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지와 개신교 유적탐방기

대구제일교회 시작

어저나 2009. 4. 22. 13:46

 

 

대구 스테이션 개설(스테이션은 선교사들이 거주하는 주택, 예배드리는 예배당, 주민과 접촉할 수 있은 사랑, 선교 비품을 보관할 수 있는 창고 기타 마구간 등)

 

베어드 목사는 1896년 1월에 남문안에 위치한 정완식씨 소유의 땅 420평과 지상 건물 초가 5동 20여간, 와가 1동 6간의 큰 저택을 구입했다. 가격으로는 당시 가격으로 4백 35원 52전이며 이 부동산이 현재 남성로에 남성로 약전 골목에 있는 구 제일교회 부지이다.

 

대구 최초의 예배당

베어드목사는 1896년 서울지녁 교육 담당 고문으로 발령이나 12월에 서울로 떠났다. 11월에 그에 그의 손 아래 처남 애덤스목사(안의와)에게 인계하였다. 애덤스목사는 1895년 5월에 부산에 입국했으나 한국어 수업을 하고 있었고 1896년에 대구 스테이션의 책임자로 발령 났으나 부산에서 어학공부를 하고 1897년 11월 1일에 부인(Nelie Dick)과 아들(Edward)과 어학선생 겸 조수 김재수와 임시 간호원 마리 체이스와 양과 대구에 왔다. 그 날 첫 예배를 드렸다.(그는 1923년 대구를 떠났다. 그 때까지 학교를 새우며 많은 업적을 남겼다.)

 

처음 교회 이름 

1897년 11월 1일 처음 예배를 드렸지만 교회 이름은 정해지지 않았다. 교회 이름은 다양하게 추정되는데 '대구읍교회''성내교회''감영교회''남문안교회''남문내교회' 등이다.

1901년네 사진속에 '야소교회당'이란 한문으로 보이는 걸로 볼 때 '야소교회당'이 제일 먼저 교회 간판으로 사용했던 이름이었다.

 

처음 예배당 모습

 

 

제일 교회의 첫 번째 성전이다. 주일 낮 예배 후의 사진인데, 네번째가 아덤스목사, 여섯번째가 존슨의사이다. (1896년 1월에 매입하고 수리만하여 성전으로 사용했다.) 

 

1800년대의 대구읍 지도 , 노란부분은 성내이며 동, 서, 남, 북으로 각각 문이 있다. 제일 교회는 남문 안에 위치해서 대구 '성내교회' 에서 '남문내 교회', '남문안 예배당'이라 했다.

 

 

 

 

1896년 1월 장완식씨 소유의 큰 저택을 사서 수리하여 예배당으로 사용한 첫 성전으로 남자 신도만 보인다.

 

 

 

1901년 첫 번째 남자 사경회

 

 출처 대구 제일교회 110년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