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지와 개신교 유적탐방기

제일교회 세번째 예배당

어저나 2009. 4. 22. 15:57

세번째 예배당 건립

 

1931년 2월 김익두목사는 모시고 예배당 신축을 위한 부흥 사경회를 개최하였다. 그 때 연보가 6,000원에 달하여 7월 17일 교인대회를 열었고 20명 신축위원을 선임했다. 최재화목사가 부임하자 그 일이 더욱 빨리 진행되었다.

 

최재화목사는 주일 후 월요일부터 자건거를 타고 건축 연보 모금을 위해 지방교회를 다녔다. "경북의 어머니 교회 짓는데 벽돌 한 장 연보하기"가 최목사가 내건 표어였다.

 

건축진행은

1932년 9월 6일     건축 기성회 탄생

1933년 5월 1일     기공

1933년 6월 23일   정초식

1933년 10월 10일  입당식

1936년 12월 20일  준공

 

세번째 에배당은 1933년 9월에 준공한 다음 종각은 3년 후 1936년에 서양 고딕 건축 양식인 벽돌 5층으로 완공했다.

 

세번째 건립된 예배당 모습

 

 

세번째 예배당으로 최재화 목사가 자치 파동으로 피폐된 교회를 재건하고 교회의 정신을 쇄신하고자 1932년 1월에 새 성전 건축을 결의하여 4월 2일에 정초 예배를 드린 후, 1933년에 총 공사비 1만 5천원으로 2층 448평으로 새 성전을 완공했다. 교회 이름도 남성정 에배당에서 '제일예배당'으로 개명했다. 사진은 1933년 8월 9일자 기독신보에 실린 것이다.

 

 

 

전조선 주일학교 제4회 대회가 1933년 10월 16일에서 13일 까지 제일교회에서 열렸는데 전국에서 3,600명이 참석하였다. 이 기간 중 1933년 10월 8일 오전 11시에 대구제일교회 세 번째 성전의 입당예배를 드렸는데 최재화 목사의 사회로 진행되고 라셀 박사의 '예루살렘 두 번째 성전 건축'이란 설교로 참석자들에게 큰 감명을 주었다. 이때부터 대구를 제2예루살렘이라 불렀다.

 

 

 

 

19994년 4월 17일 남성로 예배당에서의 마지막 예배를 드리고 돌아가는 성도들

(이 예배당은 1992년 1월 7일 대구시 유형 문화재 제 30호로 지정되었다.)

 

출처  대구 제일교회 110년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