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의 편지

히스기야 시대의 부흥(3)

어저나 2010. 1. 16. 22:16

히스기야 시대의 부흥(3) ( 대하 : 30 ~ 22 )                (2010. 1. 17)


10여 년 전 ‘기독교문화연구소’ 일에 동역하던 때 ‘신규인 화백’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 분은 순수 기독교 창작 미술에 전념하시던 분이었습니다. 그의 그림 중에서 기억 남는 것은 1930년대에 한 아녀자가 등에는 아이를 업고 머리에는 이불을 이고 있었으며 옆에 또 자신의 이이를 데리고 교회 앞에 서 있는 모습이 그림으로 그려져 있었습니다. 교회 옆에는 수부키 쌓은 눈을 볼 수 있었는데 사진처럼 보였습니다. 그 그림의 내막은 이러했습니다. 봄, 여름, 가을 농사일에 바빠 하나님의 말씀을 제대로 듣지 못하고 하나님의 은혜에 충만하게 거하지 못한 아쉬움을 달래고자 농사일이 끝난 겨울에 매서운 추위에 아랑곳 하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을 사모하고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여 ‘말씀사경회’를 찾아서 순례하는 것이었다고 합니다.


1930년대 어렵고 힘든 그 시절에 하나님의 말씀의 충만을 경험하고 말씀 속에 임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을 체험한 수많은 이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기 위해 농번기를 피해 갈급함을 채웠다고 합니다. 일제시대에 나라를 잃은 우리 민족은 그 슬픔에 빠져 비통함에 빠져 있었으며 농번기가 끝나면 남자들은 ‘사랑방’에 모여 화투와 술, 담배로 피폐하게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이것은 안타깝게 본 선교사님은 ‘조선’의 기독교인에게 술과 담배를 끊게 하였습니다. 그리고 대부흥 이후 평양과 북한 땅에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금주와 금연을 선연하며 ‘사랑방’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곳으로 만들어 나갔습니다. 그리고 겨울에는 ‘말씀 사경회’를 열어 하나님의 말씀으로 조선의 사람들을 변화시켜 나가게 하기 위하여 피나는 노력을 하였으며 부흥을 경험한 사람들을 하나님의 말씀을 사모하여 매서운 추위를 견디어내며 말씀공부에 전력을 다하였습니다. 그런 아름다운 사람들이 있었기에 한국의 기독교는 생명력 있는 그리스도인이 넘쳐났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들은 핑계하지 아니하고 모이기를 힘썼습니다. 수 십리, 수 백리를 마다 않고 하나님의 말씀 성회가 열리는 곳이라면 그리스도인들이 차고 넘쳤습니다. 많은 선교사님들이 작은 시골에 선교사들이 한 번도 방문한 적이 없었는데도 성경에 대하여 깊이 있게 알고 있었을 뿐만 아니라 예배당이 지어져 있었으며 성도들이 수 백 명이 넘는 곳이 있다는데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고 전해집니다. 


하나님의 성회가 열리는 곳에 부흥이 임합니다.

이렇게 조선의 교회 사경회에는 사람들이 몰려들었습니다. 구름떼처럼 모여들었습니다. 그곳에 하나님은 말씀하셨고 하나님의 임재하심이 있었고 수많은 이들이 회개하며 예수 그리스도 앞에 무릎을 꿇고 자신이 하나님의 아들, 딸이 되었음을 기뻐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넘치는 곳에는 사람들이 모일 수밖에 없습니다. 사람들은 하나님을 사모하며 갈망하기 때문입니다. 히스기야 시대에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성전을 정결히 하고 제사장들이 정결해지자 사람들이 하나님을 갈망하였으며 하나님께 제사드리기를 원했습니다. 히스기야는 왜 북쪽 이스라엘이 앗시리아에게 멸망당한 이유를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히스기야는 이스라엘 사람들도 하나님의 성회 ‘유월절’에 초대합니다. 이때는 이스라엘이 앗시리아에게 멸망당하고 ‘남은 자’ 그들을 다시 불러 세우기를 원했습니다. 1절 “히스기야가 온 이스라엘과 유다에게 사람을 보내고” ‘온 이스라엘’ 온 이스라엘을 유다로 오해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하여 이렇게 두 번에 걸쳐 구체적으로 기록할 필요가 있었던 것입니다. 히스기야는 하나님의 언약 백성 모두가 유월절 성회에 모여 하나님을 높이기를 원했습니다. 하나님의 사람이 모여야 하나님의 부흥이 시작됨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1. 히스기야의 부흥은 선하고 의로운 개혁정신에서 나왔습니다.

히스기야는 유월절 성회를 준비했습니다. 그리고 온 이스라엘과 유다가 다 함께 성회를 지키게 하기 위해서 사람들을 파견합니다. 특별히 그는 북쪽 이스라엘왕국에 대하여 상대적인 관용을 베풉니다. 그들에게 편지만 보내는 것이 아니라 보발군도 함께 보냅니다. 이스라엘은 멸망당했고 소수의 사람들만 남아 있으므로 남쪽 유다가 자신들을 경멸하게 여기고 무시하지 않을까? 하는 자존심이 남아 있었을 것으로 보입니다. 그래서 편지만 보내는 것이 아니라 사람도 함께 보내어 자신의 진심을 알리게 했습니다.


본래 율법에서 규정한 유월절은 정월(니산월) 14일부터 7일간 지키도록 되어 있습니다(출 12:1-28, 43:49 ; 민 9:1-14). 그러나 만일 시체로 인하여 부정케 되든지, 먼 여행 중에 있어서 정월 14일에 유월절을 지키지 못한 사람은 다음 달(이야르월) 14일 해질 때에 유월절을 지키도록 했습니다(민 9:10, 12). 문제는 성전을 정결케 하기 시작한 것은 정월 1일부터 시작해서 8일간 진행되었습니다. 원래의 날짜를 지나있었습니다. 그리고 성결케 한 제사장이 부족하였고 백성들이 급하게 예루살렘에 모이는 것이 힘들었기 때문입니다. 2절 “왕이 방백들과 예루살렘 온 회중과 더불어 의논하고 둘째 달에 유월절을 지키려하였으니”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히스기야는 조급히 생각한 것이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성회에 참석하게 하기 위하여 독단적으로 결정한 것이 아니라 방백과 백성들의 의견과 여러 가지 상황을 잘 살펴보고 준비를 했습니다. 우리는 부흥을 너무 조급하게 조바심을 갖게되는 것을 주의해야 합니다.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사람들의 마음이 일치되는 것입니다.


부흥에 있어서 중요한 것은 집중의 원리입니다. 일치를 구하고 하나님에 대한 집중이 이루어져야 합니다. 의견이 분산되면 아무것도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주도 하나이요 성령도 하나이요 세례도 하나이니”말씀을 기억합니다. 하나가 되어야 합니다. 우리는 주님이 모퉁이 돌 되시고 우리는 벽돌이 되어 연결되어져 성전이 되어가는 것입니다. 집중하기 위해서는 우리는 기도로 나아가야 합니다. 의견이 하나로 모아질 때까지 기도해야 합니다. 그래야 매듭이 풀리게 됩니다. 성급한 개혁은 성공하지 못합니다. 집중을 통하여 겸손을 배우게 됩니다. 공동체가 처한 상황을 더 깊이 인식할 수 있는 시간을 가질 수 있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교회 이전에 대하여 지도자로서 너무 조급하고 성급하게 대처했다는 생각이 들어 이번 특별기도회를 통하여 회개하고 하나님의 뜻을 구하였습니다. 하나님은 부족한 저에게 더 많이 기도하고 하나님의 인도를 준비하게 하신 것 같습니다. 아직도 매듭이 풀린 것은 없습니다. 하나님은 자신의 영광을 위하여 우리를 선한 곳으로 인도하실 것을 믿습니다.


2. 부흥 속에는 ‘남아 있는 자’(소외된 자)에 대한 초대가 계속되어집니다.

히스기야는 멸망당한 북왕국, 이스라엘 사람들에 대한 초대를 잊지 않았습니다. 그들도 하나님의 언약의 백성으로 인식하고 그들에게 초청정도 보내고 사람도 보냈습니다. ‘브엘세바에서 단까지’옛 다윗과 솔로몬이 통치하던 모든 지역에 초청장을 보내며 유월절을 지키기를 원했습니다. 그들은 멸망이후 다 흩어지고 얼마의 사람만이 남아 있었습니다. 그들도 하나님의 백성이기에 유월절을 지키는 것이 마땅한 일이었습니다. 히스기야는 남아 있는 자를 그의 형제처럼 대하였습니다.


그들에게 돌아올 것을 촉구하였습니다. 이스라엘이 멸망한 것은 너희의 목이 곧았기 때문이며 하나님의 전을 사모하지 않았기 때문에 비참한 민족이 된 것이라 말하며 그들의 죄의 각성을 촉구하며 돌이켜 하나님의 전에 돌아올 것을 전했습니다. “보발꾼이 에브라임과 므낫세 지방 각 성으로 두루 다녀서 스불론까지 이르렀으나 사람들이 조롱하며 비웃었더라.”

 

여기에 연연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아셀과 므낫세와 스불론 중에서 몇 사람이 스스로 겸손한 마음으로 예루살렘이 이르렀고”몇 사람이라도 돌아온다면 초대는 계속되어져야 합니다. 천국잔치에 하나님의 초대는 계속되고 있습니다. 초청에 응하던 응하지 않던 하나님의 초대는 계속되어져야 하며 우리도 이 일에 동참하여야 합니다. 구원은 하나님이 이루실 일입니다. 거부하는 사람도 있지만 분명 돌아오는 사람이 있을 것입니다. 우리의 부흥의 자리에 주위의 사람들이 끊임없이 계속 초대될 것입니다.


그 하나님의 초대에 “여호와께 귀순하여”하나님께 ‘손을 내밀면’이라는 말입니다. 하나님의 능하신 팔에 손을 내밀면 하나님의 귀한 역사가 일어날 것입니다. ‘손을 내민다’는 것은 자신을 온전히 여호와께 맡김으로 충성하겠다는 서약입니다. 역대상 29장 24절에는 ‘복종하다’라고 번역이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의 초청에 응답하고 복종해야 합니다. 그래애 구원이 있으며 부흥이 있습니다. 그리고 ‘감동시키사’를 히브리어로 직역하면 ‘하나님의 손에 있었다’란 뜻입니다.하나님의 손은 하나님의 권능과 주권을 상징하는 것이고 자신을 찾는 모든 자에게 선을 베풀고 배반하는 자에게는 진노를 베푸시는 것을 말합니다. 우리는 복음의 양면성을 보아야 합니다.복음 모든 믿는 자에게 하나님의 능력이지만”“십자가의 도는 멸망하는 자들에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받은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고전 1:18) 우리는 이것을 분명히 전해야 합니다. 복음은 모든 사람을 위한 것이지만 구원과 멸망이 있다는 사실을 분명히 전해야 합니다.


3. 성회 중 죄를 범한 자가 있으면 중보해야 합니다. 그들을 바르게 가르쳐야 합니다.

유월절 성회의 축제를 위해서는 제단을 정결하게 해야 한다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리고 이방 신상을 제하여 기드론 시내에서 불 태워버려야 했습니다. 그러한 정결이 있었지만 제사장은 여전히 부족하였습니다. 그래서 성결된 레위인들의 헌신이 있었습니다. 제사장이 성결이 지체되었던 것은 그들이 혼합적인 신앙의 삶을 살았기 때문입니다. 백성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열정이 적었기 때문이라고 풀이됩니다. 오늘날도 교회의 지도자들이 각성해야 할 부분입니다. 지도자들이 더욱 성결해져야 합니다. 늘 준비되어져 있어야 합니다.


성회 중에 “에브라임과 므낫세와 잇사갈과 스불론의 많은 무리는 자기들을 깨끗하게 하지 아니하고 유월절 양을 먹어 기록한 규례를 어긴지라” 우리는 성경에서 불같은 하나님의 모습을 봅니다. 정결하지 못한 제사장을 죽이기도 했습니다. 유월절의 부정은 하나님이 기뻐하시지 않는 일이었습니다. 북쪽 사람들은 여로보함 이후에 유월절을 제대로 지키지 않았기에 그 법을 잘 알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래서 범죄했습니다. 우리도 하나님의 말씀을 잘 몰라서 범죄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목사와 성경교사가 필요합니다. 사람들을 부단히 바른 길로 인도할 수 있는 방법을 알고 있어야 하며 가르쳐야 합니다. 백성들이 성도들이 죄악에 들지 않도록 잘 준비되어져 있어야 합니다.

 

백성들이 범죄하였을 때 히스기야는 그들을 위해 중보했습니다. 우리에게는 중보자가 필요합니다. 히스기야의 기도에 하나님은 응답하시고 그들을 고치셨습니다. 이것이 바로 중보기도의 능력입니다. 다른 사람이 범죄하여 벌을 받았을 때 중보기도를 통하여 고침을 받을 수가 있습니다. 우리는 중보기도의 능력을 믿습니다. 모세는 광야에서 목이 곧은 이스라엘 백성을 위하여 많은 중보기도를 했습니다. 그럴 때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심판을 미루시고 그들을 구원했습니다.


부흥의 때에는 중보기도의 능력이 더욱 강하게 나타나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중보기도자로 부름을 받았습니다.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여 왕같은 제사장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 데서 불러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이의 아름다운 덕을 선포하게 하려 하심이라.”(벧전 2:9) 우리는 하나님의 능력을 들어내야 합니다. 어두움의 백성을 빛으로 인도해 내어야 합니다. 우리는 영적인 제사장입니다. 우리의 영역은 기도를 통하여 더욱 확장되어 감을 믿습니다. 히스기야 시대의 부흥에도 한 사람의 중보가 많은 사람을 살렸습니다. 우리도 많은 사람을 살리는 하나님의 사람되기를 예수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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