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의 편지

천국을 소유하려면

어저나 2009. 4. 24. 22:47

천국을 소유하려면? (마 13 : 44 ~ 46) (2009. 4. 26)

 

20대에 저에게 가장 소중했던 것은 ‘사랑(연애)’, ‘자유’였습니다. 30대에서는 ‘가정’, ‘일’이였습니다. 40대 초반에는 ‘성공(번영)’ 이었다면 이제 40대 중반 이후의 삶을 살기 위한 돌아봄의 시간을 갖고 있습니다. 무엇을 위한 성공과 번영을 꿈꾸고 있는 지 저 자신의 생각을 다시 한 번 고민하여야 할 필요성을 느낍니다.

 

월요일에는 비가 왔습니다. 앞에 함지산이 더욱 푸르게 변해 감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아침부터 조금 설레고 흥분되었습니다. 대구 최초의 개신교 교회인 제일교회와 그 주변을 탐방하기로 작정한 날이었기 때문입니다. 운동을 잘 안한 탓에 짧은 시간이었지만 걷고 , 관람하고, 자료를 구하고, 사진을 찍는 게 힘들었나 봅니다. 다리에 알이 배길 정도는 아니였지만 쉽지 만은 않았습니다. 돌아와서 목요일까지 자료를 정리해 저의 블로그에 올렸습니다. 여러 가지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되었으며 각오를 다지는 중요한 시간들이었습니다.

 

제2의 예루살렘, 은혜정원

이번 짧은 시간을 통하여 알게 된 두 가지 사실이 있습니다. 첫째는 이때까지 대구를 ‘제2의 예루살렘’이라 불렀는데 정확한 명칭의 사용되게 된 유래를 알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1933년 대구 제일교회가 세 번째 예배당(현재 남성로 있는 제일교회로 대구시 유형문화제 30호 지정된 건물)을 건립하고 입당예배 드렸는데 그 때 라셀 박사님이 “예루살렘의 두 번째 선전 건축”이란 설교로 참석자들에게 큰 감동을 주었다고 합니다. 입당예배 드리는 때를 맞이하여 ‘전조선 주일학교 제 4차 대회’가 열리고 있었는데 전국에서 4300명이 참석했고 건물의 웅대함을 느껴서 평양과 대구를 예루살렘에 비유하며 뜨거운 신앙으로 교회가 부흥하고 있음이 널리 알려지게 되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두 번째는 ‘은혜 정원(Garden of Mercy)’입니다. 여기에는 조선을 선교하기 위해 머나먼 태평양을 건너 미지의 땅 ‘조선’에 복음을 전해야겠다는 하나님의 부르심에 순종하여 자신이 안위와 생명을 아끼지 아니하고 헌신하다 죽어간 선교사들과 그들의 가족과 간호사들의 무덤이 있는 곳입니다. 이곳에는 대구에 최초를 복음을 전한 ‘베어드(배위량)’ 선교사를 뒤 이어 복음을 전한 ‘아담스(안의와)’ 목사님의 아내 ‘넬리 딕’의 무덤이 있습니다. 그녀는 1895년 5월에 부산에 와서 부산에서 선교를 하다가 대구에 부름을 받고 대구에서 헌신하였습니다. 그녀는 1909년 10월 31일에 유산의 후유증으로 소천하였습니다. 대구 경북의 믿음의 어머니라 할 수 있습니다.

 

또 대구의 최초의 개신교 처녀 선교사인 마아사 스윗쳐의 묘가 있습니다. 그녀는 1880년 미국 미조리주 세인트루이스에서 출생하여 뉴욕 컬럼비아 대학과 시카고의 무디 성경학교를 졸업하고 복음에 대한 뜨거운 열정으로 무보수의 해외 선교사를 지원했고 1911년 한국 대구 선교지부에 배정받아 대구를 섬겼습니다. 그녀는 월급을 받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그녀의 재산을 그리스도의 복음을 위해 아낌없이 바치다 1929년 4월 3일 대구에서 하나님 나라의 부름을 받았습니다. 그녀는 18년 동안 대구의 복음화와 그리스도의 정신을 가르치다가 아름답게 생을 마감하였습니다.

 

그리스도에 대한 사랑과 복음에 대한 뜨거운 열정으로 자신의 생을 헌신한 그들의 숭고한 삶을 생각하면서 다시 한 번 복음에 대한 열정이 내 가슴속에서 되살아남을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제가 이 탐방을 기획한 연유 또한 과거를 통하여 현재를 바라보고 현재를 통하여 미래를 바라보기 위함이었습니다. 궁극적으로 앞으로 살아갈 삶의 방향성을 찾기 위한 몸부림이었습니다. 앞으로 개신교 성지를 찾아 계속하여 하나님의 나라와 하나님 나라의 확장과 복음의 전파를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바친 사람들의 생을 통하여 내 자신의 삶을 되집어보고 앞으로 복음을 위해 헌신하겠다는 각오를 다져 나갈 것입니다.

 

우리의 삶의 궁극적 목적은 하나님 나라의 확장과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의 정신으로 복음의 전파에 노력하며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로서의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우리는 과거 속에 갇혀서도 되지 않으며, 현재에 안일한 태도로 미래를 잃어버려서는 되지 않습니다. 열정과 헌신의 삶을 살다 자기의 몸을 드리신 예수 그리스도의 삶이 우리의 삶의 방향이여야 함과 부단히 복음 증거를 위해 헌신을 삶 살기를 애쓰며 자신의 전부를 그리스도께 드리기를 주저하지 않기를 바라며 말씀을 나누고자 원합니다.

 

1. 복음은 값진 것입니다.

달성공원에 가며는 요즘은 있는 지 잘 모르지만 ‘야바위꾼’들이 있습니다. 종지 세 개 중에 한 개에다 주사위를 넣고는 이리저리 움직입니다. 그러고는 주사위가 있는 종지를 맞추면 돈을 건 액수의 두 배를 주는 겁니다. 저도 여러 번 보았는데 한 눈에 알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거기에는 그들의 속임수가 있습니다. 세 명 정도가 한 조가 되어 자기들끼리 돈을 주고받는 것입니다. 처음에는 그걸 모르고 시작한 사람은 돈을 따게 되어있습니다. 그러다 시간이 지나면 돈을 다 잃고 자리를 뜨게 되어 집니다. 여러분 영화 ‘타짜’에도 그렇지 않습니까? 그 속에는 속임수가 있습니다. 세상에는 진짜보다 가짜가 훨씬 많이 있습니다. 요즘 ‘신상’에 빠져 있습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이 ‘모조품’에 속아서 그것이 진짜인줄 알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우리나라에 ‘가방’ ‘지갑’ ‘옷’ ‘시계’등 모조품이 잘 팔린다고 합니다. 가짜가 진짜처럼 살아가는 세상이 지금 우리의 삶의 현장의 모습입니다.

 

우리는 ‘신상’ ‘명품’(신문에 로렉스 시계 1억원짜리가 선물로 오갔다는 기사를 보고, 백화점 상품권 2억원 이야기도 읽습니다. 제 정신이 아닌 사회처럼 보입니다. 제 보기에는 정상이 아닙니다. 200만원짜리 백화점 상품권 본 적이 있습니까?)보다 더 소중한 보배를 지니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고린도후서 4장 7절 “이 보배를 질그릇에 가졌으니 이는 능력이 심히 큰 것이 하나님께 있고 우리에게 있지 아니함을 알게 하려 함이라.”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가슴에 품고 살 수 있는 은혜를 하나님이 주셨습니다. 세상 그 무엇보다 소중한 사랑과 은혜를 주셨습니다.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요한복음 1장 12절) 그리고 그 아들의 권세를 가진 이에게는 “너희가 내 이름으로 무엇을 구하든지 내가 그것을 행하겠으니 이는 아버지로 하여금 아들 안에서 영광을 받으시게 하려 함이라 너희가 내 이름으로 무엇이든 구하면 내가 행하겠노라.”(요 14:13, 14) 진짜를 소유한 우리들에게는 놀라운 축복이 있음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복음은 값싼 것이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얻어지게 된 값비싼 순종과 헌신의 보증수표입니다. 이 값비싼 것을 ‘거저 주라’ 말씀하신 예수님의 말씀을 돌이켜보면 또한 은혜가 됩니다. 오늘 성경에도 하나님의 나라는 ‘보화’ ‘진주’로 비유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아무에게나 거저 주는 것이 아님을 예수님이 비유를 통하여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말씀을 깊이 묵상하면서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고 구원의 증거이지만 너무 홀대하고 살지 않았나? 생각하게 합니다. 깊이 있게 묵상하고 그렇게 살았다면 회개하고 복음을 회복하는 시간이 되기를 바랍니다. 복음 그냥 그저 얻어지는 것이 아니기에 복음을 증거 할 때에는 세상의 그 어떤 ‘신상’ ‘명품’보다 값비싸다는 것을 가르쳐야 합니다. 또 그렇게 전해야 합니다. 또한 내가 이 보배를 소유하기 위해 어떤 노력을 치루어야 할지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2. 내 안에 열정이 있어야 합니다.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신상’을 향한 사람들의 욕구가 어떤 지는 여러분도 잘 아시리라 여겨집니다. 물론 매스컴의 영향도 있겠지만 과도한 인간의 소유욕이 만들어낸 신조어이기도 합니다. 이것을 얻기 위해 청소년들이 ‘절도’ ‘강도’ ‘성매매’ 등 심각할 정도의 사회문제를 야기하고 있습니다. 제가 보기에는 어느 정도의 과시욕을 넘어서 ‘집착’의 상태라 생각합니다. 모든 것을 다 투자하는 정신병의 일환으로 느껴질 정도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렇게 자기가 갖고 싶어 하는 것에 집착하는 경향을 가지는 이때에 우리의 구원을 이루시고 우리에게 최고의 사랑을 선사하신 예수님에 대한 우리의 마음은 무엇입니까?

 

오늘 말씀에 값진 보화와 진주를 발견한 사람은 “자기의 소유를 다 팔아” 샀습니다. 값진 진주와 보화를 얻기 위해 발견한 후 숨겨두고는 자기가 가진 것을 다 팔아 샀다는 말씀입니다. 충분한 값어치를 치러 샀습니다. 우리에게는 소유욕이 있습니다. 소유욕만으로 얻어지는 것은 거의 없습니다. 대가를 지불해야 합니다. 정말 나에게 필요한 것이 생긴다면 무엇이 아쉽겠습니까? 연예할 때 생각해보십시오. 사랑하는 자에게 무엇이 아깝습니까? 소원하는 대로 다 주지 않습니까? 전 어머니의 사랑을 옆에서 지켜봅니다. 자식을 너무 사랑해서 밥도 먹지 않고 자식을 간호하기도 하고 눈물 흘리기도 하는 모습을 봅니다. 저도 간혹 아이들의 전화에 감동 받고 저도 모르게 눈에 눈물이 맺혀 있음을 발견하곤 합니다.

 

열정은 사랑의 한 속성입니다. ‘하나님의 파토스’ ‘파토스’는 열정을 뜻하는 헬라어입니다. 하나님의 파토스의 결말은 자기 자신이 인간이 되어 이 땅에 와서 죽음으로 완성되어집니다. 하나님의 열정은 너무 커서 자신이 친히 죽어야만 했습니다. 그렇지 않고서는 자기 백성을 저희 죄에서 구원할 방도가 전혀 없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최후의 방법을 쓰셨습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인간 구원을 위한 열정이 여러분 가슴 속에 뜨겁게 타오르시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앞에서도 말씀드렸지만 자신을 제물로 바친다는 것은 힘든 일입니다. 그러나 믿음의 사람들은 자신을 드리기에 주저하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성령체험이후 스테반이 순교한 후 초대교회의 순교의 역사는 시작되고 있는 것을 봅니다. 스테반은 예수님을 바라보면서 돌에 맞아 죽어갔습니다. 그리고 야고보사도가 죽었고 전승에 의하면 요한을 제외한 모든 사도들이 순교하였으며 로마에 의해 10번의 대 박해를 경험했으며 선교를 위하여 수많은 사람들이 죽어갔으며 이 땅을 위해서도 많은 그리스도인이 희생의 제물로 드려지게 된 것을 역사를 통해 알 수 있습니다. 이들에 그리스도를 향한 뜨거운 열정이 있었기에 가능했습니다. 그리스도를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아까워하지 않는 성도들의 헌신이 있었기에 오늘날 우리의 신앙이 존재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열정의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남들이 탐을 낼 정도의 수고와 헌신이 있어야 합니다. 뜨거운 열정에 사로잡힌 사람이어야 하나님의 쓰임을 받을 수 있습니다. 여러분의 열정을 가장 값지게 받으시면 기뻐하실 분은 여러분을 위해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신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3. 다 드려야 합니다.(온전한 헌신을 말합니다.)

보화와 진주를 사려고 “자기의 소유를 다 팔아”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실지로 값진 것을 발견하고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면 자기의 소유를 다 팔지 않겠습니까? 사도행전에 아나니아, 삽비라의 사건이 나옵니다. 그들은 자신의 소유를 다 드리지 않고 숨겨두고 다 드렸다고 했습니다. 결과는 하나님의 준엄한 심판이 있었습니다. 문제는 남을 속인데도 있지만 그들은 사도의 말에 순종하지 않았으며 온전한 드림이 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사도행전에 바울과 함께 사역했던 바나바가 나옵니다. 그의 이름의 뜻은 권위자라 성경은 밝히고 있습니다. 그는 바울을 안디옥에 천거한 자요 마가 요한의 외삼촌입니다. 그는 밭을 팔아 값을 사도들의 발아래 두었다는 기록이 나옵니다.(행 4:37) 그는 속이지 아니하고 온전히 하나님께 드렸습니다. 마가 요한 일로 바울과 다투어 다른 지역으로 선교를 했지만 초대 교회를 이루는데 큰 공헌을 한 인물임에 틀림이 없는 사람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섬기면서 헌신의 문제를 놓고 기도를 많이 합니다. 참된 헌신이 무엇인지 어떻게 헌신해야 하는지 지금의 방법이 최선의 방법인지 놓고 기도하기도 하고 책을 살펴보기도 하고 또 신앙의 선배들에게 상담을 요청하기도 합니다.

 

먼저 온전한 헌신을 이루기 위해서는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를 드려야 합니다.”(롬 12:1) ‘산 제사(living sacrifice)’ 실제로 마음이 동하는 그런 제사를 드림으로 살아있는 모습으로 하나님을 만날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하나님의 뜻을 발견하는 것입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하나님의 뜻 중에 가장 귀한 것은 이 땅에 하나님의 나라가 구현되는 것이며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이 영광스럽게 되는 것이며 하나님의 복음이 모든 족속에게 증거 되는 일이라 믿습니다. 그러기에 온전한 헌신은 복음을 위한 헌신이며 복음과 동행하는 것이라 믿습니다. 이러한 헌신의 동력은 성령님의 능력입니다. 성령님이 하나님의 뜻을 바라보게 하시며 우리를 그 자리로 인도하심을 믿습니다.

 

헌신의 방법은 자신의 은사(달란트)를 최대한 활용하는 것입니다. 사람마다 재능이 다릅니다. 자신에게 주어진 달란트는 하나님의 상급입니다. 그러기에 그것을 하나님께 참다운 마음으로 드려야 합니다. 아낌없이 순전한 마음으로 바쳐야 합니다. 오병이어의 기적은 소년이 가진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이루어졌습니다. 소년이 자신이 먹을 수 있는 모든 것을 바치자 주님은 흡족히 생각하시고 하늘을 우르러 축사하신 후 떼어 나누게 하셨습니다. 모두 배불 먹고 열두 광주리나 남았다고 말씀은 성경에 나옵니다. 실제로 이루어진 기적입니다. 자주 말씀 드리지만 자신의 최대 것을 드려야 합니다. 최소를 드리는 것은 하나님이 원하시지 않는 것입니다.

 

말라기를 보십시오. 이스라엘 백성들은 자신의 것이 아까워서 제물을 드릴 때 제일 좋은 것으로 드리지 아니하고 상한 것을 드렸을 때 하나님은 선지자를 통하여 노여워하심을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도 두 번이나 성전에서 상을 엎으시며 성전은 강도의 굴혈이 아니라 기도하는 집이라 선포하셨습니다. 가인과 아벨을 생각해 보십시오. 아마 가인은 최대의 것은 드렸을지 몰라도 최선의 것을 드리지 않았기에 하나님의 책망을 받은 것으로 여겨집니다. 최대와 최선은 본질부터가 다릅니다. 우리의 헌신의 중심에는 신실함이 배겨있어야 합니다. 속이는 것이 없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중심을 보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의 참다운 영적 예배는 분명 하나님이 가장 기뻐하시는 헌신이라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우리는 말씀을 통하여 신앙의 선배를 통하여 참된 헌신을 배워 갈 것이며 우리 또한 모범이 되어 신앙의 후배들에게 유산을 남겨 주었으면 합니다.

 

영광교회는 작지만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온전한 헌신을 드리는 교회라고 생각합니다. 이 말은 제가 위로 받기 위함이 아니라 예수님의 삶이 그러했기에 우리 또한 그 분의 생을 쫓아 살아가기 때문이라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그러기에 이 길을 기쁨과 소망으로 내 달려 가는 멋진 하나님의 사람 되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말씀을 맺겠습니다. 천국을 소유하는 자는 값비싼 천국을 얻는 것이기에 자신의 소유를 다 팔아 사야합니다. 여기에 담긴 영적의미는 뜨거운 열정과 온전한 헌신입니다. 이것들은 강조하면 할수록 더욱 우리에게 필요로 하는 것입니다. 믿음의 형제 자매 여러분 지금이 힘들다고 조금 쉬었다 가지 맙시다. 주님의 구원을 이루기 위해 두렵고 떨림으로 온전한 뜻이 무엇인지 분별할 수 있는 능력을 달라고 하나님께 간구합시다. 지금 영광교회는 중요한 길목에 서 있습니다. 교회 이전의 문제를 앞에 두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어떻게 아름답게 꾸미는 것보다는 영적인 순결과 참된 헌신의 마음을 요구하고 계십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의 나라를 소유한 거룩한 백성이여 왕 같은 제사장들입니다.

 

형제 자매 여러분 천국을 온전히 소유하기 위해 우리 힘차게 전진합시다. 하나님이 선하시고 온전한 뜻이 무엇인지 확연히 판별해 내고 천국을 소유한 자의 힘을 많은 사람들에게 나타내도록 합시다. 그럴 때 하나님은 영광교회를 크게 쓰시리라 확신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