인 장애인들 스스로에 의하여 교회 조직되어 일반 교회와 장애인 교회가 분리되는 현상을 초래하였다. 이 문제점은 심각하나 현실적으로 장애인들과 일반인들이 함께 호흡할 수 있는 공간의 부족과 더불어, 일반인들이 장애인을 바르게 바라보지 못한다든가(장애인에 대한 잘못된 인식), 장애인 스스로 쉽게 소외의식을 느낀다든가 복합적인 양상을 띠고 있다. 이제 장애인에 대한 교회의 인식이 많이 바꿔지고 있으며, 장애인 스스로도 혼자서는 설 수 없다는 생각을 갖고 있어 앞으로 일반인들 장애인들이 같은 교회를 섬긴다는 관념보다는 연합적인 프로그램을 통하여 발전적인 방향으로 이끌어 갈 수 있을 것 같다.


둘째는 선교 규모의 영세성을 들 수 있다. 대부분의 장애인 선교단체나 교회들은 후원에 의존하고 있는 실정이다. 장애인 스스로 시작했기에 그들 자신의 수입원이 없을 뿐만 아니라, 지금까지 일반교회에서도 구제차원에서 후원금을 보내는 생각만 했기에 선교규모가 영세하고, 자립성이 떨어졌었다. 이제 사회는 장애인 재활 프로그램을 통하여 장애인 스스로 살아갈 수 있는 길들을 많이 제공하고 있기에 장애인 교회의 경우 자립성을 키워가고 있는 실정이다. 그리고 교회에서도 장애인들에 대해 구호의 대상이 아니라 선교적 차원에서의 접근이 이루어지기에 그들에 대한 선교적 사명을 각성하고 있어 재정적인 지원이 많이 이루어져 가고 있는 상황이다. 앞으로 교회들은 장애니 선교단체가 자립할 수 있는 방법에 적극 지원하고 동참하였으면 한다.


셋째는 장애인선교단체와 교회의 적극적인 활동력 부족하였다. 지금까지의 경우 대부분 행사가 이벤트 차원에서 선교단체의 수익성 사업이 되었으나, 대 사회적인 인식전환에 주력해야 할 것이다. 장애인에 대한 에티켓이나, 장애인의 심리적 상황과 그들의 현재적인 삶에 대하여 알리고 그들의 삶에 동참할 수 있는 지속적인 매개고리를 만들어 주어야 한다. 자원봉사의 경우에도 한 두 번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지속적으로 연결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대부분의 자원봉사의 경우 한 행사에 국한되어 시간이 지나면 연결이 끊어지게 된다. 자원봉사 실제적으로 이루어 질 수 있도록 선교단체에서는 통합프로그램을 빨리 제시하여야 한다.


넷째는 장애인선교단체의 연합성이다. 각 선교 단체가 개별적인 홍보에 주력하다 보니 마치 선교단체간의 경쟁으로 비춰지는 듯하다. 각 선교단체나 교회는 지금 사역의 방향에 포커스를 두고 전문성을 확보하는 것이 시급하다. 자기가 맡은 영역에 대한 연구를 다른 기관에 알려 좀 더 효과적인 방법으로 장애인에게 접근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즉 지역사회의 교회에게 장애인에 대한 기초자료를 제시해 주고 방법 등도 제시해 주어 지역사회가 선교의 중심이 될 수 있도록 만들어 주어야 한다. 장애인선교단체의 연합성이 약하다는 것이다. 자기 선교단체 중심의 선교방법을 택하다 보니 다른 단체와의 긴밀한 연결성이 결여되어 있는 듯하다. 대구지역 장애인 선교단체교역자 연합회가 이제 그 역할을 감당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리고 일반 선교단체와도 긴밀히 협조하여 장애인 선교의 영역에 모든 사람이 함께 하는 선교로 전환되었으면 한다.


다섯째는 장애인선교에 대한 연구의 부족이다. 물론 장애인 시설이나 장애인 등록 현황이나 정확한 자료가 부족한 것이 사실이다. 이제는 해외선교에 대한 방법과 신학적 작업만 할 것이 아니라 장애인 선교신학과 선교방법, 교회의 역할에 대한 신학적 조명을 연구하는 전문적인 연구 그룹이 나왔으면 한다. 각 장애 영역 연구를 통하여 종합적인 선교 모델을 만들 수 있으리라 생각되어진다. 다섯째는 장애인 선교에 대한 기초적인 자료가 전혀 제시되고 있지 않다. 통계자료와 복음화률, 장애인의 지역별 편중에 대한 자료를 만들어 선교에 적극적으로 활용해야 하겠다.


5. 장애인선교의 지향점

첫째는 지역중심의 선교로 전환되어져야 한다. 선교의 중심에 그 지역교회가 있어야 한다. 원래 선교회의 역할은 교회의 선교를 뒷받침해야 하는데, 지금의 장애인선교는 선교회 중심이 되어져 있다. 앞에서 누차 지적했듯이 교회의 대 사회적인 인식전환이 없이는 장애인선교 영세적이고 장애인들만 모여 있는 교회를 계속 만들어 낼 것이다. 교회는 하루 빨리 장애인 선교단체와의 연합을 일구어 내어 통합적인 목회를 구상해야 하리라 생각한다. 교회 에 장애인 부서를 두고 또한 지역의 현황을 파악하는 것이 시급하다. 그리고 교회는 장애인들이 들어올 수 있도록 교회환경을 바꾸어야 한다. 시각장애인들을 위하여 점자책을 준비하기보다는 점자블록, 발판 등을 만들어야 하며, 문 입구에는 소리나서 문임을 알게 해 주고 보행안내법을 교육시키는 것이 먼저 인 듯하다. 그리고 교회에 문턱을 없애야 한다. 경사로도 15도 이내로 낮추어야 한다. 그래야지 장애인들이 쉽게 드나들 수 있다. 그들에 대해 조그만한 배려를 그들에게 하나님의 사랑을 보여줄 수 있다.


둘째는 팀선교의 중요성이다. 다양한 전문분야를 인정하여 장애인선교나 복지선교에 뜻이 있거나 전공한 사람을 교회의 사역자로 두고 서로 간의 다양한 의견 제시를 통하여 발전적인 선교의 방법을 제시할 수 있다. 21세기는 팀사역으로 교회를 운용해야 한다는 책들이 많이 나와 있고 말들은 많으나 실제적으로 이러한 방향으로 목회를 전환하는 교회는 많지 않다. 이러한 배경에는 신학교에서 자기가 전공한 영역이 없기 때문이다. 이제는 신학생 때부터 지기의 전공한 영역에서 사역할 수 있는 분위기를 조성해야 한다. 사회복지를 전공한 사람들이 사회복지선교를 전담하는 바람직하다. 장애인선교는 한번쯤하고 싶은 영역이 아니라 전문가로로서 사역에 전염할 수 있는 길을 만들어 주어야 한다.


셋째는 평신도의 역할성 부분이다. 특수학교에 재직하는 많은 기독교인들과, 특수교육을 전공하는 대학생들과 대학원생들의 발굴이다. 이들은 교회의 인적자원이기에 이들을 활용하여 지역사회선교에 동기를 부여해 주어야 한다. 평신도들이 중심이 될 때 장애인선교는 더욱 확고한 위치에 서게 될 것이다. 비전문인이라 해도 일정 기간 연수를 한다면 충분한 자원으로 활용할 수 있다. 교회는 그들이 활동할 수 있는 영역과 여건을 만들어 주는데 있다. 충분한 재정지원 교육시설에 대한 투자가 평신도들이 교회에서 자기 자리매김을 할 수 있게 한다. 평신도들의 활동에 적극적으로 교회는 지원해 주어야 한다.


넷째는 전문적인 연구기관과 활동가를 배출하는 것이다. 지역에는 많은 선교연구소들이 있으나 장애인 선교연구소 없는 실정이다. 선교를 할 수 있는 성경적 기초와 전도방법, 그리고 장애인 가족들에 대한 상담과 장애인에 대한 재활, 치료 프로그램을 운용할 수 있는 재원을 확보해야 한다. 다행히 대구지역에는 일찍부터 특수교육의 산실이 되어 왔다. 하기에 풍부한 인적자원이 있기에 그들을 제대로 활용하여 장애인선교에 기초적인 작업을 할 수 있도록 교회가 연합해서 이 일들을 추진해 주기를 바란다.


다섯째는 장애인선교 일반 문화선교와의 연합성이다. 다른 선교단체와의 끊임없는 교류가 이루어져야 한다. 장애인들에게도 컴퓨터나 문화, 예술에서 소외되지 않도록 지속적인 투자가 이루어져야 한다. Ⅳ. 맺음말 좀 장황스럽게 전개해서 다소 글이 산만하게 보이나 이 글의 중심에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의 약하고, 가난하고, 병들고, 장애 입은 자를 사랑하시고 그들을 먹이시고, 치료해주시고 그들에게 복음을 전파하셨듯이 우리도 그리스도의 제자로서 이러한 일에 앞장서자는 것이다. 물론 장애인 선교만이 선교인 것은 아니다. 모든 선교와의 연합성을 다시 한번 주장하고 싶고, 단순히 장애인을 연민이나, 구제의 대상으로만 바라보지 말고 동등한 인격을 가진 전인격체로 받아들이며 그들에게도 회복되어져야 할 하나님의 형상이 있음을 알고 복음을 전파하는 모두 힘을 쏟자는 것이다. 그리스도가 우리의 삶의 주인이듯이 장애인들에게 삶이 주인이 하나님이심을 알게 하여 그들의 삶을 변화시키고 재활의 삶을 살아갈 수 있는 길들을 교회가 앞장을 섰으면 한다. 장애인 영역에 대한 복음화율은 일반인보다 훨씬 미치지 못하고 있다. 그 만치 그들에게 복음을 전한다는 것이 어렵다는 것이다. 조금 더 노력하면 장애인 선교에 바람직한 영향들이 일어나리라 믿으며 이 글을 맺는다.


이글을 쓴지 근 10년이 되었다. 그 후에 장애인 선교에 대해 더 활발한 활동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한지 10년이 지났다는 말이다. 이제 다시 준비하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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