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가복음

어린 아이와 하나님 나라

어저나 2009. 9. 12. 12:03

어린 아이와 하나님 나라 (막 10 : 13 ~ 16)                 (2009. 9. 13)


CBS 방송을 들던 중에 ‘장미화와 사랑방 손님’이란 프로그램에서 방송인 송도순(성우)와 함께 대화하는 프로그램에서 자녀에 대한 이야기를 하던 도중 제 귀를 의심케 했던 말 중에 하나가 송도순씨의 할머니가 20명의 자녀를 낳았다는 이야기였습니다. 지금 시대에서는 이해할 수 없는 일이지만 그 시대에는 있을 수 있는 일이었습니다. 어느 날 할머니 집에 이웃집 사람이 놀러 와서 잘 못 안자서 아이들이 많이 있어서 잘 못 안는 바람에 아이를 깔고 앉아서 한 아이를 죽였답니다. 그 때 할머니는 “또 낳으면 되지유?”했더라는 것입니다. 지금 시대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입니다. 저의 어머니도 한 10명 이상의 자녀를 낳은 걸로 기억합니다.


‘돌’의 의미는 그 만큼 1년을 넘겨서 기뻐서 하는 잔치였습니다. 일 년을 넘기지 못하고 죽는 아이들이 많았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래서 아이들의 아명을 좋은 걸로 짓지 않았습니다. ‘개똥이’ ‘쇠똥이’ 등 천하게 불러야 오래 산다고 그렇게 부르다가 아이들이 성장하면 자(字)로 그 이름을 주었습니다. 그렇다고 어린 아이가 천덕꾸러기였다는 말은 아닙니다. 생존 가능성이 떨어지기에 갓난아이들은 사회의 구성원으로 인식하지 않았다는 말입니다. 생명은 존귀한 것입니다. 자녀 잃은 부모의 마음은 경험해보지 못한 사람은 알지 못하는 일입니다. 오죽하면 장애인 부모들은 그 아이가 자기보다 3일 먼저 죽으면 좋겠다는 말들을 많이 합니다.


고대 그리스 스파르타에서는 아이들이 태아나면 원로원에 의탁하는데 원로원에서 아이를 포도주로 씻어보는데 포도주로 씻었을 때 떨거나 경련을 일으키는 아이는 건강하지 않는 아이로 판단하여 절벽에 가서 떨어뜨려 죽였습니다. 남아, 여아 모두 이렇게 해서 강하게 키웠습니다. 민주적이라는 아테네 역시도 아이를 낳고 기르는 일에 어려움이 많았습니다. 아이가 태어날 때 집 벽에 송진 가루를 바르는데 아이를 낳을 때 오염을 방지하기 위한 조치입니다. 아이가 태어나면 올리브 가지를 문 위에 걸쳐 놓습니다. 그 때 이웃 사람들이 아이가 태어났음을 기뻐했습니다. 우리나라와 비슷했습니다. 우리는 문에 탯줄을 걸어두어 외부 사람의 접근을 막았습니다. 아이의 건강을 위해서입니다. 아이의 운명의 결정은 아버지께 있습니다. 아버지는 아이를 찬물에 집에 넣어 심하게 울지 않으면 집에서 키우고 아기가 시험을 통과하지 못하면 아버지는 아이를 산 채로 아테네 부근에 잦다 버렸다고 합니다. 굉장히 가슴 아픈 이야기들입니다.


예수님 시대에도 알렉산드리아에서 발견된 파피루스에도 이런 문장이 있었습니다. “남아이면 살려두고 여아이면 죽여라.” 아이에 생명에 대한 주권은 아버지에게 있었습니다. 그러나 ‘사람의 도리’ ‘인륜(천륜)’을 어찌 거부할 수 있겠습니까? 부모가 자녀에 대한 사랑을 쉽게 포기할 수 있었을까요. 성경에는 아이에 대한 치유의 역사가 기록되어져 있습니다. 왕의 신하의 아들, 12살 된 어린 소녀를 살리시는 예수님, 이방 여인이지만 수로보니게 여인의 딸을 고치심, 예수님은 어린 아이 역시 하나님 나라에 동등한 권리가 있음을 보여주며 그들에 대한 사랑과 관심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본문에 “사람들이 예수의 만져 주심을 바라고 어린아이들 데리고 오매” 정확하게 여자가 데리고 왔는지 아니면 아버지가 데리고 왔는지 아니면 좀 더 나이가 든 형이 데리고 왔는지는 명확히 알 수 없지만 아이에 대한 사랑이 가족 누구에게나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근데 문제가 된 것은 제자들의 태도입니다. 제자들은 예수님 주변에 오는 아이들을 막습니다. 여기에 대한 예수님의 강한 답변이 우리를 주목하게 만듭니다. “예수께서 분히 여겨 이르시되 어린아이가 내게 오는 것을 금하지 말라!” “하나님의 나라는 이런 자의 것이니라.” 예수님은 당시의 관습에 젖어 있는 제자들에게 불호령을 내리시고 그들의 잘못된 습관과 가치관을 뒤집습니다.


복음을 기존의 가치관을 변화시켜 사회를 변하게 합니다.

복음은 잘못된 사회습관을 변화시키는 능력이 있습니다. 복음에 들어가는 곳에 가치관, 풍속의 변화를 가져옵니다. 잘못된 가치체계를 변화시키는 능력이 있습니다. 우리 사회의 민주화에도 복음이 큰 역할을 했음을 부인할 길 없습니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잘못된 사회를 변화시키기 위해 자신의 목숨을 내걸었습니다. 일제시대에도 기독교 수많은 교육 운동을 통하여 많은 인재를 길러내었으며 그들이 사회를 변화시키는 일들을 하였습니다. 예수님은 잘못된 고정관념을 변화시켜 나갔습니다. 그래서 바리새인들이나 사두개인들이 예수님을 두려워했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이런 자의 것이니라.”

사람들은 하나님의 나라는 종교 지도자들 사회의 재력가, 명명가의 것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짙었을 것입니다. 그들은 기득권을 포기하지 않았고 다수의 민중들을 지배하려고 했습니다. 예수님은 이런 사회의 잘못된 관행을 바로잡으시며 그들이 잘못 알고 있던 하나님의 나라에 대해 지적하시며 사람들의 관심밖에 있던 어린이들을 통하여 자신들의 생각이 얼마나 잘못되었는지를 깨닫게 합니다. 아마 제자들도 많이 당황했으리라 보여집니다. 제자들 역시 유대적 관습이나 습관에서 벗어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한 사회가 변하는 데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어린이에 대한 생각이 바뀐 것은 복음이 전해지고 거의 1900년이 지나서 심지어 아직도 어린이에 대한 만행이 저질러지는 곳도 있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 나라에 대한 참된 모습을 어린이를 통해 말씀해 주고 계십니다. 어린이의 순결과 겸손과 신뢰(신앙)가 하나님 나라에 절대적으로 필요한 요소임을 우리에게 말씀하시고 계신 것입니다. 어린이들이 때 묻지 않은 순결한 존재라는 것은 아이를 키워보면 잘 알 수 있지 않습니까?


천국에 들어가려면?

첫째, 순결해야 합니다.


둘째, 겸손해야 합니다.


셋째, 신뢰(신앙)즉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중요한 예수님은 오랜 시간 동안 아이 한 명 한 명을 다 안수하시고 축복해 주셨습니다. 우리들도 어린이들을 축복해 주어야 합니다. 정말 정성을 다해 하나님의 나라를 소망하며 어린이를 통해 하나님 나라의 참된 모습을 바라보길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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