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의 편지

기다리는 사람들(동방박사들)

어저나 2009. 4. 14. 15:53

기다리는 사람들 - 세 번째 동방박사들

                                                         마 2 : 1 ~ 9 (2008. 12. 14)


예수님의 탄생은 인류 역사에 커다란 획을 긋는 놀라운 일입니다. 하지만 이런 놀라운 일에 믿음으로(신앙으로) 다가서는 사람들보다 하나의 신화, 또는 설화, 꾸며진 이야기로 받아들이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신학자들 중에서도 이 역사적 사실을 인정하지 않고 성경의 비신화화 한다며 예수님의 말씀만 진리이고 나머지는 신화로 여겨 성경의 가르침을 벗어나 있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예수를 도덕적 지도자, 사화 개혁자 입장에서 이해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불트만 불만이 좀 많죠)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예수님의 역사성을 믿습니다. 얼마 전에는 예수님의 가족 무덤이 발견됐다며 언론들이 호들갑을 떤 적이 있었죠. 그 당시 예수의 이름은 흔한 이름 중에 하나였습니다. 예수님을 믿음으로 받아들이는 일 중에 가장 힘든 것 세 가지가 있습니다. 그 중 하나가 예수님이 인간으로 탄생하셨다는 사실이고(성육신 하신 하나님), 두 번째는 신인 하나님이 죽으셨다는 것(신의 세속화)입니다. 세 번째는 죽으신 사람이 부활했다는 사실입니다. 이 세 가지는 인간의 이성으로 설명할 부분이 아니라, 오직 믿음으로 신앙적으로 받아들여지는 부분입니다. 먼저 믿음으로 우리에게 은혜를 주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립니다. (할렐루야!! 아멘 감사합니다.)


성경으로 돌아갑니다. 예수님의 탄생부분을 증거하는 복음서는 마태복음과 누가복음입니다.

성경을 자세히 살펴보면 누가 서술했는가에 따라 조금씩 관점이 다릅니다. 요한은 그리스도가 하나님이라고 말합니다. 하나님은 유년기나 나이 드실 일이 없습니다. 하나님은 처음부터 계시며 변함이 없으십니다. 마가복음에서는 그리스도가 종으로서 제시됩니다. 종에게는 유년기에 대해 말할 필요가 없겠죠. 모든 사람이 종의 유년기는 관심이 없으시니까요. 반면에 마태복음과 누가복음에는 그리스도의 유년기에 대한 기록이 있습니다.

두 복음서에는 그리스도의 유년기를 기록하고 있지만 서로의 관점의 차이가 존재합니다. 누가는 그리스도가 합당한 사람이었음을 입증합니다. 예수의 인성을 증거하는데 주력합니다. 하나님이 사람이 되셨지만 부족함이 없다는 것입니다. 예수는 율법대로 할례를 받았고, 유대인의 관습에 따라 첫째 날이 아닌 여덟째 날에 예수라 이름하였습니다. 유월절에는 예루살렘에 올라갔습니다. 모든 이스라엘 남자는 일년에 세 번의 절기를 지켜야 했고 예수님을 율법의 요구에 충실했습니다. 예수님은 신체적으로도 자랐으며 하나님과 사람에게 사랑스럽게 보이셨다고 합니다. 이런 기록들은 예수님이 전형적인 사람이셨음을 증거하는 부분입니다. 예수님을 육신의 몸을 빌려 입은 것이 아니라. 친히 육신이 되셔셔 우리들에게 나타나셨습니다. 아멘!!

마태는 예수님이 하나님 백성들의 왕이심을 보여 줍니다. 누가는 이런 요점들을 포함하지 않지만 마태는 누가가 지나친 부분들을 상세하게 기록합니다. 마태는 아기 예수님이 모든 백성의 왕이심을 입증합니다. 그래서 마태복음 1장 1절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의 세계라” 다윗의 자손 즉 예수님의 왕되심을 선포하고 있습니다. 또한 구약의 약속의 실현임을 말씀으로 들려주고 계십니다. 1장의 예수님의 족보에서 다윗왕가의 족보로 보여주며, 2장에서는 헤롯왕의 두렵고 떨림에서도 발견할 수 있습니다. 마태복음 2장 16절 “헤롯이 박사들에게 속은 줄 알고 심히 노하여 사람들을 보내어 베들레헴과 그 모든 지경 안에 있는 사내아이를 박사들에게 자세히 알아본 그 때를 표준하여 두 살부터 그 아래로 다 죽이니” 이 헤롯 안티파스는 잔인한 왕이었습니다. 그는 이두매 에돔 자손입니다.  '유대인의 왕'의 탄생 소문은 과대망상증에 시달리던 70세의 늙은 헤롯왕에게 엄청난 충격을 안겨 주었습니다. 그와 더불어 메시야를 갈망하던 예루살렘 백성들까지 헤롯의 병적인 정도의 잔인한 학정(oppressive government)과 또는 왕권 교체에 따르는 정변(political change) 등을 두려워했을 것입니다. 사실 헤롯은 전에 그의 과대망상증 때문에 그의 아내와 두 아들 그리고 5명의 마카비 용사들을 살해하기까지 했었습니다.


오늘 본문 말씀에 동방박사의 출현의 이유를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왕으로서 이 땅에 나셨다는 사실이 역사적 사실이라는 것입니다. 아멘!!


동방박사


본문에 '동방으로부터'의 헬라어 '아포 아나톨론'(*)은 '떠오르는' 이란 뜻의 '아나톨레'(*)에서 유래한 말로서 '동쪽으로부터의'(from the east, NIV)라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이런 사실에서 '동방'을 예루살렘 동쪽에 위치향 특정한 땅, 곧 페르시아(Vincent), 바벨론, 메데(Carr), 아라비아, 또는 동쪽에 위치한 모든 곳(Bruce)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아마  이중에서 바벨론이었을 가능성이 가장 높습니다. 바벨론에는 예루살렘에 상당한 영향력을 미쳤던 유대인 포로들이 정착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즉 메시야에 관한 구약 예언을 사전(事前)에 깊이 알고 있었다는 것은 적어도 그들이 유대인과 긴밀한 유대(紐帶) 관계에 있었던 자들임을 암시하며(Wycliffe), 그런 이유에서 그들은 유대인들이 대거 운집해 있던 바벨론에 거주하던 자들로 추정할 수 있습니다. 한편 본문에서는 '박사(*, 마고이)들의 신원은 명확히 밝히지 않고 있다, 여기 '박사'로 번역된 '마고이'는 박수나 점장이 등의 엉터리 마술사가 결코 아니었고 꿈을 해석하는 신통력을 지닌 메데, 바사, 또는 바벨론의 제사장읕 언급할 때에 주로 사용되었습니다(단 2:2, 48;4:6, 7). 특별히 이 용어는 이 때로부터 600년 전에 바벨론의 모든 박수와 술객과 갈대아 술사와 점장이 어른으로 높임 받았던(단 5:7, 11) 다니엘에게 적용되기도 했습니다.  박사들이 (1) 점성학적 계산에 따라 자극을 받고 베들레헴을 향해 온 점, (2) 디아스포라(Diaspora)의 영향 등으로 다니엘의 예언 및 메시야에 관한 구약의 각종 예언에 깊은 이해를 하고 있었다는 점 등을 볼 때 '동방 박사'는 바벨론 출신의 천문학과 점성학에 해박한 지식을 지닌 존귀한 자들로 볼 수 있습니다. 6세기 말 경에 이르러서는 그들의 이름이 각각 멜콘(Melkon, 후에는 Melchior로 밝혀짐), 발사살(Balthasar) 그리고 가스퍼(Gasper)로 밝혀진 바 있습니다. 이들이 우리들에게 신앙적으로 다가오는 것은 이렇게 생각할 수 있습니다. 


첫째, 동방박사들은 이스라엘 사람들의 예언의 말씀을 들었고 그것을 믿음으로 기다렸습니다. 

성경 민수기 24장17절 “저가 지금 없으나 내가 보고 저가 가깝지 아니하나 내가 바라보도다. 한 별이 장차 야곱의 집에서 나옴이여 한 홀이 장차 이스라엘에서 일어나리로다. 선지자 발람의 예언입니다. 이 예언의 말씀은 거명성(큰 별)이 뜰때에 유대에서 세계적인 대왕이 탄생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 후 동방의 수 많은 박사들은 새로 뜨는 큰 별을 먼저 찾으려고 각처에서 하늘을 관찰하며 별의 길을 자세히 연구하였습니다. 수 많은 세월이 흐른 후에도 이 말씀과 메시야의 예언의 말씀을 깊이 있게 연구하던 박사들이 있었습니다. 그 중에 바벨론 보시파에 있는 칠성전 관상대에 그 별을 연구하는 세 박사가 있었습니다. 그들은 이방신을 섬기던 사람이었지만 그들의 열심이 그렇게 기다리던 유대인들은 만나지 못했지만 이들은 만나고 경배하고 예물을 드리는 영광을 얻게 되었습니다.

우리들의 삶을 돌아다봅니다. 주님께서는 우리들에게 수많은 은혜들과 축복들을 약속하셨습니다. 우리들은 잘 알고 있습니다. 근데 우리에게는 열심(열정)이 부족할 때가 많이 있습니다. 간절히 바라고 소망하는 바를 아뢰고 이루어질 때까지 믿음으로 나아간다면 하나님이 분명히 주시리라 믿습니다. 우리의 성급한 결정이 하나님의 역사를 막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약속뿐 만 아니라 징조들을 보여 주시기도 하십니다. 히스기야 왕을 보십시요. 그의 치유의 기적에 해가 십도가 물러가는 징조가 있었습니다. 우리는 말씀을 믿습니다. 그대로 되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의 역사는 우리가 보기에는 많이 더디게 보입니다. 우리의 문제는 순간을 생각하는 것입니다. 믿음의 사람들은 멀리 바라보았습니다. 아브라함을 보십시요. 그는 백세가 되어서야 믿음이 자식을 얻게 됩니다. 지금 힘들 수 있습니다. 인내함으로 기다릴 때 동방박사가 별을 보고 예수님을 만나게 된 것처럼 우리 또한 그렇게 되리라 믿습니다. 요한 일서 5장 4절입니다. “대저 하나님께로서 난 자마다 세상을 이기느니라. 세상을 이긴 이김은 이것이니 우리의 믿음이니라.”   


둘째, 이들의 축복은 예수님을 경배했다는 사실입니다.

저희가 별을 보고...기뻐하고 기뻐하더라 - '별을 보고'라는 말은 그들이 새삼스럽게 별의 나타남(7절)을 보았다기 보다, 아기 예수위에 '머물러 서'있는 별이 자신들의 기나긴 여행의 최종적인 목적지로서 하나님의 임재하심과 은혜, 곧 임마누엘이신 예수(1:23) 탄생을 드디어 목격할 수 있게 되었다는 사실을 확신하였다는 말입니다. 이 확신은 그들로 하여금 세상에서 맛볼 수 없었던 무한한 기쁨의 세계로 들어가게 했습니다. 그러한 그들의 기쁨을 표현한 본문 중 특별히 '가장'에 해당하는 헬라 '스포드라'(*)는 '충만하여 차고 넘치는 상태'를 나타내는 말이며, '큰'(*, 메가렌) 역시 크고 놀랍고 장엄함을 뜻하는 단어이입니다. 이 두 단어의 만남은 결국 그 기쁨의 실체가 최상에 이르렀음을 암시함니다. 그리고 '기뻐하고 기뻐하더라'(*, 에카레산 카란)는 기쁨을 뜻하는 헬라어 '카라'(*)라는 동일 어근의 중첩(重疊)으로서 이를 문자적으로 해석하면 '기쁨을 기뻐했다'(they rejoiced with joy)가 됩니다. 본문은 박사들의 기쁨이 절정에 이르렀음을 보여줍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뜻에 무관심한 택한 백성들의 소동(3절)에 비하여 얼마나 값진 일입니까? 그들은 샛별(벧후 1:19)의 인도를 따라 왔기 때문에 의(義)의 태양이신 그리스도를 뵐 수 있게 되었던 것입니다. 즉 그들의 기쁨은 자신들에게 닥친 크나큰 행운(메시야를 만나 보는 일)을 볼 수 있었기에 가능했던 것입니다.

엎드려 아기께 경배하고 - 상대방에게 무릎을 꿇고 '엎드려 경배'하는 것은 헬라나 로마의 예법이 아니라 동방의 예법입니다(2절). 동방 박사들이 경배했던 대상은 마리아와 '함께'가 아니고 오직 아기 예수 뿐이었습니다. 즉 그들은 헤롯에게나 아기의 부친과 모친에게도 경배하지 아니했습니다. 경배의 대상은 오로지 만왕의 왕으로 이 땅에 오신 예수 한 분 밖에 없는 것입니다(4:10). 할렐루야!! 이것은 기다린 자들의 공통된 그들의 평생의 소원, 축복 아기 예수님을 만났다는 사실입니다. 우리에게도 예수님을 만나면 놀라운 축복이 있으리라 믿습니다.



셋째, 아기 예수님께 예물을 드렸습니다.

백발에 흰 수염을 가진 멜콘은 황금을 드렸다고 합니다. 이 황금은 그리스도의 왕되심을 상징합니다. 히 12:2 “믿음의 주여 또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라는 말씀을 생각할 때 이는 왕을 가르키며 그는 믿음의 주를 의미합니다. 밷전 2:4 보배로운 산돌, 고후 4:7 질 그릇 속에 담겨질 보배입니다.

홍안의 가스퍼는 유황을 드렸다고 합니다. 유황은 예수님의 신성을 의미합니다. 제사장의 권위 곧 하나님과 인간의 관계의 중계자로서 사랑의 주라는 고백입니다. 유황은 제단 위에 태우는 최상급의 향내나는 향품으로 이는 희생 제물이 되신 에수 그리스도의 아가페의 사랑을 의미합니다.(선지자)

검은 얼굴에 수염이 많았던 중년의 발사살은 몰약을 드렸다고 합니다. 몰약을 드림은 예수님의 수난과 죽음을 예비한 것으로 부활에 대한 소망의 주라는 고백입니다.(제사장)


중요한 것은 우리의 삶이 드림이 되고 고백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재림의 주님을 맞을 때 예물을 준비했으면 합니다. 믿음과 순결한 몸을 준비하기를 소망합니다. 막연하게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소망으로 연단과 인내를 통하여 단련된 믿음으로 주님을 만나길 간절히 소망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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