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웃사이더의 눈

아웃사이더란?

어저나 2009. 4. 17. 21:12

아웃사이더란?

 

주류와 비주류간의 갈등은 정치권이던 비정치권이던 사회,경제,문화 모든 영역에서 자연발생적으로 생겨나는 것 같다.' 중심인'이 되기보다는 '경계인' 또는 '주변인'을 선호하는 사람들도 있다. 하지만 그렇게 사는 것을 즐기는 사람이 있을까? 핵심 권력에서 밀려났을 때 어떻게 되는지 오늘의 신문과 뉴스를 통하여 확인하고 있지 않나? 그렇기에 권력의 정점에서 밀려나지 않기 위해 노력하고 헤게모니 장악을 위한 싸움이 계속되고 있지 않는가.

 

아웃사이더란 '경계인'이라기보다는 '주변인'을 의미한다. 그렇다고 해서 그가 속한 사회에 대해 무관심한 것은 절대 아니다. 오히려 '중심인'이 되지 못했기 때문에 더 비판세력일 수 있다. 오히려 과격성을 띠고 사회혁명을 주도하는 세력으로 급부상할 수 있다. 그래서 아웃사이더를 이상한 시각에서 바라보며 두려워하는 것 같다. 사람들은 '변화'를 갈망하면서도 '안정'을 추구한다. 이런 이중적 요소들 때문에 사람들은 곤혹스러워한다.

 

사람들은 자기가 속한 집단을 만들고 그 집단에 소속되기를 바란다. 그리곤 선을 긋고 자신의 자리에서 권력을 만들어낸다. 그 권력에 복종하지 않으면 '주변인'으로 간주하고 무시해 버린다. '불복종'이 그 집단속에서 자기정체성을 잃어버리게한다. 한동안 혼란스럽겠지만 시간이 지나면 인정하고 묵묵히 '주변인'의 삶을 살아간다. 그르면서 또 다른 사회집단을 형성하고 자신이 권력의 정점에 서서 또 다른 '주변인'을 만들어낸다. 결국 물고 물리는 복잡한 관계속에서 살아간다.

 

어저면 자기가 활동할 수 있는 최소한을 생각하고 더 많은 활동을 줄여야 하는 것 아닌가? 자기가 인정받고 싶듯이 남도 인정하면서 살아가는 공생의 사회를 만드는 것이 우리가 추구하는 이상사화 아닌가?

 

개인적으로 남이 나를 아웃사이더로 어느 정도 인정했을 때 조금 충격을 받았다. 이제는 누가 무슨 소리를 해도 별로 놀라지 않는다. 너무 익숙해져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나름대로 인정하는 사람들이 꽤 있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목사'를 기득권층으로 인식한다. 그럴 수 있다. 그래도 최고의 엘리트 교육을 이수하고 사회적 명망을 가졌을 뿐만 아니라 성직자라는 인식이 눈에 배여 있어서이다.

 

중요한 것은 다는 아니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나의 정체성을 인정하는 것이 된다. 하지만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그래 이 글을 통해서 인정하고 들어가자. 하지만 이 사고의 눈이란 것은 변할 수 있고 바뀐다고 다르게 평가해서는 안된다는 사실이다.

 

처음 대학에 들어갔을 때 적응할 수가 없었다. 46대 6 이것은 남녀의 비율이다. 여자속에서 자랐지만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광경이 어리둥절하게 했다. '졸업정원제'에 갇혀 통 공부를 할 수 없었다. 일년 만에 휴학했다. 군대도 못가고 일년을 공장에서 일했다. 활동가가 아니라 생활의 문제를 해결하려고 했던 것이었다. 그리고 군대를 다녀오고 열심히 등록금 준비해서 다시 대학에 들어갔다. 대학은 민주화의 바람이 불어 정말 견디기 힘들 정도 였다. 최류탄, 화염병, 구호 늘 휴강과 휴업 공부를 제대로 못했다.

 

기독교인으로서 사회참여를 인정하고 있었지만 수준을 뛰어넘는 정도였다. 뜨거운 토론과 치열한 싸움이 있은 뒤 서로 서로를 인정하지 않은채 헤어졌다. 국립 사범대를 다녔기에 발령만 기다리면 된다는 안일한 생각이 또 한번 나를 무너트렸다. '졸업정원제'에 이어 '임용고시'라는 것이 나의 발목을 잡았다. 임용을 포기했다. 제도권으로 다시 한번 진출할 수 있는 기회를 상실했다. '빼앗김'이었다. 아마 이 때 불신의 벽이 더 커진 것같다. 학교에서도 아웃사이더, 사회에서도 아웃사이더의 길을 걸어야 한다는 것을 다시 한번 각인했다.

 

그리고 하나님의 인도하심으로 신대원으로 진학하여 어릴 때 꿈꾸던 '목회자'의 길을 걸을려고 새 삶을 시작했다. 평탄한 길을 걸었다. 아마 인생의 최고의 정점을 달린 것 같다. 그것도 3년이 되지 않아 변해버렸다. 그리고 잘 모르는 새 길에 들어섰다. 장애인과의 삶이다. '장애인'은 사회의 대표적 아웃사이더다. 그래도 난 그 주에서 행새깨나 하는 존재이다. 섬기로 들어갔다가 오히려 섬김을 받는 존재로 전락해버릴까 두렵다.

 

중요한 것은 아웃사이더로서 건전한 시각을 가지는 것이다. 불평 불만 세력이 아니라 대안세력으로 존재하는 것이다. 건전한 대안세력으로 자리매김해서 사회에 필요한 아웃사이더 '주변인'이 되고 싶고 '중심인'이 되고 싶다. 나이가 들면 보수가 된다. 사실이다. 이제 '한겨례 신문'을 바도 감동이 안온다. 불만도 줄어 들었다.

 

하지만 감정이 실리지 않고 싶다. 합리적 이성을 소유하여서 올바른 판단을 하면서 바로보는 눈을 제시해 보고 싶다. 한쪽에 취우치지 않는 균형잡힌 시각으로 말하고 싶다. 그래서 하나님이 원하시는 '함께 하는 좋은 세상을 만들어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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