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의 편지

세례의 의미

어저나 2009. 5. 15. 16:39

세례의 의미 (롬 6: 3 ~ 4) (2009. 5. 17)

 

무릇 그리스도 예수와 합하여 세례를 받은 우리는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 받은 줄을 알지 못하느뇨. 그러므로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음으로 그와 함께 장사되었나니 이는 아버지의 영광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심과 같이 우리로 또한 새 생명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함이니라.”(롬 6:3~4)

 

신앙인이 건너야 할 강(물) 세 가지가 있습니다. 첫째는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지시하심을 받아 떠날 때 건넜던 유프라테스강입니다. 이것의 의미는 믿음으로 강을 건넜다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에게 있어서는 유프라테스강이 ‘믿음의 강’이었습니다. 둘째는 이집트에서 탈출한 이스라엘 사람들이 지났던 홍해입니다. 이들은 욕망과 좌절의 땅에서 벗어마 구원과 생명의 땅으로 가기 위한 징표를 얻었던 곳입니다. 우리는 이를 ‘세례의 강’이라 부를 수 있습니다. 물을 지났다는 의미는 구원의 징표로 해석되어지고 물을 통과함으로 죄를 벗어났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 ‘세례의 강’을 지났다고 완전한 구원이 임하는 것은 아닙니다. 성경 출애굽기나 민수기를 보면 그들이 ‘죽음의 땅’ 이집트에서 해방은 되었으나 광야에서 하나님을 원망함으로 불순종함으로 많은 이들이 가나안 땅 ‘생명의 땅’으로 들어가지 못하였음을 볼 수 있습니다. 우리 역시도 세례를 받았다고 그냥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는 없습니다. 우리에게도 훈련의 장인 ‘광야’가 놓여 있습니다. 이 광야를 어떻게 보내느냐에 따라서 하늘나라의 상급이 크게 달라지게 될 것입니다.

 

셋째 ‘요단강’입니다. 이 세상에 살고 있는 누구나 다 건너야할 강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렇게 가고 싶어 했던 ‘축복의 땅’, ‘생명의 땅’에 들어가기 위해서 꼭 건너야할 강이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 중에 광야에서 하나님을 원망하고 대적하고 불평한 모든 사람이 멸한 40년이 지나서야 들어갈 수 있었던 땅이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을 의지하고 하나님의 능력으로 요단강을 마른 땅같이 건널 수 있었습니다. 우리 역시도 믿음의 사람으로 그리스도와 연합하였다면 이 강을 마른 땅과 같이 찬송의 노래를 부르면서 건널 갈 줄 믿습니다.

 

오늘 제가 여러분에게 드릴 말씀은 믿음의 강을 건넌 여러분들이 믿음의 사람으로 거듭났다면, 믿음의 강을 건넌 사람이라면, 이제 옛사람을 벗어버리고 새사람으로 거듭난다는 징표로 세례를 받게 되기를 원해서입니다. 물론 이 중에는 대다수가 세례를 받으셨겠지만 그래도 다시 한 번 세례의 참된 의미를 되새기고 앞으로 어떤 자로 살아갈 것인지를 각오하는 시간이 되기를 바라고, 아직도 세례를 받지 않으신 분들은 세례를 통하여 자신의 믿음을 공중 앞에서 고백하고 믿음의 사람으로 거듭남을 확인하시기를 소망하는 마음으로 이 말씀을 전합니다. 성경에는 다 죄사함의 징표로 세례를 받았습니다. 세례 요한이 “죄사함을 받으라”고 하면서 세례를 베푸셨습니다. 예수님도 세례를 베푸셨으며 제자들도 죄사함의 세례를 베풀었습니다. 베드로의 설교를 듣고 자신들이 그리스도를 죽인 줄 깨닫고 “형제들아 우리가 어찌할고”라 했을 때 죄사함의 세례를 선포했고 그들은 세례를 받음으로 그리스도인으로 거듭났습니다. 그리고 그들도 그리스도의 제자가 되었습니다. 여러분들도 세례를 통하여 거듭나는 사람되기를 소망하며 말씀을 전합니다.

 

여러분 물로 세례를 받음과 동시에 성령의 세례도 경험할 수 있습니다. 이는 꼭 동반하는 것은 아니지만 물 세례와 성령세례가 동시에 이루지는 것을 성경을 통하여 알 수 있습니다. 여러분들은 물 세례와 성령의 세례가 동시에 이루어질 간절히 소망합니다. 세례받기를 소망하십시오. 사모하는 자들에게 구원의 징표로 계속 부어주시리라 확신합니다.

 

세례는 크게 네 가지의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첫째는 그리스도와의 연합을 의미합니다.

그리스도와의 연합은 참으로 신비스러운 일입니다. 성경에는 그리스도를 우리의 신랑으로 우리는 그의 신부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결혼’ ‘결합’은 남녀 모두에게 신비스럽고 비밀스러운 일입니다. 그리고 이것은 신령한 의식입니다. 현대에 들어서 결혼이 혼탁해지는 것은 이 신비롭고 비밀스러운 체험들이 일어나지 않고 육체의 소욕으로만 이루어지게 때문에 나타나는 현상입니다. 우리는 이 부분에서 바르게 알고 바르게 지켜나가야 합니다.

 

원래 우리는 이방인이었고 구원 밖의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생각하라 너희는 그 때에 육체로 이방인이요, 손으로 육체에 행한 할례당이라 칭하는 자들에게 무할례당이라 칭함을 받는 자들이라. 그 때에 너희는 그리스도 밖에 있었고, 이스라엘 나라 밖의 사람이라. 약속의 언약들에 대하여 외인이요, 세상에서 소망이 없고 하나님도 없는 자이더니”(엡 2:11, 12) 우리는 구원과는 상관없는 멸망 받을 수밖에 없는 어둠의 자식, 진노의 자식들 이었습니다. 그런데 우리의 신분에 큰 변화가 있게 되었습니다. “이제는 전에 멀리 있던 너희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그리스도의 피로 가까워졌느니라.”(엡 2:13) ‘그리스도의 피(보혈)’로 우리가 화평의 사람으로 변화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형제 자매가 되게 되었습니다.

 

우리와 하나님 사이의 중간에 막힌 담을 허신 분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우리는 그리스도로 인하여 합하여 지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분명 하나님의 자녀가 되기 위해서는 그리스도와 합하여지고 연합하여야 합니다. 오늘 로마서 6장 3절 말씀에도 예수와 합하여 세례를 받은 우리는 그와 함께 장사되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은 우리의 죄악덩이가 그리스도의 피로 정결하게 되었다는 말씀입니다. 세례 받은 자들은 그리스도와 연합하게 되었으며 그 죄가 그리스도의 피로 정결하게 되었음을 믿어야 합니다. 그래야 그리스도의 피의 효력이 나타납니다. 그래야 우리가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사는 새 생명의 삶을 경험하게 되어집니다. 새 생명, 새 창조된 피조물의 경험을 이루게 됩니다. 이것은 놀라운 소식이며 기쁨의 소식입니다. 그리스도와 연합한 자만 누릴 수 있는 큰 축복입니다.

 

둘째는 그리스도의 의로 인침을 받았다는 것을 의미합니다.(갈 3:27)

누구든지 그리스도와 합하여 세례를 받은 자는 그리스도로 옷 입었느니라.” 세례를 통하여 새 생명을 얻게 된 사람은 성령의 사역으로 구원의 인치심을 확증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리스도로 옷입었느니라”는 표현은 ‘세례 받은 자’의 또 다른 표현입니다. 여기에서 ‘옷 입었느니라’ 원어의 의미는 일반적으로 ‘겉옷을 입는다’의 의미로 사용되는 것을 바울 사도는 롬 13장 34절의 경우와 같이 새로운 인격과 연합된 삶의 모습을 나타내는 의미로 사용하였습니다. 여기에서 옷 입다는 것은 하나님의 전신 갑주를 입는다는 것이며(엡 6:11~17) 구원의 옷을 입는 다는 말씀입니다.(사 61:10 “내가 여호와로 인하여 크게 기뻐하며 내 영혼이 나의 하나님으로 인하여 즐거워하리니 이는 그가 구원의 옷으로 내게 입히시며 의의 겉옷으로 내게 더하심이 신랑이 사모를 쓰며 신부가 자기 보물로 단장함 같게 하셨음이라.”

 

우리는 세례를 통하여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취하게 되었으며 구원의 옷을 입게 되었습니다. 이제 우리에게 어두움의 영들이 역사하지 못할 것이며 그리스도의 의의 영광을 취하게 될 것임을 선포합니다.

 

셋째는 세례를 통하여 부활의 소망에 동참하게 됨을 의미합니다.(골 2:12)

“너희가 세례로 그리스도와 함께 장사한바 되고 또 죽은 자들 가운데서 그를 일으키신 하나님의 역사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 안에서 함께 일으키심을 받았느니라.” 우리는 삶은 이 땅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이제 출발의 삶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영원한 삶의 시작선 상에 있다는 말씀입니다. 만약 우리가 이 땅에서의 삶이 끝이라면 우리는 도덕적, 윤리적인 선행과 자신의 선의지를 통하여 충분히 보상받고 칭찬받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에게는 이 땅의 삶보다 더 중요한 하늘나라의 삶이 있기에 더욱 행복합니다.

 

하늘나라의 삶은 죽음으로부터 시작되는 것이며 그리스도의 재림의 날 영광스러운 부활을 통하여 완성되어집니다. 우리가 재림을 소망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바로 영원한 천국의 삶이 기다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왜 수많은 사람이 자신의 삶을 드리며 그리스도께 헌신합니까? 자신의 목숨을 바치면서 그리스도를 따라갑니까? 바로 죽음 뒤의 부활을 바라보기 때문입니다. 이 확신은 그리스도와 연합되어졌을 때 확신할 수 있습니다. 무릇 세례 받는 모든 이는 부활의 산 소망되신 그리스도를 따르기를 기원 드립니다.

 

넷째는 세례를 통하여 하나님을 찾아갈 수 있게 합니다.(벧전 3:21)

“물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이제 너희를 구원하는 표니 곧 세례라. 육체의 더러운 것을 제하여 버림이 아니요 오직 선한 양심이 하나님을 향하여 찾아가는 것이라.” 세례 그 자체가 구원 받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제가 강조하고 싶은 것은 ㅁ물로 세례를 받았다고 해서 모두가 다 구원받았다고 말해서는 되지 않습니다. 그리스도와의 온전한 연합이 이루어져야 구원이 임하게 됩니다. 세례는 오직 그리스도께서 정하신 까닭에 심령의 죄를 씻어내는 것입니다(히 10:22 “우리가 마음에 뿌림을 받아 양심의 악을 깨닫고 몸을 맑은 물로 씻었으니 참 마음과 온전한 믿음으로 하나님께 나아가자.”) 세례를 통하여 죄의 씻음을 통하여 그리스도인은 선한 양심을 소유하게 되고 하나님을 찾게 된다는 말씀입니다. 세례를 통하여 더욱 구원을 소망하며 하나님께 충성하는 성도가 되어야 합니다.

 

우리는 세례를 통하여 이루 헤아릴 수 없는 축복을 경험하게 됨을 말씀을 통해 배웠습니다. 세례가 의식적 차원에 머물러 있으면 우리에게 아무런 효과가 없습니다. 믿음으로 받고 그리스도와 참된 연합을 통하여 남들이 보지 못하고 바라지 못하는 하늘나라를 경험하고 체험하는 성도님 되시기를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리스도의 편지'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이 산지를 내게 주소서"  (0) 2009.06.05
영문의 밖의 길 - 예수께 나아가자  (0) 2009.05.22
힘들 때 자연을 보라  (0) 2009.05.08
만민 평등의 복음  (0) 2009.04.30
마르다와 마리야의 헌신  (0) 2009.04.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