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가복음

바리새인들의 누룩

어저나 2009. 5. 9. 13:21

바리새인들의 누룩 (막 8 : 1 ~ 21) (2009. 5. 10)

 

예수님은 누룩을 크게 두 가지로 비유하시고 계십니다. 첫째는 마태복음 13장의 천국 비유에서 사용하고 있으며, 둘째는 바리새인들의 교훈을 비유로 말씀하고 있습니다.

 

천국 비유에서의 누룩

“또 비유로 말씀하시되 천국은 마치 여자가 가루 서 말 속에 갖다 넣어 전부 부풀게 한 누룩과 같으니라.” 이 비유는 바로 앞의 겨자씨 비유와 연결되어져서 설명되어 질 수 있습니다. 겨자씨는 천국의 외형적 성장에 대한 표현이고 누룩은 천국의 내재적 성장을 잘 묘사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예수님이 이 땅에 가장 먼저 선포하신 복음입니다.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느니라.”

 

‘누룩’은 빵을 굽기 위한 전 단계로 반죽을 부풀게 하는 효소인데. ‘가루 서 말’은 대개 한 번 반죽할 때 사용하는 평균적인 양이라 보입니다.(창 18:6). 누룩에 누에 보이지 않지만 보이지 않는 파급 효과 때문에 흔히 악한 것의 상징으로 많이 사용됩니다(눅12:1;마 16:6;막8:15;고전 5:6;갈 5:9). 그러나 여기서는 그러한 의미가 아니라 하나님 나라의 강력한 영향력을 표현한 것입니다. 겨자씨의 비유가 '외적인 성장'을 표현한 것이라면 누룩의 비유는 ‘내재적인 능력의 확장’을 표현한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두 경우에 있어서 공통적인 것은, 하나님의 나라가 작은 것으로부터 시작한다는 것이며, 특히 누룩의 비유에서 중요한 것은 그 영향력을 파급시키는 방식이 스스로를 거창하게 겉으로 드러내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겉으로 드러나는 영광을 추구하지 않고 자신을 산화시켜 대의를 이루는 사람들에 의해서 하나님의 나라는 부지불식간에 실현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본다면 누룩은 자신의 고유한 속성을 통하여 안으로부터 일어나는 변화의 주역이라 할 수 있습니다. 말씀이 내안에서 더욱 큰 하나님의 나라를 일으켜 가는데 역할을 한다는 말씀입니다. 맛있는 빵을 굽기 위해서는 꼭 필요한 존재입니다. 그래서 천국의 누룩이 내안에서 역사를 하기위하여 내 자신의 의지적 노력도 필요합니다. 에베소서 4장 21절 “진리가 예수 안에 있는 것 같이 너희가 과연 그에게서 듣고 또한 그 안에서 가르침을 받았을진데 너희는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 가는 구습을 쫓는 옛 사람을 벗어버리고 오직 심령으로 새롭게 되어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사람을 입으라.” 아멘! 이렇게 됨으로 내안에 하나님의 나라는 더욱 커지리라 확신합니다.

 

바리새인의 교훈으로서의 누룩

예수님께서는 마가복음 8장 15절 “삼가 바리새인의 누룩과 헤롯의 누룩을 주의하라.” 말씀하면서 누룩이란 말을 부정적인 의미로 사용하셨습니다. 신약의 다른 곳에서도 누룩은 악한 것들(고전5:6-8)과 악한 교리들(마16:6-12)을 상징합니다. 그리스도 즉 누룩 없는 고운 밀가루를 그 내용으로 취하는 하나님의 왕국의 실재인 교회는 누룩 없는 떡이어야 합니다. 고린도전서 5장 7-8절 “너희는 누룩 없는 자인데 새 덩어리가 되기 위하여 묵은 누룩을 내어버리라 우리의 유월절 양 곧 그리스도께서 희생이 되셨느니라. 이러므로 우리가 명절을 지키되 묵은 누룩도 말고 괴악하고 악독한 누룩도 말고 오직 순전함과 진실함의 누룩 없는 떡으로 하자.” 이 말씀들을 살펴보며는 ‘누룩’은 ‘거짓 교훈’ ‘이단 교리’ ‘외식적 언행’ 등 말과 행동의 불일치성을 의미합니다.

 

종교 지도자들의 위선은 오늘만의 문제는 아닙니다. 예수님 시대에 사두개인들과 바리새인, 중세 시대에 교황과 신부들 오늘날 축복만 강조하고 그리스도의 피 묵은 복음을 증거 하지 않는 모든 사람을 일컫습니다. 자기의 생활에 급급하여 그리스도의 참다운 정신을 증거 하지 못한다면 복음의 능력을 상실한 것이고 실제적 복음의 파괴력을 상실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 얼마나 가슴 아픈 일입니까?

 

누룩의 문제점은 은밀하여 보이지 않고 들어온다는 사실입니다.

6세기에 공식적으로 형성된 로마 카톨릭(여자로 상징됨)은 많은 이교도의 실행들과 이단적인 교리들과 악한 것들을 그리스도에 관한 가르침들과 혼합시켜 기독교의 내용 전체를 부풀게 했습니다. 이것은 계시록에 나오는 일곱 교회들 중 네 번째 교회인 두아디라 교회에 해당합니다. “그러나 네게 책망할 일이 있노라 자칭 선지자라 하는 여자 이세벨을 네가 용납함이니 그가 내 종들을 가르쳐 꾀어 행음하게 하고 우상의 제물을 먹게 하는도다.”(요한 계시록 2장 20절) 결국 누룩이 들어갔다는 것은 은밀한 방법으로 푸풀리게 했다는 말씀입니다. 오늘날 우리는 이 부분에 대해 깊이 생각해야 합니다. 있지도 않는 일들을 마치 있는 것처럼 말하는 사람이 많이 있습니다. 이 때문에 교회는 사회로부터 더 비판받고 격리되어 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네게 두어 가지 책망할 것이 있나니 거기 네게 발람의 교훈을 지키는 자들이 있도다. 발람이 발락을 가르쳐 이스라엘 앞에 올무를 놓아 우상의 제물을 먹게 하였고 또 행음 하게 하였느니라. 이와 같이 네게도 네골라당의 교훈을 지키는 자들이 있도다.”(계 2:14) 버가모교회에게 하신 말씀입니다.

 

우리는 이 말씀들에 대하여 보며 몰래 들어온 이단 사상을 경계해야 합니다. 우리가 알지 못하면 우리를 죽일 수도 있습니다. “개구리를 쉽게 삶는 방법아시죠.” 서서히 온도를 올려가야 합니다. 약도 마찬가지입니다. 먹을수록 내성이 점점 커져갑니다.

 

누룩은 희생입니다.

천국비유에서 나오는 누룩은 희생입니다. 자기를 통하여 맛있는 빵을 만들어내기 때문입니다. 내 안에서 누룩은 거짓 교훈이 아니라 생명력 있는 말씀이 되어야 합니다. 그래야 예수님이 말씀하신 천국을 이루어낼 수 있습니다. 바리새인의 누룩이 되어서는 절대 안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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