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가복음

주님의 파루시아 경험

어저나 2009. 6. 13. 12:49

주님의 파루시아 경험 (막 9 : 1 ~ 13)                       (2009. 6. 14)


한국의 초대 교회 목사님들 중에 임박한 그리스도의 재림(파루시아)을 기대하면서 살아갔던 선배들을 만날 수 있습니다. 손양원, 길선주, 주기철 목사님 등 이루 헤아릴 수 없는 믿음의 선각자들이 있었습니다. 손양원 목사님은 저녁에 붉은 노을이 질 때에 주님이 재림하시는가 하여 버선발로 마당으로  내달렸다 합니다. 그는 임박한 재림을 기대하면서 일생을 주님께 드렸습니다. 세상의 모든 것에 가치를 두지 않고 오로지 십자가의 신앙으로 자신의 아들을 죽인 사람을 양아들로 삼아 목사님으로 키워내는 위대한 사랑의 사람이었습니다.


많은 목사님들이 지금이 말세의 때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리스도의 재림이 임박하였다고 설교합니다. 저도 동일하게 말씀을 전합니다. 그런데 여기에 있는 문제점은 ‘현실을 망각한 종말론적인 사고방식’과 ‘현실 속에 갇혀져 있는, 현실에 안주하면서 그리스도의 재림을 기대하지 않는 사고방식’입니다. 이 둘은 양 극단을 달리고 있습니다. 서로의 견해가 극명하게 차이가 나 서로에게 상처를 줄 수도 있습니다.


종말론적인 신앙이 한국교회를 부흥하게 만들었다는 사실을 부정할 수 있는 분은 아무도 없습니다. 한국교회가 일제의 식민지 통치를 받으면서 교회가 외적, 내적으로 성장하게 된 것은 암울하고 의지할 곳 없는 식민지의 백성들에게 희망과 용기를 부러 주었습니다. 그래서 놀라운 성장의 과정을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1930년대 ‘이용도 목사님’란 분이 계십니다. 그는 ‘결핵’을 갖고 있었습니다. 33세의 잛은 나이로 생을 마감하였지만 그는 눈물의 선지자로 많은 이들에게 사랑으로 다가섰던 인물입니다. 목사님에 대한 평가는 극명하게 나누어져 있습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식민지 조선인들에게 사랑으로 그리스도의 말씀을 증거 했습니다. 그 역시 재림 사상에 확고한 의지를 가지고 말씀을 전했습니다. 임박한 종말론적인 사고가 잘못이라고 말하는 것은 큰 잘못입니다. 다만 현실을 망각한 극단적인 사람들이 문제이지 모든 그리스도인은 임박한 종말론적 신앙으로 주님의 재림을 준비해야 합니다. 준비하지 않고 있다가 주님의 재림을 맞이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1. 파루시아(재림)은 하나님의 권능입니다.

주님은 분명하게 말씀하십니다. “또 저희에게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여기 섰는 사람 중에 죽기 전에 하나님의 나라가 권능으로 임하는 것을 볼 자들도 있느니라 하시니라.” 예수님도 임박한 종말론적인 생각을 가지고 계셨음을 볼 수 있는 대목입니다. 제자들 그리스도의 재림을 이루기 위해 복음을 전했습니다. 우리가 경험하게 될 ‘파루시아’는 일시적 현상이 아니라 영원히 이루어질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이 축복된 나라를 기다리고 있을 뿐만 아니라 이루기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때와 기한은 아버지가 결정하신다’ 라고 주님은 말씀하셨습니다. 이 영역은 하나님 안에서 이루어질 일입니다.


재림은 분명 하나님의 온 세계와 온 인류를 죄와 사망에서 해방시키는 하나님의 권능임을 확신합니다. 인간의 힘으로는 도무지 이룰 수 없는 하나님만이 하실 수 있는 일입니다. 이런 놀라운 일을 행하실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이런 권능을 우리는 내 안에서 교회 공동체 내에서 체험할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나라가 이루어질 때 놀라운 일 경험하게 되어 있습니다.


2. 파루시아의 실제적인 모습

파루시아에는 시공간적인 제약을 없음을 말씀을 통해 볼 수 있습니다. 예수님이 변형되어지고 모세와 엘리야가 나타납니다. 이것이 그 증거입니다. 또 완전히 변화된 새 모습입니다.  “그 옷이 광채가 나며 세상에서 빨래하는 자가 그렇게 희게 할 수 없을 만큼 심히 희어졌더라.” 인간의 관점에서는 이해할 수 없는 부분입니다. 하늘에서 소리도 들립니다. “마침 구름이 와서 저희를 덮으며 구름 속에서 소리가 나되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니 너희는 저의 말을 들으라 하는지라.” 온전히 변화된 새롭고 놀라운 일들의 연속입니다. 우리도 생활 속에서 파루시아를 경험한다면 정말 행복할 것입니다. 파루시아를 경험하십시오. 준비하십시오. 정말 행복한 하루 하루가 계속되어져 나갈 것입니다.


마가복음에 나타나 있는 파루시아는 완전한 형태가 아닙니다. 일시적인 것입니다. 베드로는 흥분해서 말합니다. 초막 셋을 짓고 여기서 살자고 주님께 말합니다. 주님은 아니다 라고 하십니다. 아직도 할 일이 많다는 것을 말씀하고 계십니다. 아직도 사람들이 자신이 어떤 존재이며 무엇을 위해 이 땅에 왔는지를 명확하게 보여 주어야 했기 때문입니다. 우리도 자신의 파루시아의 경험에 빠져서 많은 일들을 놓처 버릴 수 도 있습니다. 이것은 어떻게 보면 이중적인 모습입니다. 내 몸이 완전하게 변화되지 않았는데 자신의 정결만을 강조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아직도 부분적으로 보고 부분적으로만 알고 있습니다. 우리가 베드로처럼 성급할 수 있습니다. 조심해야 할 부분입니다.


3. 파루시아를 이루기 위해 고난과 멸시를 말씀하셨습니다.

“저희가 산에서 내려 올 때에 예수께서 경계하시되 인자가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날 때까지는 본 것을 아무에게도 이르지 말라” “가라사대 엘리야가 과연 먼저 와서 모든 것을 회복하거니와 어찌 인자에 대하여 기록하기를 많은 고난을 받고 멸시를 당하리라 하였느냐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엘리야가 왔으되 기록된 바와 같이 사람들이 임의로 대우하였느니라 하시니라.” 주님은 자신이 고난과 멸시를 당하고 십자가상에서 인류의 죄를 위해서 죽임을 당하게 될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영광 앞에는 고난과 멸시가 뒤따릅니다.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세상에서 많은 고초와 아픔을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주님이 당하셨듯이 우리 또한 당하게 될 것입니다.


주님의 재림이 기대됩니다. 세상의 모든 것이 밝히 들어나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두렴없는 준비를 통하여 밝히 웃는 그날을 사모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