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의 편지

사순절은 섬김의 절기입니다.

어저나 2009. 4. 14. 16:51

사순절은 섬김의 절기입니다. (막 10:35 ~ 45)          (2009. 3. 22)


국사 시간에 ‘제너럴 셔먼호 사건’ 그리고 1871년의 ‘신미양요’를 기억하십니까? 이 역사적 사실 중심에 하나님의 조선에 대한 놀라운 선교 계획이 있었습니다. 바로 토마스목사님을 통해서입니다. 그는 1863년 6월 4일 하노버 교회에서 목사 안수를 받고 1863년 8월 런던 선교회의 파송으로 중국 상해에 도착하여 선교를 시작했습니다. 얼마 후 임신한 아내를 유산과 동시에 잃어버리게 되었습니다. 실망한 그는 청나라 해상 세관에서 통역으로 근무하던 도중 우연한 기회에 조선인 ‘동지사’(조선 시대에 동지를 전후하여 중국에 공물을 보내던 사신 일행)를 만나게 됩니다. 그리고 그들에게서 조선 내에서 가톨릭 신자들에 관한 수난을 듣게 되었습니다. 가톨릭 신자들이 참수당했다는 소식을 듣게 된 토마스목사님은 조선에 복음을 전해야겠다는 마음으로 뜨거워졌습니다.


“그래 이제부터 나의 선교지는 조선이다. 죽어가는 그들에게 복음을 전해야겠어.” 이렇게 결심한 토마스목사님에게 스코틀랜드 성서교회 윌리암슨 선교사님이 찾아왔습니다. 그리고 그의 권유로 세관에 사표를 내고 조선에 성경을 보급하려는 계획을 갖게 되었습니다. 1865년 ‘1차 조선선교여행’에서 두 달 반 동안 서해안 지역에서 선교활동을 벌이다가 서울로 향하던 중 태풍을 만나 구사일생으로 만주를 거쳐 중국으로 돌아갔습니다. 1866년 ‘2차 조선선교’를 하기 위해 ‘제너럴 셔먼’호 동승하여 대동강변을 따라 성경을 나누어 주면서 ‘야소(예수)’를 전했습니다. 평양에 이르렀으나 조선의 쇄국정책에 의해 배는 군사들의 공격을 받게 되었으며 1866년 9월 2일 경 배는 불타게 되었으며 토마스목사님은 성경을 품에 안고 대동강물에 뛰어들었습니다. 하지만 조선 병사에게 죽임을 당하게 되었습니다. 그의 나이 26세 젊음을 순교의 피로 하나님께 드렸습니다. 놀라운 것은 그의 죽음이 끝이 아니었습니다. 그의 순교의 피는 ‘1907년 평양 대부흥 운동’에 역사하였습니다.

토마스목사님이 죽고 난 다음 33년이 지난 1899년의 일입니다. “목사님! 저는 이제 더 이상 이대로는 못살겠습니다. 제가 토마스 목사를 죽인 박춘권입니다. 그때 그가 죽어가면서 제게 주었던 작은 보따리가 있었는데, 그것은 성경책이었습니다. 그것을 읽고 제 마음이 찔려서 이렇게 목사님을 찾아왔습니다. 제가 어떻게 하면 좋겠습니까?” 이 말을 듣고 있던 마펫선교사님의 눈에 눈물이 흐르고 있었습니다. “영감님, 영감님이 토마스목사님를 직접 보셨단 말입니까?” “보다마다요. 제가 토마스목사님를 죽였다니까요?” “하나님께서는 토마스목사의 죽음을 통하여 영감님과 같은 분들이 예수님을 믿고 구원받기를 위하여 그렇게 하신 것입니다. 그것으로 너무 괴로워하지 마세요. 이제부터 영감님도 예수를 믿고 전하면 됩니다.”

“목사님, 정말 그럴까요? 그때 셔어먼호가 불타는 가운데 사람들을 향하여 성경을 던지는 것을 많은 사람들이 보았습니다. 그 중에는 성경을 읽고 예수를 믿은 사람들이 많습니다.” “저도 어느 여관에 갔을 때 방안이 온통 성경으로 도배가 되어있는 것을 보고 놀란 적이 있습니다. 여관주인을 불러서 연유를 알아보니 토마스목사님이 포리에서 500여 권의 성경을 배포할 때 박영식이라는 평양감청 경비가 사람들이 버리는 책을 주워다가 도배를 했답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여관에 묵어가는 사람들 가운데 이 글을 읽고 예수를 믿는 사람들이 많았다고 제게 들려주면서 자신도 예수를 믿는다고 했습니다. 목사님 제가 알기로도 토마스목사님에게 성경을 받고 예수를 믿은 사람이 많습니다. 홍신길은 후에 대동문에 교회를 세웠으며, 그의 동생도 예수를 믿고 장로가 되었고, 김영섭은 원래 천도교였으나 동생 종권과 함께 교인이 되어 장로가 되고, 황명대는 셔먼호가 불탈 때 ‘야소, 야소’하는 소리를 듣고 평양 초대교회의 신자가 되었습니다. 그 밖에도 많습니다.” 이렇게 토마스목사님이 죽음 앞에서도 두려워하지 않고 뿌렸던 성경은 살아서 조선의 교회가 세워지는 초석이 되었습니다.

바로 토마스목사님이 준 성경책을 받은 최치량은 이것이 금서인줄 알고 겁이 났고, 성경을 박영식에게 건네주었습니다. 박영식 또한 갖고 있다가 이 성경을 뜯어 자신의 집을 도배하게 되었는데, 박영식은 곧 신앙을 갖게 되었고, 최치량도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하였습니다. 또한 후에 일이지만, 토마스목사님를 죽였던 박춘권이라는 이 포졸은 수십 년 후에 부흥회에서 회개하고 예수를 믿었고, 자기 집을 바쳐 교회를 세우게 되었습니다.  중요한 것은 토마스목사님의 성경이 최치량의 손에, 최치량의 손에서 박영식의 손으로 이어져 도배된 박영식의 집이 평양 최초의 교회, 널다리골 교회가 되었습니다. 이 널다리골 교회가 장대제교회가 되었고, 장대제교회가 1907년 평양 대 부흥의 시작인 장대현교회가 되었습니다.


한 사람의 불타는 열정이 조선에 그리스도의 믿음에 뿌리를 내리는 놀라운 일이 일어났으며 그 순교의 피는 지금도 우리의 가슴속에 흘러내리고 있습니다. 이것은 우연이 아니라 하나님의 계획 속에 있었던 놀라운 일입니다. 순종과 섬김은 하나님의 구원 역사의 통로임을 고백합니다. 한 사람의 순종이 한국에 놀라운 하나님의 구원 역사에 영향을 주었는데 그리스도의 순종과 섬김이 있었기에 가능하였습니다. 그리스도의 순종(복종)이 있었기에 그리스도의 푸른 계절을 사모할 수 있는 그리스도의 제자됨을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분명히 선포했습니다. “인자의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 아멘 !!


우리는 지금 ‘사순절’ 중간에 와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고난과 죽음의 의미를 되새기는 중요한 시간에 있습니다. 이런 물음이 두려운게 사실입니다. “주님의 고난을 생각하고 왜 죽으셨는지 되돌아보며 묵상하고 있습니까?” “얼마만큼의 시간을 드려 주님의 고난과 죽음에 대한 섬김을 배우며 행동하고 있습니까?”


사순절의 의미

사순절은 부활절을 위한 신앙의 성장과 회개를 통한 영적 준비의 시기이며, 교회력 중에서 주님의 수난과 죽음에 초점이 맞추어지는 때입니다. 이 절기는 특별한 회개일과 속죄일에서(재의 수요일 2월 25일) 시작되어 성금요일의 슬픔과 비극 가운데 끝납니다. 이 기간에는 금식하며 자기 회개의 기회로 삼아지기도 합니다. 사순절은 부활주일부터 주일을 뺀 40일 전부터 시작되므로 이 기간 동안 자신을 돌아보며 지내는 좋은 교육의 기회로 삼을 수 있습니다. 성경에 40은 광야의 40일 간의 예수의 금식, 시내산에서의 40일간의 모세의 사건, 무덤 속에 40시간 동안 계신 예수님부활에서 승천까지의 40일로 나옵니다. 40은 고난과 갱신의 상징적 기간으로 성경에 나타납니다.


사순절은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과 죽음을 묵상하면서 보내는 기간입니다. 우리의 신앙의 핵심은 고난과 십자가와 부활로 연관되어집니다. 그러므로 사순절 기간에는 대체로 금식을 통하여 주님의 고난에 참여하려고 했습니다. 4세기경부터는 사순절 기간에 하루 한끼만 식사를 하는 금식기간으로 삼았으며 한끼 식사도 육식을 금했습니다. 사순절 기간은 주님의 고난을 생각하며 그 고난에 참여하려는 신앙적 결단은 매우 귀한 일이며 그 고난에 참여함으로 교만을 꺾고 겸손한 믿음을 가지게 되며 고난을 통한 더 성숙한 믿음으로 나아가는 것입니다.


사순절을 통해 우리가 꼭 알아야 할 일

첫째, 우리의 옛 사람이 죽지 아니하면 우리가 그리스도와 함께 새 삶을 살아갈 수 없다는 것입니다. (롬 6:5)

로마서 6장 5절 말씀 “만일 우리가 그의 죽으심을 본받아 연합한 자가 되었으면 또한 그의 부활을 본받아 연합한 자가 되리라.” 우리가 그리스도와 연합했다면 그의 죽음과 함께 우리의 옛사람 역시 죽었다는 것입니다. 로마서 6장 2절에 “무릇 그리스도 예수와 합하여 세례를 받은 우리는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 받은 줄을 알지 못하느뇨.” 그리스도와 연합하면 그의 죽으심을 고백하고 그의 죽으심과 함께 한 자가 된 것이란 말씀입니다. 그리하면 “너희는 유혹의 욕심을 쫒는 옛사람을 벗어버리고” 옛사람은 죽어 장사지낸바 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오직 심령으로 새롭게 되어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사람을 입으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새사람 되는 줄 믿습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죽음에 동참함으로 구습을 쫓지 아니하고 성령을 쫓아 새사람으로 거듭나게 되는 놀라운 축복을 받게 되었습니다. 이 모든 것이 주님과의 연합함으로 이루어졌습니다. 그의 고난과 복종의 죽음을 통하여 이루어졌습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그리스도와의 연합성을 잃지 않고 살아가야 합니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혔나니 그른즉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몸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이제 우리는 예전 삶과는 단절된 그리스도인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와 연합하여 산다면 그이 이름과 영광을 위하여 새로운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리할 때 하나님의 의와 평강과 희락이 충만해 줄줄 믿습니다. 사순절을 통하여 우리가 그리스도와 연합된 자 임을 다시 한 번 되새겨야 합니다. 여러분 새 생명으로 재탄생했음을 믿어야 합니다.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 아멘 !!


둘째, 그리스도는 영광 받으시기 전에 고난과 죽음을 당해야 했습니다.

예수님은 고난 받으시기 전에 세 번이나 제자들에게 자신이 친히 고난 받아야함을 말했습니다. 하지만 제자들은 그 말을 이해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오늘 말씀에서처럼 주님이 고난 받고 죽임당한다고 말했음에도 세배대의 아들 야고보와 요한은 “주의 영광 중에서 우리를 하나는 주의 우편에, 하나는 좌편에 앉게 하여 주옵소서.”라는 다소 엉뚱한 대답을 하고 있습니다. 그들의 관심의 주님의 나라가 이루어지면 그 나라의 무슨 자리를 차지하느냐에 관심을 두고 있었음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주님의 대답은 다릅니다. “너희 구하는 것을 너희가 알지 못하는도다. 너희가 나의 마시는 잔을 마시며 나의 받는 세례를 받을 수 있느냐?”라고 답변해 주십니다. 그들은 주님과 함께 고난의 잔을 마셔야 하며 죽음의 의미인 세례를 받아야 함을 간과하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그 의미에 대한 생각보다는 영광을 얻기 위해 “할 수 있나이다.”라고 쉽게 대답합니다. 주님의 마음은 안타까웠습니다. “너희가 나의 마시는 잔을 마시며 나의 받는 세례를 받으려니와 내 좌우편에 앉는 것은 나의 줄 것이 아니라 누구를 위하여 예비되었든지 그들이 얻을 것이니라.” 그들에게도 고난과 죽음이 따를 것이며 그 이후의 일은 하나님이 하실 일임을 말씀하십니다.


주님은 분명히 알고 계셨습니다. 이 땅에서 자신이 져야 할 무거운 십자가의 고통을, 그리고 그 고통의 십자가를 통해서 모든 사람들에게 구원의 십자가 될 것임을, 주님은 두려워하시지 않고 묵묵히 그 길을 가고 계셨습니다. 우리의 삶의 모범이 되시는 것은 그 힘든 것을 홀로 지셨다는 것입니다. 그 고통과 고난의 순간이 지나야 완전하고 온전한 구원이 임할 수 있음을 알고 행하였습니다. “저를 천사보다 못하게 하시며 영광과 존귀로 관 씌우시며 만물을 그 발아래 복종케 하셨느니라.”(히 2:7~8상)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어 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과 같이 되었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셨으매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이러므로 그를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사 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에 있는 자들과 땅 아래 있는 자들로 모든 무릎을 꿇게 하시고 모든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느니라.”(빌 2:6~11) 아멘!! 하나님은 오히려 죽음의 잔을 영화롭게 하셨습니다. 우리에게도 고난 뒤에 영광이 있음을 말씀하십니다.


셋째, 그리스도는 섬김의 도로 자신을 드렸습니다.

주님은 제자들에게 참된 영광이 어디 있는지 말씀하십니다. “너희 중에 누구든지 크고자 하는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고 너희 중에 누구든지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는 모든 사람의 종이 되어야 하리라.” 주님은 자신이 이 땅의 모든 사람의 종으로 오셨음을 말씀합니다. 정말 순결한 어린 양 되신 주님은 종이 되셔셔 죽음의 길을 선택하셨습니다. 우리들도 그리스도의 제자되기를 소망한다면 그리스도의 종이 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많은 사람의 생명을 위하여 종이 되어야 합니다. 물론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존귀한 자들입니다. 하지만 그 존귀와 영광을 얻기 위해서 고난의 잔을 마셔야 하며 순종과 복종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내 안에 예수의 흔적을 지녔노라고 고백하는 바울처럼 복음을 위하여 우리의 것을 가장 좋은 것을 주님께 받쳐야 합니다. 이 말은 결국 내 몸을 하나님께 산제사 드리는 것입니다. 거룩한 영적 제사를 통하여 받쳐야 합니다. 그리스도는 이 일에 모범이 되셨습니다.


주님은 분명하게 말씀하십니다.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 그리스도 우리의 대속물이 되셨습니다. 우리를 너무 너무 사랑하여 우리가 멸망당하는 모습을 볼 수가 없어서 자신이 친히 인간이 되어서 하나님께 드려졌습니다. 이 큰 은혜를 어찌 찬양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계시록 4장 10절 “이십사 장로들이 보좌에 앉으신 이 앞에 엎드려 세세토록 사시는 이에게 경배하고 자기의 면류관을 보좌 앞에 던지며 기로되 ‘우리 주 하나님이여 영광과 존귀와 능력을 받으시는 것이 합당하오니 주께서 만물을 지으신지라. 만물이 주의 뜻대로 있었고 또 지으심을 받았나이다.’ 하더라.” 계시록 5장 13절 “내가 또 들으니 하늘 위에와 땅 위에와 또 그 가운데 모든 만물이 가로되 ‘보좌에 앉으신 이와 어린 양에게 찬송과 존귀와 영광과 능력을 세세토록 돌릴지어다.’하니” 주님은 고난과 죽음 뒤의 영광을 우리들에게 보여 주시며 당신의 삶을 따라 오기를 원하고 계십니다. 힘들고 어려운 길이라는 것을 아시지만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들을 구원코자 몸소 행하신 바를 우리들에게 원하고 계십니다. 두렵고 떨림없이 그의 구원을 이루는 백성 되기를(빌 2:12) 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주님의 구원이 이르렀음을 축복합니다. 그의 피의 공로 안에 계시기를 바랍니다. 그는 구원자이시여 우리의 피할 요새시며 산성 되시기 때문입니다. 우리도 그의 삶 안에 거하며 그의 행함을 사람들 속에 실천하며 영광 나타내어야 합니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으니라.”(요 12:24) 힘들지만 죽어야 합니다. 주님의 나라 위하여 죽음을 준비해야 합니다. 섬김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사순절 기간 동안 깊이 있게 주님의 고난과 죽음을 기억하며 섬김의 삶을 통하여 하나님께 영광돌리시기를 소망합니다.


지금 미국의 교회들은 사순절 기간 동안 자신의 회개뿐만 아니라 이웃과의 화해, 다른 사람들에게 내가 어떤 존재였는지를 살펴본다 합니다. 그리고 그리스도와의 연합됨을 재확인 하는 의식도 거행하고 있다고 합니다. 세례 받은 자들을 향하여 “당신의 세례를 기억하시오(Remember your Baptism !)"라 선언하면서 종려나무에 물을 적셔 자신에 몸에 뿌리는 의식을(Renewal of Baptism) 합니다. 이것은 형식이 아니라 그리스도인의 신분을 자각하는 중요한 게기가 될 것입니다. 우리들 또한 주님의 함께 하심을 생각하면서 자신의 신앙이 나와 이웃과 관계에 있어 섬김의 도로 살아가고 있는지 재확인 하며 주님의 섬김을 기억하는 사순절 되기를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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