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의 편지

넘어질 까 조심하라!

어저나 2009. 10. 20. 16:31

넘어질까 조심하라 !! ( 고전 10 : 1 ~ 12 )               ( 2009. 10. 18 )


역사에 대한 부정은 자신에 대한 부정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지나간 일들을 지워나간다고 해서 그것이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과거의 영광과 기쁨과 승리뿐만 아니라 능욕과 슬픔과 멸망의 자욱 역시도 우리 속에서 살아 움직이고 있습니다.


오늘 말씀에 ‘신령한 반석’이 나오는데 랍비들의 전승에 의하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 있을 때 14피트(14*30.5=427cm) 높이의 바위가 따라다니며 물을 뿌렸다고 전해져 옵니다. 중요한 것은 여기에서의 반석은 움직일 수 있는 바위 덩어리를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달리 움직일 수 없는 고정된 암반을 말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생명수의 참된 근원임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신령한 반석’되신 그리스도는 참된 생명의 근원되신 분으로 역사의 시점 중심에 거하시며 생명수를 끊임없이 뿜어내시고 계신 분이라는 말씀입니다.


우리는 생명의 근원되신 그리스도 안에 거하여야 합니다. 지난 한 주를 돌아다보며 무척이나 분주한 한 주를 보낸 것 같습니다. 한동안 마음이 공중이 떠 있는 듯한 마음이 저를 조금 불안하게 했던 것이 사실입니다. 무엇인가에 몰두하는 자신이 성취감을 이루는 것에 대한 막연한 불안감이었던 것 같습니다. 수요일 기도회 때에 주님의 이끄심을 또 한 번 겪으면서 모든 것을 이끄시고 함께하시는 성령 하나님의 따뜻한 손길을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지난 주일날 내고 싶었던 기도제목을 오늘 설교를 통하여 전하고 싶었습니다. “그런즉 선  줄로 생각하는 자는 넘어질 까 조심하라.”  그 전 주 내 마음에 계속 머물러 계셨던 하나님의 말씀이 또 한 주를 보내면서 더욱 강하게 저의 가슴에서 떠나지 않고 있었습니다. 네가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 정결함을 받고 은혜 가운데 있어 거룩한 백성이 되어 서 있다고 생각할 때에 오히려 하나님의 은혜를 깊이 있게 간작하지 못하고 사람들에게 자랑하다가 오히려 교만하여 올무에 빠져 넘어질 까 조심하라는 말씀으로 들렸습니다. 멸망당할 까 조심하라는 말씀으로 들렸습니다.


광야의 이스라엘 백성 

바울은 고린도 교인들에게 “너희가 알지 못하기를 내가 원치 아니하노니” 이것은 고린도 교인들이 출애굽 사건을 모른다는 의미가 아니라 바울이 이러한 말을 하는 것은 그들이 출애굽 사건이 지닌 참된 의미를 충분히 파악하지 못할까하는 염려 때문이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모세의 지도하에 구름 아래 있고 바다 가운데로 지났으며 세례를 받았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보호아래에서 하나님의 놀라운 능력을 체험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구원하심을 확실히 체험하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광야에서 멸망 받았습니다. 따라서 고린도 교인들도 끊임없는 경건과 영적인 각성 없이는 멸망 받은 이스라엘 조상들과 같은 전철을 밟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본 절에서 바울은 이러한 역사적인 사실을 통하여 고린도 교인들에게 교훈을 주고자 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광야에서 신령한 식물을 먹으며 신령한 음료를 마셨습니다. 그런 그들이 멸망을 당했습니다. 그들의 원망과 불평, 죄악이 그들을 멸망으로 인도하였습니다. 그들은 교만했습니다. 지도자를 대적하며 하나님의 구원을 잊어버리기를 반복했습니다. 그들은 은혜를 간직하지 못했습니다. 하나님이 매일 먹이시며 입히시는 것들에 대한 감사가 사라져 갔습니다. 은혜 가운데 거하는 백성이 빠지기 쉬운 것이 바로 은혜를 받고 있으면서도 그것이 은혜라는 사실을 망각하는 데 있습니다. 과실을 먹는 사람은 그 과실의 열매를 맺을 때까지의 수고로움을 잊을 수 있습니다.


영광교회를 돌아보는 여정의 시간을 많이 가지면서 우리가 누리는 것에 대한 고마움, 감사함을 잊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을 더 많이 했습니다. 이름 없이, 빛도 없이 살아갔던 우리 믿음의 형제, 자매들의 수고와 헌신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우리가 너무 풍요로워졌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헐벗고 굶주린 시절에 사회에서 잊혀진 자들에 대한 사랑으로 일관한 사람들의 아픔과 수고와 헌신을 잊어버리고 더 많은 것들을 바라지 않나 라는 생각이 듭니다. 고마움과 감사의 미덕을 잃어가고 있지 않나 생각합니다. 저부터 말입니다.


출애굽을 통한 광야는 구원의 완성이 아닙니다. 광야는 연단과 시련의 시기입니다. 광야의 혹독한 연단과 시련을 통한 자기절제와 겸손과 사랑의 마음이 커져야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이 있다는 말입니다. 우린 먼저 열매를 먹고자 합니다. 남이 애써 만들어 놓은 것을 땀과 수고 없이 갖고 싶어합니다. 안 준다고 때 쓸 때가 많이 있습니다. 오! 주님 ~~~ 버리게 하옵소서... 이 못된 맘 버리게 하옵소서. 연단을 통하여 그리스도에 대한 참 믿음 안에 거해야 구원을 얻습니다. 구원은 결코 쉬운 것이 아닙니다. 이스라엘 백성 중에 구원을 이룬 자는 많지 않습니다. 성인 중에는 여호수아와 갈렙 밖에 없습니다. 지도자 모세와 아론도 가나안을 밟지 못하고 멀리서 바라보며 생을 마감했습니다.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착각에 빠져있습니다. 마치 자기 시대인 것처럼 살아가고 있습니다. 모든 시대의 통치자는 하나님 한 분 밖에 없습니다. 자기가 중심이 되는 불안과 두려움이 있습니다. 왜냐고요? 바로 죄가 있기 때문입니다. 죄의 뒤에는 사단이 있습니다. 이들은 빛을 두려워합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합니다. 어찌보면 두렵기 때문에 더 강한 체 하는 지도 모릅니다. 우리는 진리와 빛 되신 그리스도의 근원 속에 들어가면 두려움과 불안을 몰아 낼 수 있습니다. 그리하여 내 속에서 하나님의 나라를 경험하게 되고 성령의 다스리심을 경험하게 되며 구원을 완성하여 나가게 됩니다.   


우리가 헛된 환상에서 깨어나야지 참 진리의 근원을 찾아가게 됩니다. 진리의 근원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만남으로 성령의 인도하심으로 나아가게 됩니다. 우리의 역사의 교훈을 늘 생각해야 합니다. 나의 생을 늘 돌아보아야 합니다. 지나간 시절을 추억에 묻어두는 것이 아니라 잘못되고 죄악 된 삶을 살았더라면 회개하고 참된 구원을 이루어 나아가야 합니다. 우리에게 많은 시간이 있다고 말하지 않아야 합니다. 다들 시간은 잠시라고 말합니다. 정말 잠시입니다. 우리는 들의 꽃과 같습니다. 강건하여도 팔십입니다. 지금 여기에서 시작하십시오. 주님이 우리의 모든 죄를 사하여 주셨습니다. 과거 현재 미래의 죄를 다 사해 주셨습니다. 그 안에 거하여야 합니다. 우리는 신령한 식물과 음료를 마시는 데 그치지 않고 그 안에서 생명을 만나야 합니다. 먹고 마시는데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나라를 체험해야 합니다. 경험해야 합니다.

광야에서 멸망당한 이스라엘 백성들

광야에서 이스라엘 백성은 우상 섬기지 말라는 계명을 어기고 금송아지를 만들어 섬기며 먹고 미시며 일어나서 뛰놀았다 말씀합니다. 춤추며 섬김에 대하여 하나님은 진노하셨으며 하나님의 심판이 있었습니다. 레위 자손들이 허리에 칼을 차고 형제를 친구를 이웃을 칼로 쳐 죽였습니다. 백성 삼 천 명이 동족에 의해 살해되는 비참한 일이 발생했습니다. 하나님은 레위자손이 ‘헌신’하였다 말씀하셨습니다.


또 광야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싯딤에서 모압 여자들과 음행하였으며 그들의 신인 바일브올에게 절하였을 때 하나님은 모세에게 백성의 두령들을 잡아 태양을 향하여 여호와 앞에 목매어 달라 그리하면 여호와의 진노가 이스라엘에게서 떠나리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에 사사들이 백성의 두령들을 죽였으며 아론의 손자 엘르아살의 아들 비느하스가 이스라엘 남자와 그 여인의 배를 꿰뚫어서 두 사람을 죽임으로 염병이 멈추었다고 성경은 말합니다. 그날에 죽은 자는 이만 사천 명이었습니다.(“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일러 가라사대 제사장 아론의 손자 엘르아살의 아들 비느하스가 나의 질투심으로 질투하여 이스라엘 자손 중에서 나의 노를 돌이켜서 나의 질투심으로 그들을 진멸하지 않게 하였도다.”(민 25:10,11)) 하나님은 질투하시는 열정의 하나님이십니다. 이 세상에 오직 한 분만 섬기라 말씀하셨습니다.


또 이스라엘 백성은 호르산을 진행하여 홍해 길로 쫓아 에돔 땅을 둘러 감으로 백성들이 힘들다고 하나님을 원망하였습니다. 그들은 식물도 없고 물도 없는 광야에서 죽게 한다고 하나님을 원망했습니다. 그 때 하나님은 불뱀을 보내어서 그들을 심판했습니다. 하나님은 백성들을 불쌍히 여기시고 놋뱀을 달아서 놋뱀을 본 자는 살게 하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을 광야에서 주린 적도 옷이 헤어진 적도 없고 신발도 닳지 않게 하셨으며 그들을 독수리 날개로 업어 날으셨음을 잊어버리고 하나님을 원망한 자들에게 심판하셨습니다. 은혜를 망각한 백성들에게 엄히 심판하셨습니다.


광야의 이스라엘 백성을 통하여 우리도 무한한 하나님의 은혜를 잊어버리고 순산 순간 원망과 불평이 있었다면 하나님 앞에 회개하여야 합니다. 그래야 하나님의 심판을 면할 수 있습니다. 우리의 가는 길이 멀고 험하여도 하나님이 우리와 동행하시며 성령님의 은혜를 통하여 동행하심을 경험해야 합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에서 얻은 것들은 초자연적인 것들로서 지금 시대에 만나는성령으로부터 유래된'(procceding from the Divine Spirit) 것으로 보는데 이 견해가 가장 타당한 듯합니다(창 1:2; 시 33:6). 하나님께서는 모든 피조물 가운데에서 성령으로 역사하신다. 만나는 자연적이고 일상적인 음식이 아니라 성령의 역사로 공급된 초자연적인 양식이었습니다. 우리 가운데 임하시는 성령님의 능력을 날로 날로 크게 경험해야 합니다.


“선 줄로 생각하는 자는 넘어질 까 조심하라.”

출애굽을 통하여 구름기둥과 불기둥으로 인도하심을 받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홍해를 지남으로 물세례를 받았지만 구원의 감격을 경험했지만 일시적으로 그 감격을 누렸을 뿐이지 오래 간직하지 못했던 것은 그들의 오만과 불손의 마음이었습니다. 원망과 불평의 마음을 다스리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이 사건을 역사 속에 성경 속에 전해지는 이야기로 받을 것이 아니라 오늘 우리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겸손의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교만을 멸망의 앞잡이입니다. 삼손을 보십시오! 그의 오만과 불손은 두 눈이 빼지고 이방인에게 조롱거리가 되었습니다. 그의 힘은 그의 올무가 되어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웠습니다. 그가 회개하고 비참한 상태에서 하나님께 울며 부르짖었을 때 그의 힘의 근원을 회복했으며 이방신 다곤의 제단을 허물고 그가 사사로 있을 때보다 더 많은 사람을 죽였다고 합니다. 우리는 우리의 근원이 하나님 되심을 잊어버리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가 지금 이 자리에서 예배드리게 하신 이는 하나님이시며 우리는 그의 도구였음을 하나님께 고백해야 합니다. 그래야 이곳에 하나님의 영광이 임할 것입니다. 솔로몬 성전에 빽빽한 구름과 연기 가운데 임하신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우상을 버려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상을 제일로 싫어하십니다. 우리에게는 눈에 보이는 우상도 있고 눈에 보이지 않는 우상도 있습니다. 지금 여러분에게 우상이 있다면 제하십시오. 야곱이 세겜에서의 사건을 통하여 위기를 당했을 때 그는 옛 언약을 생각하며 그의 가족과 그의 소유된 사람들 모두에게서 우상을 제할 것을 말하였고 그 우상을 제하고 벧엘로 올라갔을 때 하나님의 주위의 모든 사람을 두렵게 함으로 감히 싸움하지 못하게 하셨습니다. 우리에게도 우상이 제하여질 때 모든 사람들이 하나님의 백성이 하나님의 보호하심으로 두렵게 보게 하실 것입니다. 우리를 사람들이 함부로 하지 못할 것입니다. 우리의 우상이 무엇인지를 분명하게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을 시험하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시험 대상이 아님을 분명히 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살아계신다면 우리에게 보여 주십시오라고 말하지 마십시오. 하나님은 살아계시며 하나님의 열정으로 우리의 삶 가운데 깊숙이 개입하셔서 역사하십니다. 주를 시험하다가 이스라엘 백성이 멸망한 것과 같이 우리 또한 그러한 전철을 밟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우리는 우리의 신앙에서 교회 가운데서 늘 넘어질 까 조심하면서 살아야 합니다. 사단은 무언가 이루어졌을 때 인간에게 허영심을 불어넣어 줍니다. 아담과 하와에게처럼 너희들도 동산의 실과를 먹으면 눈이 밝아져서 하나님처럼 된다고 속삭였을 때 그들의 꾐에 빠져 죄에 머물게 되며 고동을 받게 됩니다. 우리는 우리에게 있는 허영심을 버리고 육체의 소욕을 쫓지 말고 성령의 쫓아 살아야 합니다. 그리하여 성령의 열매를 맺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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