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롬 3 : 9 ~ 10) (2009. 9. 3)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깨닫는 자도 없고 하나님을 찾는 자도 없고 다 치우쳐 한가지로 무익하게 되고 선을 행하는 자는 없나니 하나도 없도다.”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롬 3:23)
지난 번 말씀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셨을 때 ‘보시기에 좋았더라’는 말씀이 둘째 날에는 빠져 있다고 말씀드렸습니다. 하나님이 궁창을 둘로 나누시고는 그것을 ‘하늘(sky)’라고 명하셨습니다. 그 하늘에 천사 중에 하나인 ‘루시퍼(계명성)’들어온 것 같습니다. 성경 어디에도 명확하게 말해주는 것은 없지만 ‘대적자’‘하늘의 공중 권세 잡은 자’땅에 떨어진 것 같습니다. ‘샛별(금성)’그는 떨어진 별이었지만 참 샛별 되신 예수님이 우리와 함께 하고 있습니다. 성경을 통하여 우리는 ‘하나님’에 대하여 부분적으로 알고 있으며 천사들에 대하여서도 부분적으로 알고 있습니다. 성경은 인간 구원에 대한 역사이기 때문에 우리에게 비밀로 감추인 부분에 대하여 말씀하고 있지 않습니다. 그래서 우리 또한 하나님이 감추어 두신 부분에 대하여 억지로 알려하거나 추측할 필요가 없습니다. 하나님은 사람을 너무 사랑하셔서 타락한 인간을 위해 끊임없이 일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의 손길을 통하여 우리의 구원이 어떻게 완성되어져 가는 지에 대하여 초점을 맞추어 바라보아야 합니다.
구원의 문턱에서 가장 먼저 떠오르게 하는 말씀이 바로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입니다. 이 부분에 대한 내 자신의 태도에 따라 하나님의 나라에 이를 수도 있고 이르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사람들을 누구나 자신이 완전하지 못함을 고백합니다. 그르면서도 사람들 앞에서는 자신의 약한 모습을 보이지 않으며 부족함이 없으며 정갈한 것처럼 보이기를 애씁니다. 자신을 속이고 하나님을 속이는 이중적인 태도로 일관하고 있습니다. 어릴 때부터 남에게 약하게 보이면 지배당하게 되고, 속박을 받게 된다고 끊임없이 교육받으며, 경쟁사회 속에서 낙오자가 되지 않게 위해 부단히 노력하며 애쓰므로 ‘완전아 자아’를 구축하기 위해 열심히 살라가고 있습니다. 그 끝이 보이는데도 부인하며 자신의 길로 달려가고 있습니다. 이러한 삶을 통하여서는 참된 자아를 발견할 수 없으며 하나님을 대적한다는 사실을 잊어버린 채 한 세상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무엇이 문제인가요?
구원에 이르게 하지 못하는 가장 큰 문제는 자신이 죄인이라는 것을 부인하는 것입니다. 사람이 태어날 때부터 자신의 마음 깊은 곳에 ‘죄성’이 자리 잡고 있다는 것을 부인하는 것입니다. 다들 쉽게 ‘나는 죄인이다’술을 한잔하고 서서히 취하게 되면 자신의 섭섭했던 이야기들을 꺼내면서 자기가 얼마나 나쁜 사람이었는지 말하기 시작합니다. 그런데 다음 날 아침이 되면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말짱한 얼굴로 근엄한 태도로, 때론 상냥하게 다가오는 사람들을 많이 만납니다. 어제 일은 간곳이 없고 다를 ‘필름이 끊어졌다’ ‘떠오르지 않는다’등 모르쇠로 일관합니다.
이 속에서 겉과 속이 다른 이중적인 모습을 발견하며 분노를 느끼기도 합니다. 한국사회에서는 이러한 태도를 너무도 당연히 받아들이며 그 모습에 대하여 관대합니다. 얼마나 일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았으면, 정말 힘들구나. 그렇게 생각하고 넘어가기도 하고 때로는 동질감을 느끼면 당연하게 생각합니다. 그 근원을 살펴보면 이렇습니다.
사람의 본성에 대한 생각
우리는 유교 문화권에서 살아왔습니다. ‘공자’‘맹자’의 생각과 뜻에 동조하면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맹자’는 일찍이 사람들은 태어날 때부터 차마 어지하지 못하는 착한 마음을 ‘인의예지(仁義禮知)’를 갖고 태어난다고 생각했습니다. 따라서 모든 사람은 선하다고 말합니다. 이 선한 마음을 갈고 닦으면 누구나 다 ‘군자’가 될 수 있다고 가르쳤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다 근본 본성이 착하다고 생각합니다. 여기에 우리는 속아살고 있습니다. 또 다른 사람인 ‘순자’는 사람은 태어날 때부터 악하다고 말합니다. 그래서 이 악한 사람들의 다스리기 위해서는 ‘예(禮)’필요하다고 말합니다. 인간의 본성은 악하지만 예를 통하여 굽어진 바르지 못한 마음을 바르게 펴라는 ‘화성기위(化性起爲)’를 주장합니다. 굽은 대나무를 불로서 펼 수 있듯이 사람의 본성도 예로서 바르게 할 수 있다고 말합니다.
성경은 사람의 본성의 변화를 받기 위해서는 ‘죄’를 멀리하라고 말씀합니다. 사람은 태어날 때부터 ‘죄인’으로 태어난다고 말씀합니다. ‘죄성’을 갖고 태어난다고 말씀합니다. 맹자와 순자처럼 자신의 본성을 자기가 다스릴 수 없다고 말씀합니다.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죄의 삯은 사망이요’죄가 가장 큰 문제인 것을 말합니다. 여기서 우리는 도덕적, 윤리학적인 죄를 넘어서 하나님 나라에 천국에 이르지 못하는 죄에 대하여 알아야 합니다. 왜 사람들이 질병과 고통과 죄악에서 고통스럽고 힘들어 하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이는 다 죄에 속하였고 악한 영에 속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나의 행하는 것을 내가 알지 못하노니 곧 원하는 이것은 행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미워하는 그것을 함이라. 만일 내가 원치 아니하는 그것을 하면 내가 이로 율법의 선한 것을 시인하노니 이제는 이것을 행하는 자가 내가 아니요 내 속에 거하는 죄니라.”(롬 8:15~17) 죄에 대하여 우리는 너무나 관대하게 살아왔습니다.
구원에 이르지 못하게 하는 죄
이 죄가 우리를 구원에 문턱에 이르지 못하게 합니다. 죄는 내속에 거하면서 나를 다스리려 합니다. 죄의 특성은 지배하려는데 있습니다. 나의 생각과 마음과 육체의 모든 젓을 죄의 지배아래 두며 죄의 길로 이끌어가려고 합니다. 간혹 내 생활 전체를 마비시키고 나를 죽음의 길로 가게 둡니다. 사람들과 싸우게도 하고, 추악한 일을 하고도 부끄럽지 않으며, 남을 미워하기도 하며, 남을 죽이기도 합니다.
죄의 가장 큰 문제점
죄의 가장 큰 문제점은 하나님이 서야 할 자리에 자신이 설려는데 있습니다. 즉 자신이 하나님처럼 되려는데 있습니다. 사단은 원래 천사장이었습니다. 그도 하나님이 되려고 할 때 하나님으로부터 쫓겨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는 하늘의 공중 권세 잡은 자가 되어 어둠의 영, 미혹의 영이 되어 사람들을 자신의 사람이 되게 하여 멸망의 길로 인도하고 있습니다. 아담과 하와도 너무도 아름답게 창조되었습니다. ‘하나님이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 다른 모든 생물보다 완전하게 아름답게 창조되었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하나님처럼 되고 싶었을 때, 그들은 에덴에서 추방당했으며 육신의 고통과 아픔을 갖고 사는 존재로 전락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그와 더불어 땅도 저주를 받았습니다. 성경에 “땅은 너로 인하여 저주를 받고” 아담의 범죄를 인류의 모든 사람, 태어날 모든 사람, 땅과 땅한 속한 모든 생물, 전 우주에 하나님의 저주가 임하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부끄러운 조상을 두게 되었고 우리 역시도 죄의 사람이 되어 저주 받을 수밖에 없는 상태였습니다.
우리는 결코 하나님이 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을 바라다 볼 수도 없습니다. 하나님을 대면하면 죽을 수밖에 없는 존재입니다. 저에게는 두 아들이 있습니다. 큰 애는 준서인데 그 아이는 1998년 2월 9일 7시 58분에 태어났습니다. 이 세상에 첫 만남을 함께 하지 못했지만 ‘정성숙 보호자 되시는 분’을 찾고 아이와 첫 대면이 이루어졌습니다. 그 아이는 내 행복한 얼굴에 비하여 너무나 힘든 모습이었습니다. 온 몸이 불구스럼 하였고 얼굴은 일그러져 있었습니다. 그 아이는 어머니 함께 힘든 어둠의 통로를 지나오기 위해 너무나 지쳐 있었던 것입니다. 이 세상에 처음 나오는 순간 가장 행복한 순간이었지만 가장 슬픈 순간이기도 했습니다. 제 아이이지만 그는 죄와 함께 세상에 나오게 되었으며 죄 때문에 멸망 받을 수밖에 없는 가엾은 존재였기 때문입니다. 다행인 것은 그 아이가 믿음의 가정에 태어났다는 일입니다. 그는 하나님의 가정에서 자라면서 자신의 죄성을 벗어버리고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믿어야만 하나님의 나라에 구원에 이를 수밖에 없는 존재로 태어났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
“한 사람의 범죄를 인하여 사망이 그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왕 노릇 하였은즉 더욱 은혜와 의의 선물을 넘치게 받는 자들이 한 분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생명 안에서 왕 노릇 하리로다. 그런즉 한 범죄로 많은 사람이 정죄에 이른 것같이 의의 한 행동으로 말미암아 많은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받아 생명에 이르렀느니라. 한 사람의 순종치 아니함으로 많은 사람이 죄인 된 것같이 한 사람의 순종하심으로 많은 사람이 의인이 되리라.”(롬 5:17~19) 아담으로 말미암아 죄가 들어옴으로 모든 사람은 죽음에 이를 수밖에 없었으나 이제 그리스도의 순종하심으로 모든 사람이 의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아무 공로 없사오나 주님은 우리를 사랑하사 하나님의 자녀로 양자의 영을 보내사 아바 아버지라 부를 수 있게 되었습니다.
‘영성훈련’은 우리의 죄성을 다스리는 작업입니다.
우리 스스로 하나님인 체 하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는 우리 자신이 얼마나 약하고 부족한지 성령님을 동하여 늘 우리 자신에게 말씀하고 있고, 양심을 통하여 증거하고 있습니다. 또 너무 자신을 죄악시하여 자신을 원망하며 고통스러워하지 마십시오. 주님께서 우리를 정결케 하셨습니다.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저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모든 불의에서 우리를 깨끗케 하실 것이요”(요일 1:9) 믿음으로 외식과 위선과 불신을 벋고 그리스도로 내면의 세계를 바로 세우셔야 합니다. 성령님의 거룩한 성전으로 다시 세워야 합니다. ‘영성훈련’은 우리의 죄성을 다스리는 작업입니다. 주님의 임재의 경험을 통하여 우리의 어두운 모습을 털어 버리고 빛의 사람으로 주님과 함께 거하시는 성도님들 되시기를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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