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가복음

세례요한의 죽음

어저나 2009. 4. 19. 21:29

세례 요한의 죽음 ( 막 6 : 14 ~29 ) (2009. 2. 8)

 

♦ 헤롯 Ⅰ세의 가계도

 

마가복음에는 두 개의 ‘수난기사’가 실려 있으며 그 첫 번째가 세례 요한의 투옥과 죽음이다. 세례요한의 투옥과 죽음을 알기 위해서는 헤롯 왕가의 복잡한 가계를 알아보아야 한다. 왜 세례 요한이 그들의 불의를 지적했는지 알기 위해서이다.

 

헤롯 Ⅰ세에게는 여러 명의 아내가 있었다. 그의 아들은 그의 가문을 명시하는 ‘헤롯’의 이름을 사용하고 있다.(예 헤롯 아켈라오, 헤롯 빌립, 헤롯 안다바, 손자 헤롯 아그립바) 헤롯Ⅰ세가 죽은 후 그의 영지는 헤롯Ⅰ세와 말다케에게서 난 아들인 아켈라오(마2:22)에게 북부 이두매와 슈다와 사마리아를 통치하게 하고, 다른 아들인 안디바에게는 갈릴리와 베레아를 주었으며, 요단 건너 헤르몬 산에서부터 야르묵 강 사이는 헤롯Ⅰ세와 클레오파트라와 사이에서 난 아들 빌립 (마14:3)에게 주었는데 아켈라오에게는 왕의 칭호 대신 군주란 이름을 주었다. 이리하여 아켈라오는 10년간(BC4-AD6)통치한 후 로마 황제의 의심을 받아 폐위되고 그곳은 황제의 직속 총독이 다스렸다. 한편 안디바는 AD39년까지 갈릴리와 베레아의 분봉왕으로, 빌립은 AD34년까지 그에게 주어진 지역의 분봉왕으로 다스렸다.

 

세례요한이 투옥된 결정적인 일은 헤롯 안다바와 헤로디아의 결혼의 부정성을 지적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먼저 헤로디아에 대해 살펴본 후 그의 투옥과 죽음에 대해 알아보자.

 

 

 

 

헤로디아

헤로디아는 헤롯Ⅰ세와 그의 아내 마리암네 사이에서 태어난 아리스토부루스 4세의 딸이다. 세 명의 남자 형제와 1명의 여자 형제가 있었는데, 그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나중에 유대의 왕이 된 헤롯 아그립바Ⅰ세이다.

헤로디아는 3번 결혼했다. 첫 남편은 삼촌뻘인 헤롯 2세(헤롯 Ⅰ세과 그의 세 번째 부인 미리암네의 아들)인데 헤롯 Ⅰ세의 계승자의 지위에 있다가 반역 음모 연루되어 실각하고 6년 암살당했다.

첫 남편이 암살당하자 역시 삼촌인 헤롯 빌립 2세(헤롯 Ⅰ세과 그의 세 번째 부인 미리암네의 아들)와 결혼했고, 그가 신약성경(마태복음(14:3), 마가복음(6:17))에 빌립으로 묘사된 인물이다. 이 결혼에서 딸 살로메를 낳았다.

세 번째 결혼이 역사상 유명하고 중요한 결혼이다. 23년경 그녀는 이혼하고, 또 삼촌뻘인 분봉왕 헤롯 안디바와 결혼했다. 이 결혼은 도덕적으로 비난받았지만, 서로에게 유리한 조건의 결합이었다. 장차 왕위를 노리는 헤롯 안디바의 입장에서는 하스몬 왕조 후손인 헤로디아의 결합이 왕위 계승에 큰 도움이 되었고, 헤로디아도 이 결혼으로 사회적 지위를 한 단계 높여 왕비가 될 수 있는 계기가 되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이 결혼은 모세의 율법에 위배되는 것으로 여겨져 많은 신앙심 깊은 유대인의 반감을 샀고, 특히 세례자 요한은 공개적으로 이 결합에 대해 비난했다.

37년 헤로디아의 남자 형제인 헤롯 아그립바 1세가 바타나이아와 트라코니티스의 분봉왕으로 봉해지자 헤로디아는 이를 시기하여 남편 안디바를 부추겨 로마 제국의 황제 칼리굴라에게 헤롯 아그립바 1세를 모함하게 하였으나 실패하고, 결국 헤롯 아그립바의 역공을 받아서 안티파스는 실각하고 헤로디아와 함께 갈리아로 유배되었다. 헤롯 아그립바 1세는 헤로디아에게 유대로 돌아올 것을 제안했지만 헤로디아는 이를 거부하고 남편을 따라서 유배를 자청했고, 갈리아의 유배지에서 죽은 것으로 추정된다

 

세례 요한의 투옥과 처형

유다 역사가 요세푸스는 헤롯이 요한을 투옥하고 처형한 이유가 요한이 폭동의 지도자가 될까 염려하였기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그의 주장에 의하면 안디바의 영토는 베뢰아라고 하는 길죽한 지형을 포함하고 있어 그 지역은 나바티아의 왕국과 접경하고 있었다. 헤롯은 헤로디아와 결혼을 하기 위해서는 불가피하게 나바티아의 아레타Ⅳ세의 딸인 전처와 헤어져야 했다. 그러므로 헤롯의 부정한 결합에 대한 불법성을 요한이 선언하고 나설 때에 외부적으로 그의 영토 동부에서 나바티아인들을 선동하고 내부적으로는 그의 영토 안에서 폭동의 징조로 해석하였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마가의 주장은 요세푸스와 다르게 세례 요한의 투옥과 처형의 음모를 헤로디아에게 있음을 지적한다. 사실 헤롯은 세례 요한을 하나님의 사람으로 인정하고 있었으며 그의 처의 복수를 행하려는 악의에서 보호하기 위해 연금해 둘 필요가 있었다. 세례 요한은 헤로디아와 안디바의 결혼은 음행이며 충격으로 받아 들였다. 왜냐하면 모세의 율법에 의하면 자기 형제가 생존하여 있을 때 그 형제의 처와의 결혼을 분명히 금하고 있기 때문이다. 레위기 18장 16절 “너희 형제의 하체를 범하지 말라 이는 네 형제의 하체니라.” 레위기 20장 21절 “누구든지 그 형제의 아내를 취하면 더러운 일이라. 그가 그 형제의 하체를 범함이니 그들이 그 죄를 당하여 무자히 죽으리라.” 세례 요한의 설교는 헤로디아에게 자극을 주었고 그를 죽일 기회를 찾고 있었던 중 이었다.

헤로디아가 마음에 둔 분노를 행동으로 옮기지 못하고 있던 중 적절한 기회가 왔다. 헤롯의 생일이 되어 고위 신하들과 지방의 귀인들을 초대한 연회가 열렸다. 이 기사가 주는 인상은 헤로디아가 자기 딸인 살로메에게 계획적으로 춤을 준비하게 하였으며 헤롯으로 하여금 자기의 욕심을 받아들이도록 사전에 꾸며 놓았다. 살로메가 춤을 추었을 때는 나이가 14-5세 정도였을 것이다. 상식적으로 미혼이 아니었다면 그의 남편이 춤을 추도록 허락하지 않았을 것이다. 살로메의 대담하고 관능적인 춤은 많은 사람을 매혹시켰으며 잔치의 흥에 겨운 헤롯은 호기를 부렸다. “내 나라의 절반까지도 주겠다”라고 약속한다. 헤로디아는 기다렸다는 듯이 세례 요한의 머리를 요구하였다. 내빈 앞에서 헤롯은 맹세하였기 때문에 자기의 약속을 어찌하지 못했다. 헤롯은 소녀의 요구대로 세례 요한의 머리를 소반에 담아 헤로디아에게 받쳐지게 된다. 그리고 얼마나 시간이 지났는지는 모르지만 세례 요한의 제자들에 의해 장사가 치러진다.

6장 17절에서 29절 까지의 초점은 요한의 수난이다. 그러나 놀라운 사실은 세례 요한이 중심이 아니라 이 기록이 누구를 위해 준비된 것이며 그는 항상 배경에 머물러 있다. 이 기사의 강조는 오직 요한에게 저희들이 무엇을 행하였는가이다. 이 문제는 9장 9절에서 13절에서 풀린다.(엘리야가 먼저 와서 많은 고난 받았음을 그리고 사람들이 임의로 대하였음을 예수님께서 친히 말씀하는 부분이다.)

 

이 세례 요한의 수난 기사를 통해 얻을 수 있는 교훈은 다음과 같다.

 

첫째, 사악한 세상에 필요한 것은 정의의 사람이다.

세례 요한은 사람의 얼굴을 두려워하지 않았고 광야에서 솔직하게 죄를 책망하였으며 회개를 선포하였으며, 헤롯 부부의 부당한 결혼에 대하여서도 에언자적인 말씀의 선포로 나타난다. 그는 죽음으로서 정의를 실현하고자 하였다. 죽음 앞에서 정의롭게 말씀을 선포하기는 쉽지 않다. 구약의 많은 선지자들이 하나님의 이름으로 왕들의 죄를 지적하며 백성의 죄에 대한 회개와 심판을 강조하듯이 하나님의 말씀을 가감 없이 전했다. 오늘날 시대를 보면 “평안하다. 평안하다”라고 연약한 그리스도인들을 양산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부정부패의 고리를 과감하게 지적하고 임박한 하나님의 나라 도래를 선포하며 나아가야 한다. 예언자의 음성이 곳곳에 나타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세상을 바르게 바라보는 시각의 차이를 볼 수 있다. 정치적 외침에 있어 시대정신을 파악하고 지금의 상황을 정확하게 인식할 필요가 있다. 예를 들어 “친북 좌파세력”을 ‘공산주의자’로 보고 진보적인 세력들의 사회 개혁 운동조차 ’적그리스도‘ 영에 미혹된 것이라고 무작정 외치는 것은 교회를 부정적 집단으로 만드는 것이다. 교계 전체에서의 심각한 논의를 통하여 합의된 결론이 있기 전에 먼저 자신의 견해만을 피력하는 것은 기독교를 심각한 ’우파 세력‘으로 각인시켜 교회를 부정적 시각으로 바라보게끔 한다. 무엇이 정의인지 깊은 고민과 반성이 필요하다. 대안 없는 비판은 안티를 재생산할 뿐이다. 우리는 다 세례 요한이 아니다. 시대를 성경에 제대로 반추할 수 있는 끊임없는 기도와 말씀 연구가 필요하다. 그런 정의의 사람이 많이 나타날 수 있기를 간절히 기도한다.

 

둘째는 위선, 체면, 허영이 대죄를 범하게 만든다.(헤롯 안디바)

헤롯 안디바는 거하게 자신의 생일잔치를 열어놓고 엉뚱하게 살로메의 춤에 현혹되어 자신이 친구로 생각한 세례 요한을 죽음의 길로 내몰아 결국 그를 죽이고 마는 결과를 초래하게 된다. 예수님은 바리새인과 서기관의 위선과 허영을 심각하게 비판하며 심판을 선포하였다. 우리 민족의 미풍양속 중에 좋은 풍속이 많은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 그것이 형식화 되고 자신을 보는 눈들을 생각하기 시작하면서 많은 문제를 일으켜 왔다. 개신교인 우리는 바래새인의 외식을 싫어한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은 십일조와 박하와 회향을 원하시는 것이 아니라 그 속에 있는 의(義)와 인(仁)과 신(信)을 원하고 계신다. 예수님은 분명하게 말씀하였다. 우리는 우리 자신을 끊임없이 살펴보아야 한다. 겉모양만 그리스도인 되는 것이 아니라 마음 깊숙이 흘러나오는 신앙인이 되도록 경건을 쌓아가야 한다.

 

셋째는 세례 요한은 항상 예수님의 그림자의 삶을 살았다.

세례 요한은 항상 중심에 서기를 꺼려 왔다. 예수님이 세례 받으려 오셨을 때에도 “당신의 신들메를 감당치 못하겠다고 말했다.” “내가 오히려 당신에게 세례를 받아야 한다”고 이야기 했다. 그는 예수님이 오시기 전에 그이 첩경을 평탄케 하기 위하여 준비된 자라 말했고 회개만을 선포했다. 자기 자신이 결코 구원의 중심에 있지 않음을 선포했다. 그이 죽음 역시도 예수님이 죽음 당하실 것을 예표로 보여 주셨다. 그는 준비된 자였다. 아마 많은 기도와 말씀으로 준비되어 있었다. 후대 학자들은 요한을 엣세네파의 일원으로 간주하기도 한다. 광야에서 공동체 생활하며 하나님의 말씀을 연구하는 사람으로 보고 있다. 우리는 예수님의 재림을 준비하는 자들이다. 우리는 그 것을 준비하며 그 사실을 외치면 되는 것이다. 우리가 재림의 주체가 아니기 때문이다. 우리가 주님의 재림을 좌지우지 못한다. 예수님조차도 그날은 아버지만 아신다고 말씀하셨다. 우리는 착각 속에 빠지지 않도록 해야 한다. 주님께 모든 것을 내려놓고 주님 앞에 맡겨야 한다. 하나님의 주권의 영역에 인간이 개입해서는 되지 않는 일이다. 함부로 재림을 이야기 하지 말자. 우리는 조연의 삶을 살더라도 기뻐해야 한다. 천국에 가면 주연이 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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