삻 돌아보기

'강아지 똥'의 권정생 선생님의 생가을 다녀오며

어저나 2009. 5. 5. 23:07

 단 한번도 만난 적은 없지만 '동향인'이라서 그분을 TV로 볼 때 가슴에 찡함을 느꼈었다. 그의 집과 내가 태어난 곳은 지금의 길로 가면 10분 정도의 길이다. 하지만 60년대의 상황을 가정한다면 그리 쉬운 일은 아니었스리라. 아무튼 만남을 가진 것은 아니었지만 그와 나는 7년 정도 이웃에서 살았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지금은 중앙고속도로가 생겨 남안동에서 조탑동끼지 쉽게 갈 수 있지만 그전에는 그리 찾기 쉬운 길이 아니었다. 20대에 고향을 찾아가는 길이 그리 쉽지 만은 않았으니 말이다.

 

 사실 얼마전부터 권정생선생님의 집을 방문하고 싶었었는데 오늘 이룰 수 있어 너무 기뻤다. '몽실언니'를  통하여 선생님을 만난 게 벌써 20년이 더 지났다. 그리고 독서지도사를 하는 아내때문에 '강아지 똥'을 만났다. 그리고 TV를 통하여 선생님의 아름다운 삶을 보고 자연과 생명들과 삶을 공유하는 선생님의 삶은 나에게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살아가는 모습이 크게 다가왔다

 

 하회마을에서 오는데 갑자기 '소나기성' 비가 쏟아졌다. 혹 더 많이 내리면 방문할 수 없는 일이 생기지 않을까하는 걱정이 되었다. 남안동 IC주변에 오자 비는 오지 않았다. 길을 잘 찾지 못하는 사람이었지만 고향이기에 익히 지명이 익숙했던 터라 조탑동을 찾아갔다. 그리고 전탑 근처에 오니 작은 팻말로 '권정생 선생님 생가팻말'을 주민들의 이야기를 듣고 볼 수가 있었다. 좁은 길을 조금 올라가고 난 뒤 제방공사를 하고 있었는데 아내는 바로 도착한 집이 선생님 집이라 말했다. TV에서 보던 집과 흡사했으나 팻말이 없어서 나는 더 가 보자고 말했다. 아내는 이리 저리 둘러보고는 맞다는 것이다. 방문 앞에 있는 작은 명패 '권정생'이 적혀있었다.

 

 

이게 선생님의 집이었다. 담장도 없고 그냥 길가에 있는 혼자 살 정도의 그런 집이었다. 이렇게 좁은 공간에서 아동문학의 길을 개척했다니 너무 감동이 되었다. 선생님이  기념 공간으로 만들지 말라는 말씀하신대로 그냥 집만 우두커니 우리를 맞이했다. 그러나 감동은 배로 다가왔다. 많은 사람들이 자신이 살고 간 공간을 아름답게 꾸미고 관광지화 하지만 우리나라의 '아동문학의 거성' 선생님의 말씀대로 그냥 그대로 두고 것이 삶의 모범이라고 생각한다. 선생님이 없어 반기는 이 없었으나 충분히 선생님의 깊은 마음을 만날 수 있었다.

 

마지막 유언장에서 말씀하신대로 선생님은 이 나라의 평화를 갈망하셨고 우리 보다 가난한북한의 아이들과 네팔등 가난한 아이들에게 책의 인세를 기부하셨다. 천사같은 삶으로 한 생을 마감했다는 것은 실로 아름다운 일이다. 서양에서는 '노블레스 오를리주'로 자신의 명예에 걸맞게 살고 우리에게는 '선비정신'있어 힘든 중에는 삶을 바르게 살기로 노력했기에 어쩌면선생님은 선비의 정신으로 사신건 아닌지 선생님은  이 말을 싫어하시겠지만... 우리는 삶의 반성이 필요하다고 볼 수 있다.

 

선생님과 한때 친구처럼 살고 있던 개집은 텅 비어있었다, 주인이 없으니 그가 살 수 없었을 거니까. 그 개가 선생님의 삶의 모습을 가장 많이 알고 있었지 아닐까..

 

 

선생님은 1937년 일본에서 출생하시어 어렵게 사시다가 한국에 오셔서 여러가지 힘든 일드을 하시다가 결핵으로 많은 고통을 당하시다가 1956년부터 1982년까지 일직교회에 작은 방에서 사시면서 종지기를 하셨다. '교회의 종지기'목사로서 한번 해보고 싶은 일중에 하나이다. 솔직히 남을 깨운다는 것은 내가 깨어 있어야 하는 일이다. 선생님은 정말 무너질듯한 집에 사셨지만 남을 깨우고 그리스도의 사랑을 전하신 분임에 틀림없다,

 

"새벽종소리는 가난하고 소외받고 아픈 이가 듣고 벌레며 길가에 구르는 돌멩이도 듣느데 어떻게 따뜻한 손으로 칠 수 있어." 권정생 종탑앞에 있는 글이다. '친필'이라는 생각에 들었다. 새벽의 종소리는 사람을 위한 소리이지만 모든 자연이 함께하는 소리임을 표현한 글인 것 같다. 준서가 종을 쳐 볼려고 애썻으나 잘되지 않았다.

 

 

 

 

선생닝의 삶의 흔적을 찾았지만 선생님은 자기 삶의 흔적을 지우시고 싶으셨는 듯 하다. 나의 좁은 생각과 범위를 넘어 하나님의 깊은 관계를 통하여 인간과 자연의 사랑이 무엇인지를 말씀하시는 것 같다. 삶의 종착역에 도달했를때 두렴없이 받아들이는 그는 훌륭한 이 시대의 스승이다. 어떻게 보면 나에게 삶의 종요하고 숭고함을 지니고 살 때 그리스도인의 참된 삶을 살아가게 하신다고 말씀하시는 듯하다.

 

선생님을 천국에서 만날 수 있으리라 8평 정도의 작은 집에 사셨지마 하늘나라에서는 정원이 딸린 집에서 고통없이 거닐고 계시리라...

 

난 잠시 그 집을 다녀가지만(이제 할아버지 산소가 소호리에 있으니 자주 와야겠다) 내 기억에는 큰 자리를 차지하리라. 선생님의 집은 말씀하신대로 박물관이 될 이유는 없다. 또 관광 상품화되어서도 안된다. 그냥 지금 그대로의 모습을 계속가지고 있으면 좋겠다. 아낌없이 주고 간 삶은 예수님의 삶이다. 다시 한번 내 자신을 돌아보며 하나님 나라를 생각하고 싶다. 이 세상 집을 걱정할 것이 아니라 하늘 나라의 집을 바라보아야겟다.

 

 

 

 

 

'어린이날' 어린이를 위한 선한 마음으로 글을 주신 선생님의 생가를 돌아보면서 내 아이들에게 주어야 할 희망의 메세지를 발견한다. '사랑'이다. 사랑의 삶으로 선생님을 따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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