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가복음

칠병이어의 기적

어저나 2009. 4. 19. 21:56

칠병이어의 기적 (막 8 : 1 ~ 10) (2009. 4. 19)

 

‘골든벨을 울려라’는 한 동안 재미있게 보던 프로그램 중에 하나였습니다. 학창 시절 ‘장학 퀴즈’라는 프로그램을 연상시키며 지나간 시절을 되돌아보기도 합니다, ‘장학퀴즈’는 주일 오전에 예배드리기 전 시간대를 비슷하게 하며 끝나고 교회에서 성가대 준비하면 시간이 맞았던 걸로 기억합니다. 장원하면 대학 등록금이 주어지기에 한 번 쯤 참가해보고 싶었으나 기회가 전혀 닺지 않았습니다. 사실대로 말하면 실력이 안되서였죠. 전교에서 내노라하는 학생들만 뽑히기 때문에 제가 참석하면 학교 망신시키다고 기회가 주어지지 않았습니다.

 

그래도 교회에서 성경퀴즈하면 빠지지 않았습니다. 제 큰 누나의 맏아들 즉 조카가 ‘전기’쪽으로 공부하고 있었는데 교회에서 불이 들어오는 부자를 만들었습니다. 퀴즈대회 할 때마다 난리였습니다. 얼굴 붉히는 일도 있었습니다. 그 때 퀴즈대회에 자주 등장하는 문제가 ‘오병이어’와 ‘칠병이어’의 문제였습니다. 방금 전 성경을 읽었기에 자신들 있죠. 문제 내겠습니다. ‘오병이어’에서 몇 바구니 남았나요? 몇 광주리 남았나요? 몇 명 먹었나요? 문제가 없는 듯 합니다. 근데 그 때는 해석하면서 성경을 읽지 않았습니다. 너무나 당연히 이 사실을 믿음으로 받아들였다는 사실입니다. 믿음은 어릴 때 쉽게 형성되고 고착화되나 봅니다.

 

우리는 ‘오병이어’와 ‘칠병이어’를 별개의 사건으로 인식하며 성경을 확실히 믿습니다. 기적이라는 것은 믿음이 있어야 체험합니다. ‘병 고침’ ‘방언’ ‘환상’ 이런 것들은 구원과는 별개의 문제 일 수 있지만 간절히 사모하는 사람들에게 더 많이 나타나는 사실임은 인정합니다. 그럼 예수님이 이런 기적을 베푼 궁극적인 이유가 무엇인지를 살펴보는 것도 신앙에 큰 도움이 되리라 생각합니다. 우리는 기적의 결과에 관심이 많습니다. 그래서 성경퀴즈는 좋기는 하지만 몇 명, 몇 바구니, 몇 광주리 때문에 싸움이 벌어져서는 되지 않습니다. 우리는 기적의 본질에 주목해야 합니다. 기적을 베푼 이유와 기적의 의미를 밝혀보아야 합니다.

 

이 기적의 중심에 사랑과 긍휼의 예수님을 만날 수 있습니다.

2절 “내가 무리를 불쌍히 여기노라. 저희가 나와 함께 있은 지 이미 사흘이매 먹을 것이 없도다.” 말씀 자체에 예수님의 사랑이 묻어 있습니다. 5장 34절 “예수께서 나오사 큰 무리를 보시고 그 목자 없는 양 같음을 인하여 불쌍히 여기사 이에 여러 가지로 가르치시더라.” 하나님의 인간 사랑은 예수님을 통하여 파악할 수 있습니다. 무리들을 그냥 지나치지 않으시고 말씀을 주시고, 병든 자를 고치시고, 베 고픈 자들을 먹이시고, 마음의 병을 치유하시는 주님의 손길은 사람을 사랑하시는 사랑의 주님의 큰 모습을 바라보게 하십니다. 바로 기적의 중심에 사랑이 있습니다.

 

기적은 복음입니다.

사람들은 기적과 복음을 떼어 놓고 이야기하려고 합니다. 믿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기적은 복음입니다. 아멘! 기적을 통하여 예수님을 만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기적은 통로의 역할을 합니다. 영광의 주님, 사랑의 주님을 만나게 해 줍니다. 우리의 신앙과 믿음을 강화시켜 주는 역할을 담당하기 때문입니다. 과대포장해서도 않되지만 과소평가해서는 더더욱 안됩니다. 기적을 통하여 예수님은 자신이 하나님의 아들되심을 충분히 보여 주셨기에 기적은 복음으로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오늘 이 말씀을 통하여 발견할 수 있는 원리를 세 가지로 말씀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첫째, 예수님은 의식주 중에 가장 중요한 것은 식의 문제임을 아셨습니다.

지금 시대는 ‘다이어트 광풍의 시대’입니다. 저는 이제 연예인의 프로필이 가짜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남자는 키를 많이 속이고 여자는 몸무게를 많이 속이더군요. 이효리 프로필 상으로는 45kg, 실제는 52kg 이더군요. 남자는 몸짱이 인기이더군요. 하여튼 먹지 않는 시대인 것 같지만 몸에 좋은 거라면 무엇이라도 먹는 시대입니다. 저는 이 시대를 잘 이해할 수 없습니다. 먹는 것이 힘들어 교회에서 고기 국 먹고, 처음으로 카레를 먹었습니다. 중화요리 집에서 짜장면, 짬뽕, 팔보채 등 교회가 없었다면 아마 제재로 먹지 못했을 것입니다.

 

예수님의 시대에는 지금 보다 제가 어릴 적 보다 더 먹을 것이 부족하지 않았겠습니까? 예수님의 그들의 필요를 아셨습니다. 그들이 광야에서 사흘을 함께 했으니 그들의 먹을 것이 떨어졌다는 사실을 주목하셨습니다. 그들을 그냥 보내 실 수 없었습니다. 그들을 불쌍히 여기시고 축사하셨습니다. 그들은 배불리 먹었으며 일곱 광주리나 남았습니다. 풍성한 식탁 교제 뒤에 남게 하셨다는 것은 풍성함입니다. 남도록 축복하시는 사랑의 주님을 만날 수 있습니다.

 

둘째, 같이 있을 때 보다 떠나보낼 때 더 아름답게 하시는 것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사람들을 보면서 닭살 돋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헤어질 때는 웬수가 되더군요. 마무리 정리가 정말 중요합니다. 교회에서 행사할 때에도 마무리가 중요합니다. 마무리가 안 돼 은혜 받고 난 다음 더 멀어지는 경우를 본 적이 있습니다. 주님은 이들을 말씀으로만 먹이 신 것이 아니라 마지막으로 풍성한 식탁으로 끝맺었다는 사실입니다. 아마 그냥 돌려보냈다면 투덜거리는 사람이 있지 않았을까요?

 

소중한 추억이 남겨질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떠날 때 멋있게 보내는 사람이 바람직합니다. 헤어지저라도 아름답게 헤어질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셋째. 요즘 말로 cool 하신 예수님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베푸시고 난 다음 바라시지 않으셨습니다. 오늘도 예수님은 “저희를 흩어 보내시고 제자들과 함께 배에 오르사 달마누다 지방으로 가시니라.” 저는 말씀을 그대로 보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곧바로 떠나셨습니다. 바라시지 않으시는 예수님이십니다.

 

싱가폴에 가장 큰 교회인 시티하베스티 교회의 목사님은 하나님을 ‘기억상실증’에 걸리신 하나님으로 표현했습니다. 처음에는 신성모독 아닌 가? 하는 의문이 들었습니다. 이사야 43장 25절 “나 곧 나는 나를 위하여 네 허물을 도말하는 자니 네 죄를 기억지 아니하리라.”

히브리서 8장 12절 “내가 저희 불의를 긍휼히 여기고 저희 죄를 다시 기억하지 아니하리라.” 회개하면 다 용서해 주시고 기억하시지 아니하시는 하나님을 찬양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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