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가복음

눈 먼 자를 고치시는 예수님

어저나 2009. 5. 16. 18:38

눈 먼 자를 고치시는 예수님 (막 8 : 22 ~ 26) (2009. 5. 17)

 

“눈이 번쩍 뜨이는 이야기 해 주세요. 재미 있는 이야기요.” 어릴 때 어머니에게 했던 말입니다. 어릴 때 어머니는 저에게 옛날 이야기를 해 주셨답니다. 그리고 그 이야기를 절반 쯤 듣고는 잠이 들었습니다. 매일 듣는 이야기였지만 싫지 않았습니다. 아마 제 기억에는 초등학교 들어가기 전 이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눈이 번쩍 뜨이는 이야기가 아니라 눈이 감기게 하는 이야기였지만 돌아보니 행복한 일이었네요.

 

심봉사는 다시 청이를 만난 충격에 놀라서 눈이 뜨입니다. 다 지어진 이야기지만 아이들은 신비롭다는 듯 이야기를 계속 듣고 잊어버리고 다시 듣고 또 듣고 그렇게 커 갑니다. 우리도 예수님이 수많은 병자를 고치신 이야기를 듣고 잊고, 또 듣고 잊고 계속 반복합니다. 그러다 어느 날 갑자기 그것을 이야기로 받지 아니하고 ‘표적’으로 받으며 그것을 자신의 체험으로 간직하게 됩니다. 신앙은 ‘반복훈련’ 일 때가 많습니다. ‘기도 훈련’ ‘찬양 훈련’ ‘전도 훈련’ 신앙의 요소에는 반복적인 것들이 너무 많이 있습니다. 그런데도 싫증나지 않는 것은 그 안에 빠지면 헤어나지 못하는 그 무엇이 있다는 말입니다. 매력이 있습니다. 남들이 알지 못하는 ‘하나님과 예수님과 나의 이야기’가 있습니다.

 

연예를 해보면 알지요. ‘러브 스토리’ 남이 들으면 하나도 재미없는 이야기인데도 혼자 계속 이야기하게 되지요. 사랑을 실패해도 그 사랑이야기도 실패의 이야기가 아니라 훈장보다 더 빛난 그 무엇이 되지요. 그 이야기를 밤새워 하기도 한답니다. 아마 다 경험이 있으시겠지요. 슬픈 사랑 이야기가 아니라 소중한 생명의 이야기가 된답니다.

 

오늘 예수님이 눈을 고치시는 말씀을 보면서 ‘내 눈도 고쳐 주소서’ 전 사실 기도하다가도 잊어버리고, 잊어버리고, 잊어버리고 하지만 예수님이 한번 만에 고치시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보면서 위안을 얻습니다. ‘신유 집회’에 가보면 여기 저기서 나음 받았다고 말하는데 정작 고쳐지지 않는 자신을 보면 실망스럽기도 하지만 그래도 예수님은 일하고 계십니다. 여전히 수많은 병자를 치료해 주시고 계십니다. 오늘 ‘눈 먼 자를 고치시는 예수님’을 통하여 우리도 역시도 영적, 육적 눈이 활짝 열려서 우리를 사랑하시는 예수님을 만나시기를 예수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이 말씀을 통하여 얻을 수 있는 진리는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 눈 먼 자에게는 안내자가 필요했습니다.

당연한 말입니다. 여기에서 소경에게는 예수님에게 인도할 사람이 필요했습니다. 다르게 보면 이 소경은 복이 넘치는 사람입니다. 자신의 의지와 상관이 없이 다른 사람이 그를 예수님께 인도했기 때문입니다. 아무튼 이 소경은 ‘땡 잡은 사람’입니다. 성경에는 남의 도움으로 복은 받은 사람이 나옵니다. 지붕을 뜯어내려 예수님을 만나게 해 준 중풍병자, 백부장의 하인, 수로보니게 여인의 딸, 등 자신의 믿음이 아니었으나 치유의 축복을 경험한 사람들에게는 안내자가 있었습니다. ‘헬렌 켈러’에게는 ‘설리반’이 있었습니다. 우리 삶에서 바른 인도자를 만나야 합니다. 정말 필요한 사람을 만나야 합니다.

누구를 만나느냐에 따라 인생이 바뀌어 집니다. 저는 감사한 게 어린 시절 예수님을 만났는데 제 옆에는 믿음의 친구들이 있었습니다. 이 친구는 평생에 저의 보물들입니다. 교회에 나와서 하나님과 예수님을 만났다는 것은 큰 축복입니다.

 

둘째, 예수님은 치유의 표적을 보여 주셨습니다.

예수님은 말씀 한 마디로 풍랑을 잠잠케 하셨습니다. 말씀 한 마디로 귀신을 쫒아내셨습니다. 말씀도 안 했는데도 귀신들이 두려워 떨었으며 귀신들이 사람으로부터 나왔습니다. 그런 예수님이 이 소경에게는 그 당시에 병을 고칠 때 사람들이 사용하던 방법대로 침을 바르고 계십니다. 이것은 예수님이 권능이 없어서가 아니라 그 사람의 믿음의 상태를 보시고 행하신 일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도 치유의 표적을 보여주는 줄 믿습니다. 미신적인 행위가 아니라 믿음으로 역사하고 계십니다. 내 안에 치유의 확신을 통하여 병을 치유해 나가십니다. 여러분 병원에 가서 병을 고침 받는 것이 믿음이 적은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오늘날에 훌륭한 의사들을 우리에게 보내셨습니다. 약을 복용하는 것이 믿음이 적은 것이 아닙니다. 이것은 또 하나의 징표일 수도 있습니다. 의사의 말을 신중하게 믿음으로 받아들일 때 병 고침이 일어납니다. 어떤 사람은 의사보다 더 많이 아는 사람들이 있는 데 이들에게는 병이 잘 낫지 않습니다. 말을 안 듣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각 시대 마다 표적을 주시고 계십니다.

 

이 소경도 가만히 보면 예수님이 말씀하신대로 잘 따르고 있습니다. 우리는 우리를 좋은 곳으로 인도하는 사람들의 말에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자신의 의지대로 자신의 기준대로 살다가 낭패를 당할 수가 있습니다. 하나님은 시대마다 세우신 사람들을 통하여 말씀하시기도 하십니다. 말씀에 귀 기울시고 따르면 하나님의 축복이 있을 것이라 믿습니다.

 

셋째. 점진적인 치유과정도 있습니다.

우리는 너무 조급합니다. 빨리 하지 못하면 열 받습니다. 한국인이 다른 어느 나라 보다 더 다혈질적 성격이 강합니다. 저도 그런 경향이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손해 볼 때가 많습니다. 약속을 안 해도 되는데 약속하고 말이 앞서는 경향이 많기 때문입니다. 오늘 말씀에 보면 소경이 한 번 만에 치유된 것이 아니라 성경에는 두 차례의 연속적 과정을 거칩니다. 점진적으로 치유되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예수님이 병자를 고칠 때에 이런 모습은 성경에 잘 나오지 않습니다. 아람 군대장관 나아만도 일곱 번 요단강에 씻었을 때 문둥병이 사라졌습니다. 좀 시간이 지나더라도 참아야 합니다. 모든 사람이 한 번에 치유되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우리도 소망을 가지고 인내해야 합니다.

 

이 말씀을 영적인 과정에 비유해 보고 싶습니다. 신앙을 까먹는 데는 불과 얼마 걸리지 않습니다. 하지만 회복하는 데는 많은 시간이 걸리게 되어있습니다. 누구나 ‘영적 침체’를 경험합니다. 그런데 이 회복이 싶지 않다는 말입니다. 그럴 때 하나님은 점진적 과정을 통하여 치유해 주십니다. 다른 이의 신앙이 자라지 않는다고 조급해 하지 마십시오. 시간이 필요합니다. 그동안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믿음으로 지지해 주고 기도해 주며 기다리는 것입니다. 영적 회복이 더디게 일어납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분명 회복시키시고 치유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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