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가복음

가장 큰 계명

어저나 2009. 12. 23. 11:28

가장 큰 계명 ( 막 12 : 28 ~ 34 )                            (2009. 12. 13)


서기관의 질문

서기관 중 한 사람이 예수의 사두개인과의 변론을 듣고 그들에 대한 그의 훌륭한 답변에 매우 감명을 받았습니다. 이것은 그가 바리새인이었음을 암시합니다. 그는 서기관들 사이에 토론되던 주제에 대해 예수의 답변하는 솜씨를 평가하기 위하여 어떤 적대감이나 숨겨진 저의 없이 찾아왔습니다. 전통적으로 서기관들은 모세의 율법에 관한 613가지의 개별적인 율법(365가지는 부정적인 것이요 248가지는 긍정적인 것이다.)에 대해 말했습니다. 그들은 모든 율법이 구속력 있는 것으로 믿으면서도 더 무거운 것과 가벼운 법령을 구분하여 생각하였고 전체의 율법을 단 하나의 계명으로 요약하려는 시도를 하기도 하였습니다. 이러한 논쟁의 견지에서 이 서기관은 이 모든 율법 주에서 어느 계명이 가장 중요한 계명이냐고 물었던 것입니다.


예수님의 대답

예수의 대답은 어느 것이 크냐 작으냐의 문제를 뛰어넘어 전체 율법을 요약해 주는 가장 중요한 계명으로 가는 것이었습니다.


1) 모든 계명 중에 가장 클 뿐 아니라 진정 모든 계명을 내포하고 있는 계명은 '네 마음을 다하고…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10절)는 것이었습니다.  이 계명이 영혼을 지배하는 원리가 될 때 모든 다른 의무도 실행할 수 있는 것입니다. 사랑이란 영혼을 지배하는 가장 큰감정입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사랑이란 중생한 영혼에게 가장 큰 은혜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계명이, 지배하는 원리가 되지 못할 때 선한 것은 아무 것도 이루어지지 않게 됩니다. 우리는 마음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함으로써 우리의 영혼 속에 있는 보좌를 차지하고 하나님과 대적하는 모든 것들을 효과적으로 제거하게 될 것입니다. 이 원칙이 적용되는 곳에서는 어떤 계명도 부담스럽지 않을 것입니다.


2) 모든 계명 중에 둘째로 큰 계명은 '네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라'(31절)는 것입니다.  우리는 대접받고자 하는 대로 행함으로써 이 계명을 보여 주어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우리 자신보다 더 사랑해야 하는 것처럼 우리의 이웃을 우리의 몸과 같이 사랑해야 합니다.  그 이유는 우리의 이웃도 우리와 같은 특성을 지녔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만일 그 이웃이 동료 그리스도인이며 함께 거룩한 교제를 나누는 사람이라면 그 의무는 더욱 강해집니다.


서기관의 동의

그리스도의 답변에 대해 자기의 의견을 말합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주 곧 우리하나님의 유일한 주시라’(29절)는 교리를 인용하셨었습니다. 그는 이 교리에 동의했을 뿐 아니라 ‘그 외에 다른 이가 없다’라는 말까지 덧붙였습니다. 이 말은 그가 하나님의 대적들을 모두 배척하고 있으며 전적으로 하나님만을 위해서 마음속의 보좌를 마련하고 있음을 나타냅니다. 그리스도께서는 마을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가장 큰 계명이라고 규정하셨습니다.  그리스도께서 또한 이 계명을 설명하시면서 마음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한다는 것은 깨달음으로 하나님을 사랑한다는 뜻이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에 대한 우리의 사랑은 온전한 사랑이어야 하는 만큼 지성적인 사랑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는 오직 깨달음으로 하나님을 사랑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하나님에 대한 우리의 영적인 애정이 싹트도록 우리의 이성적인 능력과 재능을 쏟아야 합니다. 그리스도는 하나님과 우리의 이웃을 사랑하는 것이 모든 계명 중에 가장 큰 계명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에 대해 그 서기관은 하나님과 우리의 이웃을 사랑하는 것이 ‘전체로 드리는 모든 번제물과 기타 제물보다 나으며’(33절) 하나님에게 더 열납 될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하나님께 제물을 드리는 것이 모든 계명 중에 가장 큰 계명이라고 주장한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 서기관은 다음과 같은 점에서 우리 구주의 뜻에 기꺼이 동의했습니다. 곧 하나님과 우리의 이웃을 사랑하는 것이 하나님께 제물과 번제물을 드리는 것보다 더 낫다고 하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계명과 실천

우리는 율법의 중심을 보았습니다. ‘공의’와 ‘사랑’ 중에 예수님은 ‘사랑’에 좀 더 무게를 두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실은 하나님의 공의로우심의 사랑에서 출발한다는 것을 잘 알지만, 우리는 ‘공의’에 들어있는 심판을 두려워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주님을 따르는 자가 되다는 것은 하나님에게 중심을 둔 사랑의 실천으로 나타나야 함을 다시 한 번 각인하게 됩니다. 사랑은 가장 보편성을 지닌 언어이자 삶의 방법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에 대한 확고한 사랑과 이웃에 대한 진실한 사랑으로 하나님의 나라를 일구어 나갈 수 있어야 합니다. 이것은 부단한 실천의지가 필요합니다. 성령님의 은혜를 갈구할 수밖에 없습니다. 육신과 사망의 법을 쫒는 것이 아니라 성령의 법을 따를 때 이루어지는 것을 삶속에서 경험하게 됩니다. 미운 자가 있으면 기도하십시오. 시간이 지나면 사랑하게 된다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내 의지가 아니라 하나님의 마음이 나를 지배하면 내가 알지 못하는 많은 것을 사랑하게 되고 소유하게 되어 행복한 삶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

 

 

 

 

 

'마가복음' 카테고리의 다른 글

산자의 하나님  (0) 2009.12.23
포악한 사람들  (0) 2009.11.14
예수님의 권세  (0) 2009.11.14
"구한 것을 받은 줄로 믿으라!"   (0) 2009.11.14
두 가지의 부정적인 사건  (0) 2009.10.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