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의 편지

오실 그이가 당신이오니이까?

어저나 2009. 12. 23. 11:08

오실 그이가 당신이오니이까? ( 눅 7 : 18 ~ 23 )         ( 2009. 12. 6)


통곡의 벽(West Wall)

예루살렘성은 AD 70년경에 로마의 티투스 장군에 의해 처참하게 파괴되었습니다. “돌 하나도 돌 위에 남기지 아니하리니...”  예수님의 예언처럼 처참한 파괴와 살육이 있었습니다. 이때 유일하게 파괴되지 않았던 부분이 예루살렘 성전 서쪽 벽의 일부분이었습니다. 티투스 장군이 자기 자신의 성과를 알리기 위해 일부분만 일부로 남겨 두었다고 합니다. 638년 이슬람 세력이 예루살렘을 정복하고 나서 성전이 있던 자리에 처음으로 회교성전을 짓게 됩니다. 황금 빛 찬란한 돔으로 지금의 예루살렘의 상징적인 건물인 바위돔(Dom of Rock)입니다. 7세기부터 이 서쪽 성벽은 일 년에 단 하루 아부월(유대력 5월) 9일, 성전이 무너졌던 날 단 하루만 유대인 순례자에게 개방되어졌습니다. 디아스포라 유대인은 일 년에 한번 이날에 예레미아 애가를 읽으며 예전의 다윗과 솔로몬의 영광을 되돌아보며 눈물로 기도한다 하여 ‘통곡의 벽’이라는 이름을 갖게 되었습니다.


‘통곡의 벽’은 제2차 세계대전 후 예루살렘이 이스라엘과 요르단을 분할하면서 이 성벽이 요르단 측에 속하였으나 1967년 6월의 3차 중동전쟁에서 이스라엘이 예루살렘 구 시가지를 점령하여 이 성벽이 이스라엘로 넘어 오게 되었습니다. 이 성벽의 곳곳에 종이들이 꼽혀 있는데 이것은 자신의 기도제목을 적어 넣으면 응답이 이루어진다는 신자들의 믿음이 있습니다. 유대인의 애통의 눈물이 쓰며 있는 이곳은 수많은 이들의 성지입니다. 유대인들은 지금도 ‘메시야’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들을 세상의 중심으로 인도할 구원자, 구속주를 기다리며 울며 기도하고 있습니다. 화려한 옛 영화를 찾기 위해 기도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그들의 선조가 구원자인 예수 그리스도를 죽임으로 성전이 무너지고 성벽이 허물어진 역사의 아픔을 제대로 알지 못한 채 회복되어지기를 기도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메시야’가 왔음에도 알지 못했으며 깨닫지 못했습니다. 지금도 그렇습니다.


대림절(대강절)인 지금의 시간들 성탄절을 앞에 두고 예수 그리스도가 왜 이 땅에 오셨으며 그가 성취한 약속이 무엇인지를 깊게 묵상해야 할 시간들입니다. 역사적으로 이미 그리스도는 왔으며 그 언약은 성취되었습니다. 그르면 우리는 또 무엇을 기다리며 대림절을 보내야 할까요? 지금 우리도 기다리는 시간이 필요한 사람들입니다.


세례 요한의 질문

본문의 말씀을 보면 이상히 여겨지는 부분이 있습니다. 요한이 자신의 제자를 예수님에게 보내어 묻습니다. “오실 그 이가 당신이오니이까? 우리가 다른 이를 기다리오리이까?” 그는 분명 예수님을 “보라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라 말씀했으며 그에게 세례 베풀기를 주저했었습니다. 또 세례 중에 하나님의 성령이 비둘기 같이 임하는 것을 목격했으며 “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가 너를 기뻐하노라”는 하늘의 음성을 들었습니다. “그는 흥하여야 할 것이요 나는 쇠하리라.” 그러던 그가 메시야를 의심하기에 이르렀다는 사실은 우리를 당황스럽게 하는 것이 사실입니다.


이때 세례 요한은 헤롯이 불의한 방법으로 동생의 아내인 헤로디아와 결혼한 것에 대하여 책망을 하였고 그 사건으로 감옥에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아마 세례 요한도 이 불의한 사람을 메시야 되신 예수님이 책망하고 벌해줄 것을 바랬는 것 같습니다. 오랜 옥살이로 그의 인내심이 참을 수 없는 한계에 달했는지도 모릅니다. 즉 요한은 유대의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로마의 압제를 물리치고 헤롯과 같은 악한 세력을 제거하여 이스라엘에 평화와 기쁨을 가져다 줄 메시야를 기대했었는지도 모릅니다. 아무튼 그는 예수님의 메시야성에 대하여 의심을 했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보다 많은 정보를 얻기 위해 그의 제자 두 명을 예수님께 보냈으며 예수님에게 질문했으며 그의 답변을 기다렸습니다.


우리가 여기에서 세례 요한에 대하여 의심을 품어서는 안됩니다. 메시야의 오실 길을 예비한 세례 요한은 그가 참수형을 당하는 그 순간까지 그의 사역에 충실했으며 그가 옥중에서 예수의 메시야성을 오해하거나 의심했었다 할지라도 예수께서는 그를 인정하셨으며 그의 사역을 극찬하셨습니다.“여자가 낳은 자 중에 요한보다 큰 이가 없도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는 분명 자신의 주어진 사명을 완수했으며 예수님의 존재를 세상의 어느 누구보다 더 많이 알고 있었으며 사람들에게 알려주었습니다.


예수님의 답변

예수님의 답변은 ‘내가 메시야이다’라고 명확히 말씀하시지 않고 오히려 메사야의 사역을 말씀해 주셨습니다. “너희가 가서 보고 들은 것을 요한에게 고하되 소경이 보며 앉은뱅이가 걸으며 문둥이가 깨끗함을 받으며 귀머거리가 들으며 죽은 자가 살아나며 가난한 자에게 복음이 전파된다 하라.” 예수님은 확실한 증거를 말해 주셨습니다. 이사야 29장 18절 “그 날에 귀머거리가 책의 말을 들을 것이며 어둡고 캄캄한데서 소경의 눈이 볼 것이며” 이사야 61장 1절 “주 여호와의 신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여호와께서 내게 기름을 부으사 가난한 자에게 아름다운 소식을 전하게 하려 하심이라 나를 보내사 마음이 상한 자를 고치며 포로 된 자에게 자유를, 갇힌 자에게 놓임을 전파하며” 구약의 예언이 성취되었음을 말씀해 주셨습니다. 아마 이 말씀을 통하여 세례 요한 자신이 찾고 기다리는 메시야 참되다는 것을 확신하였으며 그의 제자들에게도 예수님을 따를 것을 권유했다고 생각합니다. 초기에는 에수님의 제자와 세례 요한의 제자들이 중복되어져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확실한 예언의 성취를 보여주심으로 메시야 되심을 선포하셨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확신하는 것은 말씀만 선포하신 것이 아니라 이 땅의 메시야로서의 사역을 증명해 주심으로 우리에게 확신을 주십니다. 전 도마의 확실한 물음이 현대인에게 예수님의 부활을 더 확증한 것이라 생각합니다. 내가 직접 보고 만져보아야 알 수 있다는 그의 생각을 통해 진짜로 확신했으며 예수님의 부활을 받아드렸습니다. 세례 요한도 옥중에서 흔들렸지만 예수님의 사역을 확신하였습니다. 그는 마지막까지 신앙의 정절을 지켰습니다.


유대인들

유대인들은 메시야를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수많은 이적과 기사를 경험하며 하나님 나라의 설교를 들었지만 그들은 끝내 예수님을 거부했습니다. 물론 적지 않는 사람이 예수님을 인정하고 그를 믿음으로 고백하였지만 그 수는 소수에 불과했습니다. 유대인들은 ‘정치적 메시야’를 크게 기대했으며 당장에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기만을 바랬습니다. 그들은 조급했고 인내심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무참히 살해하는데 동조했습니다. 유대인들은 자신이 만들어낸 메시야를 바랐으며 하나님이 원하시는 메시야를 바르게 볼 수 없었습니다. 그들은 죄로 물들어 하나님을 바르게 볼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반추한다고 합니까? 세례 요한과 유대인을 통해서 오늘 우리의 모습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그럼 우리는 과연 기다리고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현실에 안주하며 하나님의 나라에 대하여 미적미적 거리며 ‘이대로’의 신앙을 갖고 있지 않는가? 깊이 있게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대강절(대림절)을 맞아 그러면 우리는 무엇을 기다리며 살아가야 합니까?


첫째, 주의 종 다윗의 때와 같이 예배가 회복되기를 기다려야 합니다.

다윗은 위대한 왕이기도 했지만 그는 시인이었으며, 음악가이었으며, 용맹한 군사였습니다. 그는 음유시인이었습니다. 광야를 전전하며 위기 속에서 하나님을 찬양하며 하나님께 끊임없이 기도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로맨티스트였습니다. 복잡한 여자관계를 보면 알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는 하나님을 향한 그의 고백은 시편 23편이 잘 대변해 줍니다. 그는 어려운 시절을 딛고 유다의 임금이 되었습니다. 7년 6개월의 헤브론 통치 시대를 마감하고 통일 왕국의 왕이 되어 예루살렘에 입성합니다. 그는 성막을 사모했으며 하나님의 거룩한 말씀과 언약이 담겨있는 법궤를 모시기 위해 성전을 건축할 꿈을 꿉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다음 대에 가서야 성전이 만들어져야 한다는 나단의 예언의 말씀을 받고 실망했지만 곧 그는 그의 아들이 성전을 짓게 될 것이란 확신 속에 백향목과 금과 은, 철과 동을 모읍니다. 사람을 준비시키며 제사장들과 성전을 지키는 자와 노래하는 자, 예배자들을 준비시켰습니다.


그는 하나님께 예배를 통하여 영광을 돌렸습니다. 그는 심지어 옷이 흘러내리는 것을 잊어버린 채 하나님을 찬양했습니다. 다윗은 그 어려움 중에서도 하나님을 원망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에게 예배함을 사모했습니다. 그의 시편은 거의 고난 중에 하나님이 지켜주시기를 소망하며 인내함으로 보냈습니다. 우리에게도 예배함이 온전히 이루어지기를 기대해야 합니다. 우리는 마지막 하늘나라에서 하나님을 예배하는 자로 서게 될 것입니다. 지금부터 거룩함으로 옷 입고 하나님 나라에서의 예배를 꿈꾸며 우리의 예배가 하나님과 함께 하는 예배되기를 기대하며 소망하며 살아야 합니다.


둘째, 에스겔의 환상처럼 마른 뼈가 살아나는 것을 기대해야 합니다.

에스겔 선지자가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하여 이르기를 “너희 마른 뼈들아 여호와의 말씀을 들을찌어다.”(겔 37:4) “내가 생기를 너희에게 들어가게 하리니 너희가 살리라.” 이 말씀이 있을 때 마른 뼈들이 연락 서로 합하고 힘줄이 생기고 살이 오르며 그 위에 가죽이 덮이고 생기를 불어넣으니 큰 군대가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무에서 유를 창조하신 하나님이십니다. 지금은 영적 전쟁의 시대입니다. 영적으로 강한 군대가 필요합니다. 하나님은 마른 뼈들을 강한 군대로 만드셨는데 그의 사랑하는 백성들을 친히 쓰시리라 믿습니다. 우리는 이제 강한 군대가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이 이 시대에 쓰실 자를 친히 찾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말씀으로 이루어 내십니다.


중요한 것은 이러한 강한 군사가 되기를 원하신다면 기도의 골방을 가져야 합니다. 하나님의 능력의 일군이 되기 위해 끊임없는 기도의 시간이 필요합니다. 우리는 하나님 나라의 회복을 위하여 살아가는 그의 군대된 사람입니다. 그러기에 우리의 기도의 시간을 늘려 나가야 합니다. 영적인 전쟁에서 승리해야 합니다. 악의 세력과 어두움의 세력들을 물리치고 당당하게 승전의 개가를 올리기 위해 준비해야 합니다. 마른 뼈들이 살아나듯이 우리의 영이 살아나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능력에 의해 새롭게 태어나는 생명들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사용하시고 싶어 하십니다.


셋째, 엘리야 때처럼 주 말씀이 선포되어야 합니다.

엘리야는 극악무도한 아합 왕에게 하나님의 징벌을 선포했습니다. 3년 6개월의 긴 가뭄이 있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말씀을 분명하게 선포하였습니다. 그는 많은 위기에 있었지만 하나님의 도우심을 경험했습니다. 그는 두려움 속에 있었지만 하나님은 그를 도우셨습니다. 하나님이 이루어주실 일에 대한 확신이 있었습니다. 그는 바알과 아세라를 선지자를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하나님을 경외했으며 하나님을 두려워했습니다. 우리에게 이러한 신앙과 용기가 필요합니다. 하나님을 필요에 의해 찾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부르심을 기대하며 부르심에 응답할 준비를 하고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오늘날 당신의 일군을 찾고 계십니다. 예수님도 밭의 곡식이 누렇게 익었는데 추수할 일군을 부르셨습니다. 오늘날 하나님의 추수가 임박한 이 시점에 주님은 일군을 부르고 있습니다. 추수할 일군을 부르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곳에 하나님 나라의 복음이 선포되어져야 합니다. 우리는 세상의 학문과 세상의 영욕과 영광과 명예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주님의 은혜의 해를 선포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임박한 진노와 구원을 산포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복음 선포를 원하고 있습니다. 설교는 축복과 삶의 지혜를 말하는 시간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의 확장과 예수 그리스도의 능력이 선포되어져야 합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선포되어져야 합니다. 세상의 영과 세상의 권력에 두려워 할 것이 아니라 오로지 하나님의 엄위하심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넷째, 주위 종 모세의 때와 같이 언약의 성취를 기대해야 합니다.

모세는 하나님의 사환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친구와 같이 하나님과의 깊은 교제의 삶을 살았던 사람입니다. 그는 하나님의 부르심에 응답하였으며 이스라엘 백성을 이집트의 압제로부터 구원해 내었습니다. 모세는 하나님의 언약의 성취를 이루어 낸 사람이었습니다. 신명기 18장 5절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의 중 내 형제 중에서 나와 같은 선지자 하나를 너를 위하여 일으키시리니 너희는 그를 들을지니라.” 여기에서 ‘나와 같은 선지자 하나’는 일차적으로는 선지자 제도에 관한 약속으로, 모세 사후에도 계속해서 이스라엘 백성 중에서 일어날 하나님의 모든 선지자들을 가리킵니다. 그러나 궁극적으로는 메시야에 대한 예언으로, 마치 모세가 이스라엘의 선지자, 제사장, 그리고 왕이었던 것처럼 온 인류의 유일한 대제사장이며, 영원한 왕 그리스도가 이스라엘 혈통 중에서 나타나실 것을 의미합니다. 이미 모세를 통하여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의 언약을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의 의미를 찾아서 하나님의 나라가 하루 속히 이루어질 수 있도록 기대하며 준비해야 합니다. 우리는 이제 주님의 재림을 준비하는 자로서 성령의 능력을 덧입고 메시야의 임재를 소망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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