삻 돌아보기

화회마을을 다녀오며

어저나 2009. 5. 5. 21:01

'어린이날' 일찍부터 화회마을에 가기로 이미 며칠전 마음으로 결정하였다. 기실 내가 안동 사람이었기에 안동의 자랑스러운 양반 문화를 아내와 아이들에게 보여주고 싶어서였다. 대학 때 역사 답사를 통하여 간적이 있어 아이들에게 해 줄 말이 많이 있었다. 그리고 유교문화에 대해 말해 주고 싶었다.

 

내 계획과는 전혀 상관없이 오월의 날씨는 우리를 지치게 만들었다. 햇살이 너무 따가웠고 갈증을 일으키게 했다. 처음에는 잘 따라 왔으나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지 막내 준하의 투정이 시작되었다. 아직 역사기행이 의미하는 바를 알기에는 어린 나이기 인것 같았다. 하지만 준서는 역사에 관심이 많았고 아빠와 함께 제일 열심히 답사하면서 함께 해 주었다.

 

하옇튼 너무나 잘 가꾸어진 전통마을이었고 너무 아름답기도 했었다. 엘리자베스여왕이 극찬할 정도로 역사와 현대가 잘 조화를 이룬 곳이었다. 아직 사람들이 실제 생활하고 있는 곳이기에 우리들은 즐거웠으나 사시는 분들은 사생활이 노출되는 어려움이 있으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들에게 고마움을 느꼈다. 많은 사람들을 위하여 자신의 삶을 공개해 주어서 말이다.

 

문제의 발단은 아내가 걷기에 불편한 신발을 신고 한 시간 이상 걸었기에 불에 물집이 잡힌 것이다. 나는 그것도 모른채 혼자 마음이 들떠 기분이 좋았다. 미안한 마음이 든다. 배려가 부족한 자신을 보며 미안한 감을 느낀다.

 

여러가지 조화로움에 감탄이 흘러나온다. 어떻게 생각하면 그 만큼 가꾸었으니 된 것이 아니냐고 말할 수 있으나 굽이치는 낙동강의 앞에 두고 있으며 뒤에는 산들이 있어 명당중의 명당이다. 이곳에 정착한 집안이 부럽기 까지 한다. 전통을 지킨다는 것은 힘든일이다. 우리는 새로움을 추구하고 발전만 강조하다보니 전통의 흔적을 보일 수 있는 곳이 드물다는 사실이다. 어디를 가든 엣 모습과 오늘의 모습이 조화를 이루고 있는 곳들을 만났으면 한다.

 

건축학적으로 집들을 설명하고 있는데 조선 중기에서 후기로 지어진 집들은 문화제적 가치기 충분하다. 100년의 집들을 도심에서 거의 발견할 수 없는 아쉬움이 있다. 문화는 혼재될 수 밖에 없는데 우리의 도시는 서양식의 새 건물로 이루어져 발전상만을 보여주고 있어 아쉬움이 가득한다. 어떻게 말하면 우리의 삶과 흔적을 보여줄 수 없는 것이다. 멀리 가야 볼 수 밖에 없는 현실이 아쉽다.

 

어린아날이라 애들은 입장료를 내지 않았다. 조금만한 보상은 받은 셈이다. 나의 아이들이 나처럼 꼭 역사를 전공하라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취미로 옛것을 찾아 여행을 떠나며 흔적을 찾아서 현대속에서만 갖혀 사는 것이 아니라 현대와 과거를 오가며 끊임없이 대화하여 더 밝은 미래를 찾아 내었으면 한다.

 

시간이 지나 준서와 준하가 자라면 아빠의 마음을 이해하고 또 자신의 아이들에게 아빠처럼 가르치겠지 아니 내가 미래의 나의 손자와 손녀들에게 한국의 미학을 가르칠 그날이 오겠지...

 

 

 

 

 

 

초등학교 폐교된 자리이다 1000여의 학생을 배출하였다 한다. 이제 아이들의 함성은 들을 수 없다

 

 

 

엘리자베스 여왕이 심은 구상나무이다. 10년이 지났지만 잘 잘라고 있다

 

 

영화 '너와 내운명'이 좔영된 장소라 한다.

 

 

만지송 소나무의 가지가 정말 많았다. 자손의 번창을 기원하는 종부의 마음을 느낄 수 있었다. 1950 대에 이곳에 옮겨 심었다 한다. 정말 자손이 번창하고 있다.

 

 

 

 

 

 

 

 

아주 옛날엔 정말 조라했겠지 지금도 샣활하시는 분들이 계신다.

 

 

 

 

 

예상치 못한 곳 유교의 전통이 강한 이곳에 교회가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