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의 편지

해방(광복)과 신앙의 자유

어저나 2009. 8. 15. 20:39

해방(광복)과 신앙의 자유 (시 126 : 1 ~ 4 )                 (2009. 8. 16)


‘광복 후 세대’ ‘전후 세대’ ‘베이붐 시대’ ‘386’ 그래도 근대화로 인하여 나름대로 그 혜택을 받고 있지만 조국 현실에 대하여 나름 불만이 가장 많았고 민주화의 기수로 서기 위해 발버둥 쳤던 시대의 고민을 안고 살았던 세대입니다. 오늘 신문에 전두환 전 대통령이 김대중 전 대통령의 병문안을 하러 세브란스 병원을 찾았던 기사가 실렸습니다. 29년 전의 악연 당시 신군부 세력의 중심의 인물이 김대중 전 대통령을 내란죄로 구속하여 군사재판에 회부하여 사형을 언도하기에 이르렀습니다. 얼마 후 무기형으로 1982년에는 김대중 전 대통령이 미국으로 망명길에 오르고 1985년 2월 귀국하자 한 달간 가택 연금을 시켰습니다. 우리가 알지 못하는 많은 일들이 있었을 겁니다.


가해자였던 전두환 대통령이 “김대중 전 대통령 때 전직 대통령이 가장 행복했다.” 고 말했던 것이 제 머리 속을 맴돕니다. 곧 출간될 자서전에서 밝힌 내용에 이른 말이 있습니다. “죽음 직전의 고초까지 안겨준 그를 신앙적으로 용서하려 노력했다.” 1997년 7월 3일 임시국회 교섭단체 대표 연설에서 “죄는 미워도 사람을 미워하지 않는다는 말은 만고의 진리이다. 불행이 없는 내일을 살고자 한다. 국민 앞에 사죄하면 감옥에서 나와 평범한 시민의 삶을 사는 것을 반대하지 않는다. 그들을 용서하고 화해할 수 있다.” 아무튼 이들은 시대의 영웅들입니다. 나라를 사랑하고 조국의 미래를 위하여 자신을 희생했던 이들의 ‘악연’이 우리를 슬프게 하지만 이제 고령에 접어드니 서로를 용서하며 서로를 존중하는 것이 이들이 소인배가 아님을 보여주는 단면이라 말할 수 있습니다.


이들은 역사의 뒤안길에 저물어져 가고 있지만 오늘 우리는 떠오르는 해가 되어 이 민족의 앞길을 비추는 믿음의 사람으로 기억되길 원하면서 광복절이 지난 지 하루가 되었지만 희망의 메시지를 여러분에게 전하고자 합니다.


역사의 방랑자 - 유대인

우리는 나라 없이 산 적이 없습니다. 다만 내 자신이 나라를 생각지 아니하고 그 구성원 됨을 포기하고 산적이 많을 것입니다. 우리에게는 분명 ‘대한민국’이 존재했으며 나름대로 내 삶의 배경이 되고 있습니다. 미국의 오바마 대통령이 한국의 의료보험 제도에 대해 큰 관심을 보이고 있습니다. 저도 미국은 우리보다 선진국이고 복지제도가 발달되었다고 생각했는데 미국은 의료보험제도가 국가적으로 전 국민에게 시행되는 것이 아니라 미국의료보험은 주로 영리목적으로 개인 보험회사에서 주관하고 있으며 한국처럼 공익적 목적의 의료보험은 없는 상태입니다. 위에 설명한 세금에서 공제 적립한 돈으로 의료혜택은 극히 제한적이며 그 범위도 한정적입니다. 그래서 대부분 시민들이 개인 의료보험 회사에 의해 의료혜택을 받고 있습니다. 대한민국은 나름 발전한 나라입니다.


동방의 아주 작은 나라 ‘코리아’의 물결이 국제 시장에서 큰 반향을 불러일으키고 있습니다. TV의 전 세계 점유율이 50%을 넘어서고 있다고 합니다. 휴대폰 시장도 장악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의 과거는 행복하지 않는 시절이 더 많이 있었습니다. 침략 받고 약탈당하던 나라였습니다. 고구려 때를 빼고는 침략에 시달렸으며 늘 한 나라를 섬기면서 자치권을 획득하며 살아온 가늘고 긴 생명력이 강한 잡초처럼 살아온 민족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자존감이 강하였고 서양 문물에 대한 개방성이 강했습니다. 그래서 기독교의 전파가 더 빨리 급속히 이루어졌다고 설명하는 학자도 있습니다.


세계에서 가장 강하다고 말하는 유대인들 그들이 자신의 나라를 이루는 것은 아브라함 이후 400년이 지나서였습니다. 그것도 혹독한 이집트의 압제로부터였습니다. 그들이 왕을 세우고 나라가 성립된 것은 사사 사무엘을 이어 사울이 첫 임금이 되었습니다. BC1020경 팔레스타인 등 가나안 원주민 제압 후 사울 왕국건설, 다윗 왕국통일, 솔로몬 영화가 있었습니다. BC 932년경 솔로몬 사후 남부 유대지족이 독립. 북은 이스라엘왕국 남은 유대 왕국으로 분리됩니다. 이후 이스라엘은 아시리아에 멸망, 유대는 신바빌로니아에 멸망되고 페르시아 고레스에 의해 귀환하여 성전과 성을 재건하였으나 시리아의 지배 속에 오래 동안 지냈습니다. 기원전 3세기에 마카비 항쟁을 통하여 일시적으로 ‘하스모니아 왕국’으로 독립적 지위에 이릅니다. BC 63년경 로마왕국(폼페이우스)에 의해 점령되어 로마의 식민지로 자치적인 왕 시대를 맞지만 그것도 66년부터 70년에 이르는 로마와의 항쟁으로 완전히 파괴되고 디아스포라로 유럽 전 지역으로 확신됩니다. 그들의 독립적 지위에서 나라를 세운 것은 역사적으로 얼마 되지 않습니다.


현대사의 비극의 상징인 2차 세계대전으로 600만 명이 희생됩니다. 또 러시아혁명으로 공산주의 정권에 의해서도 큰 핍박을 받았습니다. 영화 ‘인생은 아름다워’ 이 영화는 유태인말살정책이라는 주제와 아들에 대한 아버지의 사랑도 합쳐져 있습니다. 아우슈비츠 수용소의 삶을 코믹하게 꾸몄지만 ‘페이소스’가 흘러납니다. 그들이 방황을 법은 것 불과 60여 년 전입니다. 방랑의 민족, 핍박과 고난의 흔적이 그들을 지나치게 강하게 만들었으며 ‘독자 생존’ ‘지배를 통한 평화’를 만들어 가고 있는 것 같습니다. 유대인들은 생존에 대해서는 독종입니다. 그들이 축복의 민족이라는 사실을 까맣게 잊어버리게 할 정도로 그들은 자신의 민족의 생존을 위해 못할 일이 없는 민족이 된 것입니다.


바벨론에서의 귀환과 우리의 광복

126편 1절 말씀 “여호와께서 시온의 포로를 돌리실 때에 우리가 꿈꾸는 것 같았도다.” 예례미야의 예언대로 70년이 지나면 다시 고향으로 귀향하리라 어른들로부터 들었지만 그것이 억압된 상황에서 이루어진 것이 믿기지 않았다는 말입니다. 이들이 선지자를 신뢰하지 않아서, 믿음이 없어서가 아니라 약속을 지켜주신 하나님의 위엄과 사랑을 찬미하고 있는 것입니다. 희망을 잃어가고 있던 이들에게 고향으로의 귀환은 엄청난 영광이었습니다. 물론 페르시야는 종교 관용정책으로 유대교를 인정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돌아가서 ‘성전 재건축’을 통하여 하나님에 대한 자신들의 믿음을 보여주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들은 돌아오자마자 성전을 재건하고 학사 에스라의 인도 하에 집회를 가지고 자신이 멸망하게 된 이유가 혼합적인 신앙과 이방인과 잡혼, 신앙적 정결성을 지키지 못해서 임을 깨닫고 폭우 중에서도 회개했습니다. 그리고 느혜미야가 돌아와서 예루살렘성전을 재건합니다. 하나님의 해방의 이유는 그들을 버리지 아니하시고 긍휼과 사랑으로 받아들였다는 사실입니다.


해방에 그날에 “그때에 우리 입에는 웃음이 가득하고 우리 혀에는 찬양이 찼었도다. 열방 중에서 말하기를 여호와께서 저희흫 위하여 대사를 행하셨다 하였도다.” 그들에게 기쁨의 찬양이 가득찼습니다. 웃음이 가득하였습니다. 주변의 이방 민족들도 여호와 하나님게서 이일을 행하셨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압제로부터의 해방은 경험한 사람들은 그 기쁨이 얼마나 큰지 알 수 있습니다.


우리에게도 해방이 있었습니다. 1945년 8월 15일 일본이 미국에 무조건 항복을 선언함으로 태평양 전쟁이 종결되었고 우리나라는 일본의 식민지로부터 해방을 맞았습니다. 사실 우리가 치안권을 가진 때는 9월 9일입니다. 정확히 말하면 9월 9일 미군이 진주함으로 일본으로 치안권을 확보하게 되었습니다. 우리의 일제 강점기 1910년 8월 29일(경술 국치)로 1945년 9월 9일 까지 만 35년간의 식민지 통치를 받았습니다. 우리보다 열등한 민족이라고 생각한 일본에게 지배를 받았으니 여간 자존심이 상한 일이 아니었습니다.


일제 강점기 말기 일제는 한국혼의 말살정책을 펴 나갔습니다. 조선어를 금지시키고 창씨개명을 하게하고 그리스도인에게는 ‘신사참배’를 강요했습니다. 미국인 선교사들은 미국과의 전쟁이 벌여짐으로 자기의 나라로 돌아갔습니다. 일제 경찰력의 강압 하에 1938년 9월 제27회 장로회 총회는 불법적으로 신사참배를 가결하였는데, 이때 발표한 성명서는 그 내용상 소극적인 순응을 천명한 것만이 아니라, 일제에 대한 적극적인 협력을 약속한 전향성명이나 다름이 없었습니다. 즉 그 성명서 후반부는 “국민정신총동원에 참가하여 비상시국 하에 총후 황국신민으로서 적성을 다하기로 기함”으로 끝맺고 있습니다. 당시 가장 큰 교세를 자랑하고 가장 반일적이었다고 하는 장로교도 1939년 제28회 총회에서 ‘국민정신총동원 조선장로회연맹’을 조직하고, 이듬해 총회에서는 이 연맹 이사장 윤하영, 총간사 정인과 목사의 명의로 다음과 같은 사업 실적 보고를 하고 있습니다.


“우리 장로교 교우들이 다른 종교단체보다 먼저 시국을 철저하게 인식하고 성의껏 각자의 역량을 다하여 전승, 무운장구 기도, 전사병 위문금, 휼병금 국방헌금, 전상자 위문, 유족 위문 등을 사적으로 공동 단체적으로 활동한 성적은 이하에 숫자로 표시되었습니다. 애국반원들의 활동의 소식을 들을 때 ……이만하면'하는 기쁨을 가지게 되었습니다.”(《조선예수교장로회 총회 제29회 회록》


신사참배 문제에서 장로교보다 먼저 일제에 '순응'하였던 감리교의 경우도 이에 못지 않는 부일협력을 하였습니다. 1940년 10월 감리교 총리원 이사회에서 소위 '혁신안'을 마련하고 다음과 같은 결의안을 발표하였습니다.


“우리 국체의 진정신과 내선일체의 원리를 실현하야 총후국민의 의무를 이행하고 신체제에 순응함은 우리 기독교인의 당연한 급선무이다. 그러므로 기독교 조선감리회 총리원 이사회는 좌기 신안을 솔선결의 실행을 기함"‘(〈매일신보〉1940년 10월 4일자, "사상선도에 주력 군사원호에 진충, 감리교혁신안 발표")


1942년 2월 13일에는 통리자 정춘수 목사의 명의로 각 교구장에게 ‘황군 위문 및 철물 헌납의 건’이라는 공문을 보내 교회의 철문·철책은 물론 “교회종도 헌납하야 성전(聖戰) 완수에 협력”할 것을 지시하였습니다.


철저하게 신앙의 핍박을 살아남기 위한 조치로 자신의 위치를 지키지 위해 행했던 그 사실들이 해방 후에 백일하에 들어났지만 그들이 또한 교계의 중심이 되어 아무 일도 없었던 것  처럼 행했습니다. 이것이 발단이 되어 ‘재건파’가 생깁니다. 신사참배와 일제와 협력했던 교회의 지도자의 회개가 없다면 함께 교회를 이끌어 갈 수 없다는 생각 때문이었습니다. 이들의 주장에 교회 지도자들은 아무런 회개도 없었습니다. 한경직 목사님의 후에 공개적으로 자신의 죄과를 교인들에게 공개 자복하였습니다. ‘고신’ 역시도 그들의 신앙적 자부심은 신사참배의 거부에 두고 있습니다. 혼합주의에 대한 결별이 교단 분열의 씨앗이 되었습니다.


이스라엘의 해방은 분명 그들의 종교성의 회복이었고 성전 건축과 성을 재건함으로 하나님 백성으로 이제 어두운 과거를 잊고 하나님에 대한 새로운 삶으로 살고자 애썼던 것에 반하여 우리에게 해방은 분명의 신앙의 자유를 주신 하나님에 대한 회개가 선행되어야 함에도 불과하고 자신의 기득권 유지에 앞장섰다는 사실은 우리 후손들의 신앙에 먹구름을 물고 왔습니다. 분열의 상처로 다가왔습니다.


그래도 감사할 것은 외세에 의한 광복을 맞았지만 신앙의 자유가 선포된 것입니다. 정말 안타까운 것은 북쪽에 공산주의 득세로 신앙의 자유가 일시적으로 회복되었을 뿐 완전하게 되지 못하고 다시 지하에 숨어들게 되었다는 사실입니다. 하나님은 한쪽 경계선 남쪽에는 자유주의로 나라가 다시 세워져 신앙의 자유가 선포되었음을 감사할 뿐만 아니라, 한국전쟁(육이오)을 해 수많은 믿음의 사람들이 남한에 정착하여 신앙의 모범을 보였다는 사실입니다. 그들은 어려운 환경 속에서 오직 하나님께 모든 것을 바쳤습니다.


오늘날 우리가 직면할 현실을 광복절을 맞아 생각해보고 싶습니다. 저는 애국자도 그렇다고 무정부주의자도 아닙니다. 광복을 맞아 잃어버린 북쪽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저는 뉴라이트 운동을 하는 사람도 아닙니다. 중요한 것은 김정일 정권이 사람의 인권을 존중하지도 않고 제왕적 군림을 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저는 이제까지 김정일 정권의 붕괴를 공개적으로 기도하지 않았습니다. 아무리 돌아 바도 백성, 민중을 위하지 않는 자가 ‘프롤레타리아 독재’를 말하는 것은 맞지 않습니다. 우리는 이들의 부당성을 지적해야 하며 인도적으로 북한에서 굶주림에 시달리며 살아가는 이들을 위한 기도를 해야 합니다.


우리의 광복은 신앙의 자유를 가져왔습니다. 이제 문제는 다시 우리가 혼합주의에 물들지 말아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이스라엘의 멸망이 증명해줍니다. 우리는 맘몬, 개교회 지상주의, 음란과 가치 혼동, 목회자의 권위의식, 교회제도, 헌금의 유용 이런데 빠져 있다면 회개하여야 합니다. 말만의 회개가 실제 생활로 보여주어야지 한국의 교회는 무너지지 않을 것입니다. 광복절을 맞아 조국의 현실과 조국교회에 대한 기도를 해야 하며 순교의 피로 신사참배를 거부했던 신앙의 선배들을 다시 한 번 생각하는 시간이 되었으면 합니다. 그리고 회개하며 순결한 정신으로 하나님께 다가서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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