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의 편지

사도 바울의 복음에 대한 비전

어저나 2009. 4. 17. 11:55

사도 바울의 복음에 대한 비전 (행 20 : 24) (2009. 4. 19)

 

“나의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 증거 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을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

 

한 때 저의 비전은 중국 만주 지역이었습니다. 요즘 말하면 조선족 선교였습니다. 왜냐하면 그 곳에 고구려의 유적과 발해의 유적이 많았기에 선교하면서 역사 연구도 하고 싶어서였습니다. 그래서 자랑스럽게 신학대학원 들어가지 공개적으로 선언을 했습니다. 물론 교회에도 이야기를 했습니다. 남보다 다른 생각을 한다는 것이 저를 우쭐하게 만들었습니다. 문제는 저의 이야기를 너무 순진하게 받아들였던 한 자매가 있었습니다. 이 자매의 비전이 선교사였습니다. 몇 년을 놓고 기도하던 중 이었는데 저의 비전에 빠져 저에게 프로포즈를 했습니다. 근데 제가 거절했습니다. 제가 자랑하려고 하는 말이 아니라 저는 선교에 대한 확고한 비전이 없었을 뿐 아니라 제가 중국 선교를 말한 것은 감상주의에서 나온 말이어서 지킬 의향이 거의 없었습니다. 한 마디에 멋있게 보이려고 했던 말이었습니다.

 

우리는 간혹 선교를 이야기할 때 감정적이고 지극히 감상주의적 일 때가 많습니다. 집회 중에 수많은 선교 헌신자들이 선교에 대한 소명을 느끼고 헌신을 자청하였다가 자기의 소명과 헌신을 잊어버리고 살다가 뒤늦게 후회하는 것을 많이 보아왔습니다. 그래서 청년들의 신앙을 ‘냄비 신앙’이란 말이 나오나 봅니다. 다 그런 것은 아닙니다. 실제로 헌신하고 선교지로 파송받기 위해 기도하며 훈련받는 헌신자들이 더 많이 있습니다.

 

선교사 바울

사도 바울의 선교 비전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컸으며 범위도 넓었습니다. 그는 그 당시 전 세계를 복음으로 물들이려 했습니다. 바울 시대에는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 로마가 정치, 경제, 사회, 문화의 중심지였습니다. 그래서 그는 로마를 가기 위해 부던히 노력했습니다. 심지어 그는 죄수의 신분으로 로마에 가서 복음을 전하기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내 던집니다. 바로 오늘 설교 하는 본문이 바울이 예루살렘으로 가기 전에 고별 설교의 내용 중 한 부분입니다. 그리고 21장에 살펴보면 많은 사람들이 바울 사도가 예루살렘으로 가는 것을 반대합니다. 하지만 바울 사도는 복음에 대한 열정으로 다 뿌리치고 예루살렘 행을 감행합니다. 그도 분명히 고통과 환난이 기다라고 있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을 생각하며 나아갑니다.

 

사실 바울은 이미 세 차례의 전도 여행을 통하여 팔레스타인, 시리아, 소아시아, 그리스를 포함하는 로마제국의 동반부에 대하여 선교사역을 완수했다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예루살렘으로부터 동그렇게 빙 두러 일루이곤까지 그리스도의 복음을 완전히 전파하였다.”(롬 5:19)고 말했습니다. 그 당시 사람들은 지중해를 중심으로 살아가고 있었으며 지구가 둥글다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먼 바다를 나가지 않았습니다. 낭떠러지가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사도 바울도 서바나(스페인)가 땅 끝이라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땅 끝까지 복음을 전파하기 위해 선교 계획을 세웠습니다. 그가 생각하는 세계는 지중해를 둘러싼 로마제국을 하나의 원 또는 타원으로 그리고 있었다고 유추할 수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이방인에 대한 선교사로 부르심을 받았다고 확신하고 있었으며 로마제국의 동반부를 둥그렇게 다 선교를 했으니 이제 로마제국의 북부를 둥그렇게 빙 돌아서 서바나(스페인)까지 복음을 전파하려고 했습니다. 거기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스페인에서 지브롤타해협을 건너 북부 아프리카로 가서 로마제국의 남반부에서도 복음을 선포하려고 계획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그리고 북부 아프리카를 빙 돌아서 알렉산드라아까지 선교 계획에 넣고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그는 세상의 중심이 예루살렘이라고 믿었기에 예루살렘에서 시작하여 로마로 로마에서 스페인으로 스페인에서 북부 아프리카로 북부 아프리카에서 알렉산드리아를 통해 다시 예루살렘으로 돌아오는 원대한 선교 비전을 품고 있었습니다. 정말 세계를 가슴에 품고 예수 그리스도의 심장을 갖고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복음을 전파할려고 애썼던 것으로 믿을 수 있습니다.

 

이것은 엄청난 일이었으며 감히 누구도 생각지 못한 일이었습니다. 오늘날처럼 통신수단과 교통수단이 발달되지 않았음에도 그는 복음에 대한 열정으로 놀라운 계획을 세웠던 것입니다. 오늘 말씀에도 바울은 복음을 위해서는 생명까지 바치겠다는 확연한 의지가 보입니다. 참된 그리스도인 되려는 복음에 깊이 잠겨있어야 합니다. 복음 전하는 일에는 자신의 전부를 드려야합니다. 현대 교회의 문제는 복음도 ‘돈’으로 ‘경제적’으로 환산하는 데 문제가 있습니다. 교회에도 자본의 논리가 지배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복음에 관한 의무를 목사에게 맡기고 경제적 문제를 해결해 줄 터이니 복음을 전해 주십시요 라는 의식이 팽배해지고 있는 실정입니다. 목사는 ‘행정가’로서 교회에 대한 의무에 충실해야 하고 ‘설교자’ ‘복음 전도자’로서의 일을 동시에 수행하기에 일이 과도하게 집중되게 되었습니다.

 

중요한 것은 초대교회에서는 모두가 복음의 증인되었다는 사실입니다. 모두가 복음의 전방위에 서서 ‘야전군’으로서 살아갔다는 말입니다. 오늘날 교회는 ‘야전군’과 후방 ‘지원군’ 또는 ‘보급대’로 잘 정비되어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야전군이 너무 약해졌다는 사실입니다. 현대 전투는 ‘전방’과 ‘후방’이 없습니다. 이제 복음에 있어서는 모두가 야전군으로 언제나 뛰어나갈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합니다. ‘박지성’ 선수를 왜 높이 평가합니까? 그는 ‘산소탱크’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는 전 경기 동안 쉬지 않고 뛰기 때문에 모두가 좋아합니다. 이제는 사도 바울처럼 복음에 대한 열정을 회복해야할 때입니다. ‘영적 대 추수’ 강조한다면 우리가 모두가 일군되어야 합니다. “이에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추수할 것은 많되 일군은 적으니 그러므로 추수하는 주인에게 청하여 추수할 일군들을 보내어 주소서 하라 하시니라.” 추수할 일군이 부족합니다. 열정을 가진 비전 메이커를 부리고 계십니다.

 

그럼 바울의 선교에 대한 열정은 어디에서 나왔는지 왜 모든 것을 포기하고 선교에 헌신하게 되었는지 살펴보면서 함께 은혜를 나누기를 소망합니다.

 

첫째, 예수 그리스도가 높임을 받는 하나님의 아들이시오 주라는 믿음입니다.

사도행전에 보면 바울은 자신이 예수 그리스도를 친히 만났다는 기록이 자주 나옵니다. 그의 복음의 기원이 예수 그리스도께 있음을 강조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분 분명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났으며 친히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아들이시오 자신의 주되심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는 그러한 확신이 있었기에 복음에 모든 것을 바쳤습니다. 바울 사도는 자신이 높임 받기를 원치 않았으며 주님이 높임을 받기 원했으며 자신을 온전히 그리스도를 위해 받쳐지기를 바랬습니다. 빌립보서 2장 17절 “만일 너희 믿음의 제물과 봉사 위에 내가 나를 관제로 드릴지라도 나는 기뻐하고 너희 무리와 함께 기뻐하리니” 관제는 구약시대에 행해진 각종 희생 제사 중의 하나인데 주로 포도주를 붓는 의식이었고, 포도주 외에, 기름이라든가, 동물의 피를 붓는 일도 있었습니다. 바울 사도는 복음위해서 라면 자신의 피를 드릴 수도 있다는 순교할 수 있다는 강한 의지를 표현하고 있는 말씀입이다.

 

그는 한 때 그리스도인을 잡아 핍박하는 일을 했지만 부활하신 주님을 만난 이후에는 모든 것의 중심에 예수 그리스도가 있었으며 주님께 모든 것을 드리고자 했습니다. 우리의 신앙의 출발은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시오 주라는 믿음에서 출발해야 합니다. 우리의 삶의 중심이 되어야 합니다. 그래야 우리의 구원을 이룰 수 있습니다. 이 고백을 통하여 많은 사람들에게 기쁜 소식을 전할 수 있습니다. “지금이 구원의 날입니다.”(고후 6:2) 수많은 사람들이 멸망을 앞에 놓고 있으며 심판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냥 외면하시렵니까? 더 이상 지나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놀라운 구원을 이루어야 합니다. 주님이 주인되심을 고백하고 선포하는 곳에 놀라운 복음의 능력이 임함을 믿습니다.

 

둘째, 예수님을 통한 선교는 분명 성공하리라는 확신이 있었습니다.

바울사도 예수님의 부활이 V-Day이었음을 확신하고 있었습니다. 이제 사탄의 권세와 어두움의 세력이 예수 그리스도 앞에 무릎 꿇게 되었으며 주님의 승리를 통하여 모든 믿는 사람은 승리할 수 있음을 주님을 통하여 확신하게 되었다는 말입니다. 고린도 후서 2장 14절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항상 승리의 개선장군이 되게 하고 우리를 통하여 그를 아는 지식의 향기를 모든 곳에 퍼뜨리는 하나님께 감사할찌어다!” 우리는 영적 전투를 두려워할 이유가 없습니다. 주님이 싸움에서 승리하셨을 뿐만 아니라 우리와 함께 영적 전투의 선봉장 되어 주시기 때문입니다. 이제 구원의 날이 선포되고 예수의 이름으로 점점 더 하나님의 나라가 확장되어질 것입니다. 승리의 함성이 더욱 높아지게 될 것입니다. 빌립보서 2장 12절 “그러므로 나의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나 있을 때뿐 아니라 더욱 지금 나 없을 때에도 항상 복종하여 두렵고 떨림으로 너희 구원을 이루라.” 바울 사도는 용기를 잃지 말라고 격려하고 있습니다. 그 모든 힘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나오기 때문에 두려워하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선교는 확신이 있어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우리 구원의 확신이 있어야 합니다. 믿음의 사람들은 자신의 열정에 대한 확신 속에 거하였습니다. 워싱톤에 가면 링컨이 애용하던 성경이 보관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그 성경 속에 손때에 이겨져 눌린 손가락 자욱이 있습니다. 여러 번 같은 장소를 손가락으로 눌러서 생긴 자국입니다. 그 곳은 시편 34편 4절입니다. “내가 여호와께 구하매 내게 응답하시고 내 모든 두려움에서 나를 건지시리로다”링컨은 남북전쟁과 그의 평생에 걸친 그 어려움 속에서 “하나님은 반드시 대답해 주신다는 확신과 모든 두려움에서 건져 주신다는 소망”을 가지고 살았음이 눌린 자국까지 나도록 되풀이 되풀이 읽은 시편에서 엿볼 수 있습니다. 확신 속에 거할 때 승리할 수 있습니다. 바울이 위대한 선교사가 된 것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확신 때문이었습니다. 위대한 신앙의 선배들은 하나님이 함께 하시며 동행하고 있다는 확신 속에 거하였습니다. 여러분 선교에 대하여 주저하거나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이 일은 이루시는 분은 하나님이시며 예수님이십니다. 우리는 반드시 승리할 것입니다.

 

세 번째,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됨을 믿었습니다.

로마서 1장 16절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 이 믿음이 그를 무수히 두들겨 맞음, 돌로 맞음, 감옥살이, 파선, 추위와 굶주림 등 수많은 어려움을 이기어 냈습니다. 우리는 복음을 통하여 능력을 경험해야 합니다. 그래야 부끄러워하지 않습니다. 생활 속에서 역사하는 믿음을 소유하게 됩니다. 고린도 전서 1장 18절 “십자가의 도는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얻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그렇습니다. 구원을 얻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이 능력이 우리에게 있으니 우리는 얼마나 큰 자들 입니까?

 

고린도 후서 4장 7절 “우리가 이 보배를 질그릇에 가졌으니 이는 능력이 심히 큰 것이 하나님께 있고 우리에게 있지 아니함을 알게 하려 함이라.” 우리는 그리스도를(보배) 가지게 되었습니다. 내 힘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능력을 소유하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와 연합한 자가 되었기에 약한 존재가 아닙니다. “약한 나를 강하게 ..... 호산나 호산나.... ” 다같이 찬양하겠습니다. 우리는 그분을 통하여 새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복음 전하여야 합니다.

 

드와이트 무디

드와이트 무디(Dwight L. Moody: 1837~1899)는  미국 역사상 가장 위대한 복음 전도자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가 19세 되던 해 시카고의 어느 구두점에 취직했습니다. 그의 검소하고 신실한 생활방식, 밝은 예의심, 그리고 예리한 직업의식과 무한한 열정 때문에 그가 백만장자의 대열에 오르는 것은 크게 문제되지 않아 보였습니다.

 

그러나 그는 백만장자가 되는 일에 관심이 없었습니다. 하나님을 위해 일하는 것보다 더 큰 기쁨이 없다고 그는 믿었습니다. 처음에 그는 말씀을 가르치기에는 자신의 학력이 너무 부족하다고 느꼈기 때문에 처음에는 교회예배와 주일학교, 그리고 집회에 사람들을 불러 모우는 일을 담당하였습니다. 그러다 그는 호텔, 하숙집 때로는 술집이나 도시 북쪽에 위치했던 빈궁한 수백여 가구들을 홀로 돌아다니며 전도했습니다.

 

1873년 제3차 영국방문 때 찬송 작곡가이며 반주자인 데이비드 생키(Ira David sankey)와 함께 부흥회 동역자의 걷게 되었습니다. 무디의 솔직한 설교와 생키의 가슴에서 우러나오는 찬송은 곳곳에서 많은 회심자들을 낳았습니다. 그들이 발길을 닿는 곳 마다 부흥회는 대성황을 이루었고 수만 명의 사람들이 그들의 부흥회에 참석하여 회심하는 놀라운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한 번은 무디의 설교를 들은 한 청중이 그의 문법실력을 지적하면서 청중 앞에서 설교하면 안 된다고 비판했다? 저도 제 자신의 문법이 틀린 것을 알고 있습니다. 저는 부족한 점이 많습니다. 그러나 저는 제가 받은 재능을 가지고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충분한 문법 실력을 갖추신 당신은 그 실력으로 주님을 위해 무엇을 하고 계십니까? 하고 무디는 되물었습니다.

 

그는 일생동안 목사안수를 받지 않아 목사가 아니었지만 그는 40년 동안 미국과 영국에서만 백만 명이 넘는 사람들을 그리스도께 인도했습니다. 거듭난 후 하루도 빼놓지 않고 복음을 증거 했으며 매일 최소한 한명의 사람에게라도 복음을 전하지 않고는 결코 잠자리에 들지 않을 정도로 열정적인 복음전도자였습니다. 말년에 무디는 두개의 학교(무디성경학교/노스필드신학교)를 세웠습니다. 또 그는 1880년에 공동 수양관을 개설했으며 1886년에 세계학생연맹, 1893년에 부인협의회, 1894년에 노스필드의 메아리라는 정기 간행물의 발간, 1895년에 종교서적 판매 연합회 등을 발족시켰습니다. 

 

그는 한권의 책도 그가 직접 탈고해 본적이 없었지만 그가 편찬을 도와준 송가집과 설교 출판물의 수입으로 많은 돈을 벌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한 푼도 자신의 이익을 위해 쓰지 않았습니다. 그 돈들은 그가 세운 성경학교에 보내졌습니다. 1893년 당시 그의 성경학교에 등록자수는 1,933,210명에 이르렀습니다.

 

1899년 11월 22일 무디는 미주리(Missouri)주 캔사스 전도 집회 도중 심장 질환으로 62세를 일기로 주님의 품에 안겼습니다. 되돌아보면 그가 이룩한 모든 일들은 가히 기적이라 해야 할 것이었습니다. 사람들의 눈에는 하나님의 일을 하기에 부적합한 사람으로 보였지만 그는 열정적으로 주님을 위해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드리기 시작했을 때 하나님께서는 점차 그를 더 큰 일로 부르셨고 그에게 필요한 모든 능력을 넉넉하게 공급하심으로써 그는 세계적인 부흥사로 사용된 것입니다. 하나님의 능력은 헌신하는 정도에 비례하여 주어지는 것이 아닌가 생각해 봅니다.

 

오직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능력이요 하나님의 지혜니라[고전 1:24]

 

무디의 복음에 대한 열정이 수많은 사람을 변화시켰듯이 바울의 복음에 대한 비전은 기독교를 큰 반석위에 세웠습니다. 우리 교회는 바울의 선교에 대한 비전을 생각하며 큰 소망으로 세계 선교 비전을 꿈꾸며 나가기를 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