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가복음

산자의 하나님

어저나 2009. 12. 23. 11:30

산 자의 하나님 ( 막 12 : 18 ~ 27 )                          (2009. 12. 6)


우리는 유독 바리새인에 대하여 혹독한 비판을 가합니다. “바리새인의 누룩을 주의하라”는 예수님의 말씀을 따라서, 율법주의적이고 외형적인 가식과 가면을 쓰고 있는 이중적 태도의 그리스도인들을 바라새적이라 말합니다. 바리새적이란 말은 굉장히 기분 나쁘게 듣습니다. 그런데 사두개인에 대하여 좋지 않는 집단이라 생각하나 사두개인에 대하여는 좀 무지한 것이 사실입니다.


사두개인은 어떤 사람들인가?

사두개파는 다윗 시대의 대사제(대제사장)였던 사독에서 파생된 말로, 사독의 후손들은 마카베오 시대까지 사제직을 수행했습니다. 그들은 바리새파 사람들과 함께 산헤드린 의회에서 법관의 역할도 했기 때문에, 사도행전에 사도 바울로가 산헤드린 의회에서 재판을 받았다는 이야기가 나옵니다(사도 23:1-9). 그들은 모세 오경으로만 국한된 모세 법에 배타적으로 집착하고, 바리새파 사람들이 받아들인 온갖 주석과 전승들을 거부했다는 점에서 그들과 구별됩니다. 그들은 특히 천사나 악마의 존재뿐만 아니라 부활 사상과 내세에서의 보상(마태 22:22-33)이라는 생각도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사도 23:8-9). 그리하여 오늘의 말씀 누가의 복음서에는 부활에 대해 사두개파와 예수가 논쟁을 벌였다는 내용이 나옵니다(누가 20:27-38). 사두개파 사람들은 유대교의 신학과 전통을 중요하게 생각하던 바리새파 사람들과 달리 헬레니즘의 영향을 그대로 방치했습니다. 광야에서 세례자 요한은 그들을 ‘독사의 족속들’(마태오 3:7)로 취급했습니다. 정치적으로는 로마 제국에 우호적인 모습을 보이면서 정치적, 종교적, 경제적인 기득권을 누린 친로마파였습니다. 하지만 사두가이파들의 활동무대였던 예루살렘이 유대독립전쟁으로 붕괴되면서 사두가이파들은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되었습니다.


사두개인 역시 예수님을 곤경에 빠트리기 위해 부활에 관한 논쟁을 벌입니다. 사두개인들은 부활을 인정하지 않지만 만약 존재할 경우 그 세계는 현재와 같은 세계로 존재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예수님에게 질문한 것도 이런 맥락에서 볼 수가 있습니다. 모세의 율법을 이용하여 형의 후사가 없을 경우 동생이 형의 대를 잇게 해주기 위해 그 여자를 아내로 취하여 대를 잇게 하는 율법적 의무가 있습니다. 그렇게 하여 일곱 형제가 다 죽었을 때 천국에 가서 누구의 아내가 되어야 하느냐? 의 질문이 바로 그들은 천국을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과 동일하게 이해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사두개인에 대한 책망

예수님은 사두개인들을 책망합니다.

첫째, “성경을 알지 못한다.”라 책망합니다. 사두개인들이 성경을 읽지 않았던 것은 아닙니다. 아마도 그들은 성경 속에서 그들의 문제를 준비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성경 말씀의 의미를 깨닫지 않고 오히려 성경을 잘못 해석했기 때문에 성경도 알지 못했다는 소리를 들었을 것입니다. 모든 계시 신앙의 원천이며 터전이 되는 성경에 대한 올바른 지식이 바로 오해를 막는 가장 좋은 방지책입니다. 진리 곧 성경말씀을 지키라 그러면 그 진리가 너희를 지킬 것입니다.

둘째, “하나님의 능력을 알지 못했다.”라 책망합니다. 그들은 전능하신 하나님에 대하여 모를 리가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이 교리를 이 문제에 적용하지 않고 오히려 부활의 진리가 불가능할 것이라는 이유 때문에 그 진리를 포기해 버렸습니다. 그러나 봄이 다시 돌아오는 속에서(시 104:30), 밀알이 썩어 다시 살아나는 속에서(요 12:34), 비참한 처지에 놓여 있던 백성이 다시 번성하는 속에서(겔12-14), 그리고 구약과 신약에서 모두 수많은 사람들을 죽음으로부터 다시 살리는 속에서, 특별히 그리스도가 부활하는(엡 1:19,20) 사건 속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권능을 보게 되며 이 하나님의 권능은 그와 같은 능력을 통해 이루어지는 우리의 부활을 확실하게 증거해 주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바울은 ‘그가 만물을 자기에게 복종케 하실 구 있는 자의 역사로 우리의 낮은 몸을 자기 영광의 몸의 형체와 같이 변케 하시리라’라고 말했습니다(빌 3:21).


모세와 하나님의 대면을 설명해 주십니다.

사두개인들은 분명히 부활에 대하여 제대로 알고 있지 못함을 모세의 소명 장면을 글어 풀어 설명하여 주십니다. 가시떨기 나무에서 하나님은 “나는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 이삭의 하나님이요 야곱의 하나님이라” 말씀하셨다고 합니다. 이 속에는 “나는 과거에도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 현재에도 아브라함의 아버지이다.”라고 말씀하셨다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은 과거와 현재와 미래 속에 거하시는 자신의 사랑하는 자를 위한 구원의 계획을 갖고 계심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과의 관계성 부분에 있어 시점을 한정하는 일이 있어서는 되지 않습니다. 공간 역시도 제한해서는 안됩니다. 하나님은 시 공간을 초월하여 존재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사두개인은 하나님을 모세의 율법(토라) 속에 제한해 두었습니다. 그래서 천국, 부활, 영생, 천사에 대하여 무지하게 되었습니다.


부활은 우리의 영과 혼을 다시 살게 되는 일입니다.

예수님은 사람들의 생각을 뛰어넘으셨습니다. 부활한 사람들의 삶은 지금의 세상과 다른 삶의 세계임을 명백하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오해하고 있는 부분은 천국에 상급과 지상 세계에서 벌어지는 그러한 삶을 연상해서는 되지 않습니다. 천국에는 결혼이 없다고 분명히 말합니다. 아담의 타락이후에 생명의 잉태의 고통이 인간에게 임했습니다. 그전에는 그런 것이 없었습니다. 모든 사람은 정결하여 하나님과 함께 살아가게 됩니다. 우리는 다시  한 번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사두개인들과 세상의 모든 삶의 형태가 옮겨져 있다는 생각을 버려야 합니다. 예수님은 분명히 너희 거할 처소를 예비하러 간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천국은 분명 장소입니다. 그리고 그 곳은 생명수가 흘러내리는 생명이 넘치는 새 하늘과 새 땅입니다.


우리는 부활에 대하여 공격하는 어떤 세력에 대하여 단호하게 말해야 합니다. 부활은 우리의 영만 살아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육도 다시 살아나며 지금의 형태와 다른 부활하신 예수님의 모습을 갖게 될 것이라 분명히 말해야 합니다. 그 부활체가 살 곳은 이곳이 아니라 주님께서 친히 만드신 곳이라 말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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