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가복음

두 가지의 부정적인 사건

어저나 2009. 10. 23. 15:01

두 가지의 부정적인 사건 ( 막 12 : 12 ~ 18 )             ( 2009. 10. 25 )



1. 열매 없는 무화과나무에 대한 그리스도의 저주


예수님이 베다니를 떠나 예루살렘으로 오시는 도중에 시장하셨습니다. 마침 멀리 길가에 잎이 무성한 무화과나무를 발견하고 그 나무에서 열매를 얻을까하여 가셔서 쳐다보았는데 아무 열매를 얻지 못하였습니다. 예수님은 그 나무에게 “이제부터 영원토록 사람이 네게서 열매를 따먹지 못하리라.”저주의 말씀을 하셨습니다. 근데 자세히 살펴보면 ‘이는 무화과 때가 아님이라’란 말씀이 눈에 들어옵니다.


그 때는 니산월(4월) 중간인 유월절 절기 때인데 팔레스타인에서는 3월에 무화과나무에 먹을 수 있는 조그마한 열매가 열리고 뒤이어 4월에 크고 무성한 잎들이 나옵니다. 이 때 일찍 열리는 작은 열매를 예수님은 기대했습니다. 작은 열매가 없고 나무들이 푸르고 무성한 잎사귀를 낸다는 것은 그 해에는 열매를 맺지 못한다는 징조였습니다. 열매 없는 무화과나무는 아무 쓸데가 없는 나무입니다. 예수님은 이 나무에 저주의 말씀을 하셨는데 여기에 우리에게 말씀하시려는 예수님의 의도가 있습니다.


예수님이 무화과나무를 본보기로 저주하신 것은 나무 잎이 나무를 숨기고 있었던 것과 같이 성전의 화려한 외적인 모습에 대한 경고의 말씀이었습니다. 에수님은 단순히 나무를 저주하신 것이 아니라 그 세대의 사람들을 향하여 말씀하고 계신 것이었습니다. 겉모습 뿐인 유대의 지도자를 향한 말씀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열매로 알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화려한 겉모습밖에 없는 그 당시의 모습을 그냥 지나치고 갈 수 없었습니다. 이것 또한 오늘날의 우리의 모습으로 바라보아야 합니다. 예배당의 건축을 위해 조 단위를 경비를 들인다고 합니다. 땅 1평에 1억원 하는 땅을 2,500평 매입해 놓았다는 이야기를 들으면서 이해를 할 수 있으면서도 실소를 금할 길 없었습니다. 물론 그들이 지향하는 바를 충분히 이해할 수 있습니다. 성도들이 함께 예배할 공간이 없으며 교육시설이 너무 부족하여 열악한 상황을 극복하기 위한 고육지책이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문제는 본질입니다. 보이는 교회를 추구한다면 하나님이 그 집을 세우기를 기뻐하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우리 교회는 건물이 중심이 아니라 정신이 중심인 교회입니다. 열악한 환경이지만 지난 시절을 돌아다보면 이 보다 더 좋은 적이 없었습니다. 우리는 겉모습보다는 내면을 추구하는 교회이기에 열매를 맺어야 합니다. 그리스도를 따라 사랑과 섬김의 삶을 통하여 책망 받지 않는 열매가 충실한 교회로 만들어야 합니다. 육체의 소욕을 쫒지 아니하고 성령의 열매를 맺는 교회로 성장시켜 나가야 합니다. 주님은 분명 우리에게 열매를 바라실 것입니다.


2. 성전에서 장사하는 자들을 몰아내심


예수님 당시에 사람들은 성전에 예배하러 갈 때 양이나 염소나 비둘기를 가지고 가기 불편했습니다. 그래서 산헤드린 공의회가 감람산에 4개의 시장을 개설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성전의 이방인의 뜰에서 물건을 사고 팔고 동전을 교환하는 일은 오래된 관례이기는 하지암  감람산에 인정받은 시장이 있기 때문에 유사한 목적을 위하여 개설이 된 이방인의 뜰의 시장은 정당화될 수 없습니다. 성전은 마땅히 하나님이 선언하신 목적을 위하여 사용되어야 할 터이며 이러한 언어도단의 범법에 대하여 예수님의 행동은 분노의 표시였습니다. 성전의 앞뜰에서 자행한 범법 행위는 백성 전체를 하나님께 불순종하게끔 만든 셈입니다. 이 혐오스러운 상황을 멈추기 위하여 예수님은 범법의 하수인들을 채찍으로 쳤으며 그들을 뜰에서 추방하였습니다. 주님께서 물리적으로 폭력을 사용하신 기사는 이 하나뿐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하나님을 존귀히 여기시는 열심을 공적으로 표시하신 것으로 이해하여야 합니다.    


예수님은 성전의 참된 모습을 산포하셨습니다. “내 집은 만민이 기도하는 집이라.”그리스도의 집은 모든 사람들에게 기도하는 집으로 인정받아야 합니ㄷ다.  곧 그리스도의 집은 만민의 기도하는 집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사실은 성전을 처음 지었을 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리스도는 성전이 다음과 같이 되게 하실 것입니다. 


첫째로 성전은 기도하는 집이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는 희생 제물인 소와 비둘기를 몰아내신 후 성전을 '기도하는 집'으로 다시 지정하셨습니다. 


둘째로 성전은 유대인들 뿐 아니라 만민에게도 기도하는 집이 되어야합니다.  왜냐하면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들은 구원을 얻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께서 복음을 전하셨던 초기에 매매하는 자들을 성전에서 몰아내시면서 책망하셨던 것은 단지 ‘내 아버지의 집으로 장사하는 집을 만들었다’(요 2:16)는 단 한 가지 이유에서였습니다. 그러나 이제 그는 그들에게 성전을 강도의 굴혈로 만들었다고 책망하십니다. 기도할 때 헛된 세상적인 생각을 마음속에 간직했던 자들은 기도하는 집을 장사하는 집으로 만드는 자들이었습니다.  그러나 과부의 소유를 탈취하는 데에 정신을 빼앗기고도 그것을 가장하려고 오랫동안 기도하는 자들은 기도하는 집을 강도의 굴혈로 만드는 자들입니다.


우리에게도 거룩한 하나님의 성전이 있습니다. 이것은 교회일 수도 있고 내 마음이기도 합니다. 하나님의 집을 강도의 굴혈로 만들지 말아야 합니다. 성전의 중심은 예배입니다. 장사하는 곳이 아닙니다. 소득을 얻을 수 있는 곳이 아닙니다. 우리는 이것을 분명히 해야 합니다. 이스라엘이 왜 멸망했습니까? 왜 유리하는 민족이 되었습니까? 올바른 예배를 드리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경고의 말씀을 받아들려야 합니다. 우리 역시도 내침을 받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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