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의 편지

I Have a Dream

어저나 2009. 4. 14. 16:06

I Have a Dream.(야곱)      창 28:10 ~ 15           ( 2009. 1. 25 )


십대 때에는 ‘구원’이란 단어가 제 인생의 중심 키워드였습니다. 하나님의 구원을 경험하고 감격에 젖어서 많은 시간을 교회와 교회 공동체 속에서 보냈기 때문입니다. 지금 저의 가장 친한 친구 역시 그때 신앙으로 만난 친구들입니다. 지금도 만나서 함께 은혜를 나누고 있습니다.

이십대가 되면서 반항의식이 싹트기 시작했습니다. 교회가 불평등하게 느껴졌습니다. 성장제일주의 흐르면서 교회 내부의 빈부 격차가 심한 것을 돌아보지 않은 채 양적 성장에만 발  맞추어 나갔습니다. 사회의 불평등을 교회는 그대로 지나쳐 버렸습니다. 사회적 약자에 대한 배려 역시 극히 미흡하였습니다. 그래서 ‘해방’,‘혁명’이란 단어가 제 생활 속에서  여과 없이 사용되었습니다. 교회의 뒷자리에 웅크려 앉아 비판적인 삶으로 일관했습니다. 교회에서 청년부 리더의 자리에 있었지만 해결하지 못한 많은 문제를 않은 채 군대로 도피했습니다. 분명 도피였습니다. 그리고 자리에 돌아 왔을 땐 많은 것이 바뀌어져 있었고 현실 속에서 예수님의 삶을 살아야겠노라 결심하면서 한 때 노동자의 삶을 살기도 했습니다. ‘해방’과 ‘혁명’은 저에게 같은 뜻으로 이해되어졌고 공공연히 교회에서 학교에서 강의하기도 했습니다. 예수님은 이 땅에 분명 해방자로 오셨음이 분명하였지만 저에게 있어서는 삶의 문제로만 이해되어져 있었습니다. 이십대의 뜨거움은 십대의 하나님의 부르심으로 응답되어졌고 결국 신학대학원의 진학으로 마무리 되어졌습니다.


신대원의 진학 전후 많은 정신적인 고통으로 영혼이 거의 만신창이였습니다. 다시 주님 앞에 무릎 굻기 시작했고 ‘오직 성경으로’의 정신으로 되돌아가기로 결심했습니다. 성경적인 교회를 만들겠다고 주님 앞에 기도했습니다. 청교도 정신의 모토인 “성경이 말하는 것까지 말하고 성경이 말하지 않는 것은 말하지 않는다.”, “개혁된 교회는 개혁되어져야 한다.”는 모토 위에 발을 내딛었습니다. 삼십대는 ‘개혁’이라는 용어가 삶의 핵심적 가치로 자리 잡게 되었습니다. 그러던 중 주님은 많은 시련 중에 특수 선교에 발을 딛게 하셨으며 십 수 년 동안 지금의 자리에 인도하셨습니다.


벌써 사십대 중반, 삼십대의 ‘개혁’의 모토는 많이 허물어진 게 사실입니다. 삶의 문제 생활고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많이 돌아왔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제 저는 꿈을 꿉니다. 선지자 요엘의 말씀을 듣습니다. “말세에 내가 내 영으로 모든 육체에게 부어 주리니 너희 자녀들은 예언할 것이요 너희의 젊은이는 환상을 보고 너희의 늙은이는 꿈을 꾸리라.”예언, 환상(이상, 비전), 꿈 모두 미래에 관계된 것입니다. 남자나 여자, 유대인이나 이방인, 아들과 딸, 젊은이와 늙은이 모두가 미래를 밝히 보게 되며 그것을 바라보며 하나님께 담대히 나아감을 보여줍니다. 목적이나 방향성을 잃은 수많은 사람들에게 하나님은 미래를 보여주시고 함께 하시고자 원하심입니다. 예전에도 비전을 말해왔지만 이제는 더 확실한 꿈과 비전의 사람으로 거듭나기 위해 기도하며 살아갈 것을 다짐하고 있습니다. 우리 교회 공동체 역시 하나님이 보여 주시고 들려주시는 하나님의 음성에 귀 기울여 주시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이제 하나님은 나이에 걸맞은 꿈을 보여 주시리라는 확신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하실 수 없어 보일 때 더 강하게 역사함을 생활을 통하여 경험한 바 있습니다. 현재 속에 자신을 매몰시키기에는 사회 경제적으로 어렵습니다. 오로지 하나님의 강권적인 역사를 사모합니다. 

에서와 야곱

성경에는 형제의 이야기가 많이 나옵니다. 성경은 가족의 일상사를 많이 다루고 있기 때문입니다. 거기에는 가족의 애환이나 분쟁, 시기, 다툼의 이야기가 여과 없이 다루어지고 있습니다. 그 중에 대표적인 이야기가 야곱과 에서의 이야기입니다. 이들은 어머니 복주에서부터 다투고 있었습니다. 창세기 25장 23절 “두 국민이 네 태중에 있구나 두 민족이 네 복중에서부터 나누이리라. 이 족속이 저 적속보다 강하겠고 큰 자가 어린 자를 섬기리라.”하나님께서는 정확하게 부모에게 말씀하셨습니다. 해산하여 두 아들을 얻게 되었는데 한 아이는 몸이 붉다 하여 ‘에서’라 불리우고 한 아이는 나올 때 앞 아이의 발을 잡아 나왔다 하여 ‘야곱’이라 불려졌습니다.

그 둘은 자랄 때 외모만 다른 것이 아니고 생활 방식도 차이가 있었고 사고하고 행동방식도 많이 달랐습니다. 에서는 남자답고 호방한 성격의 소유자인 것으로 보입니다. 그는 능숙한 사냥군이었다고 성경은 말합니다. “에서는 익숙한 사냥군인고로 들사람이 되고”거기에 비해 야곱은 “종용한 사람인고로 장막에 고하니”가정적이며 어머니의 사랑을 독차지하면서 살았던 것 같습니다. 문제는 에서에게 있었습니다. 에서는 명분이나 하나님에 대하여 깊이 있게 알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장자의 명분도 팥죽 한 그릇에 팔아 버리고 다른 이방 여인과 결혼 하여 부모의 근심거리가 되었습니다. 그에 비하여 야곱은 하나님의 축복에 대한 열망이 있었고 부모에게 근심을 주지 않았습니다. 야곱은 이기적이었지만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 있었습니다.

결국 아버지의 축복에서 둘은 영원한 이별을 고하게 됩니다. 이제 두 민족의 길로 들어서게 됩니다. 야곱과 어머니 리브가는 공모하여 모든 축복이 야곱에게 돌아가게 됩니다. 에서는 그 분노를 참을 수 없었습니다. 리브가는 에서의 마음에 살기가 가득한 것을 알고 야곱을 자기 친정으로 도망치게 합니다. 리브가는 어머니였습니다. 두 아들인 에서와 야곱을 동시에 잃기 싫었습니다. 어머니 리브가는 간곡히 아들인 야곱에게 말합니다. “내 아들아 내 말을 좇아 일어나 하란으로 가서 내 오라버니 라반에게 피하여 네 형의 노가 풀릴 때까지 몇 날 동안 그와 함께 거하라. 네 형의 분노가 풀려 네가 지기에게 행한 것을 잊어버리거든 내가 곧 보내어 너를 거기서 불러오리라. 어찌 하루에 너희 둘을 잃으랴.”여기에서 몇 날은 이십년이 지난 뒤가 되었습니다. 야곱은 대가족을 이루었고, 에서 역시 많은 무리를 거느리는 족장이 되었습니다. 그들의 화해는 이십년이 지남 뒤에 이루어지게 되었습니다.

야곱의 욕심은 가족과의 이별을 가져왔습니다. 이삭 역시 야곱을 축복하고 밧단아람으로 보내면서 그에게 축복기도를 해 줍니다. 28장 1절에서 4절 “이삭이 야곱을 불러 그에게 축복하고 또 부탁하여 가로되 너는 가나안 사람의 딸들 중에서 아내를 취하지 말고 일어나 밧단아람으로 가서 너의 외조부 브두엘의 집에 이르러 거기서 너의 외삼촌 라반의 딸 중에서 아내를 취하라. 전능하신 하나님이 네게 복을 주어 너로 생육하고 번성케 하사 너로 여러 족속을 이루게 하시고 아브라함에게 허락하신 복을 네게 주시되 너와 너와 함께 네 자손에게 주신 땅 곧 너의 우거하는 땅을 유업으로 받게 하시기를 원하노라.”아버지 이삭은 야곱에게 축복하고 떠나기를 허락합니다.


야곱의 꿈

여기서 야곱이 매우 쓸쓸하게 밧단아람을 향하여 가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그는 브엘세바를 떠나 하루 동안의 긴 여행을 마치고 벧엘에서 첫날밤을 지내게 되었습니다. 그는 거기서 한 돌을 취하여 베개하고 하늘을 지붕 삼아 불편한 하룻밤을 지내면서 즐거운 꿈을 꾸었습니다. 이스라엘 사람이라면 누구든지, 만일 야곱과 같은 꿈을 꿀 수만 있다면 기꺼이 야곱이 베고 잤던 돌베개를 취하려고 할 것입니다. 그때 거기서 그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전능자의 환상을 보았습니다. 그날 밤의 잠은 야곱의 일생 중에서 가장 최고의 잠이었습니다. 


1. 야곱은 꿈에 한 고무적인 환상을 보게 되었습니다(12절).

그는 땅에서 하늘로 이어진 사닥다리를 보았고 그 위에서 천사들이 오르락내리락 하는 것과 그 꼭대기에 하나님께서 친히 서 계신 것을 보았습니다. 이 환상은 다음과 같은 사실을 의미합니다.

첫째, 다름 아닌 하나님의 섭리에 의해서 하늘과 땅 사이에 끊임없는 교통이 이루어지       는 것임을 보여 주고 있습니다. 이 하나님의 섭리는 하나님의 일을 점차로 그리고 한 단    계 한 단계 성취해 나갑니다. 사닥다리 환상은 야곱으로 하여금 그의 모든 출입에 있어서    선 한 안내자와 보호자를 갖게 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함으로써 그에게 매우 시기 적절한    위로를 얻게 했습니다.

둘째, 그리스도의 중보를 보여 줍니다. 그리스도는 바로 이 사닥다리입니다. 그리스도는 인   간의 육체를 입으시고 이 땅 위에 발을 딛고 계시며, 하나님의 모습으로서 하늘 끝에 계십   다. 즉 그리스도께서는 낮아지심으로써 그의 인성을 나타내셨고 존귀케 되심으로써 신성을   나타내셨습니다. 만일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거하시고 우리가 그와 함께 거한다면 그것은   그리스도의 중보에 의해서 이루어지는 일입니다. 이 사닥다리를 의지하지 않고서 하늘에    이를 수 있는 길이란 우리에게 결코 없습니다. 만일 우리가 다른 방법을 통하여 하늘에 오   른다면 우리는 절도이며 강도인 셈입니다. 우리 구주께서 하나님의 사자들이 '인자 위에    오르락내리락 하는 것'(요 1:51)을 말씀하신 것도 바로 이 환상을 두고 하신 말씀입니다.


2. 야곱은 격려의 말씀을 들었습니다.

첫째, 이전에 그의 부친 이삭에게 주어졌던 축복의 약속이 다시금 야곱에게 반복되고 확증   되었습니다(13,14절). 하나님은 야곱에게 자신이 아브라함과 이삭에게 하셨던 그대로 야곱에게   도  행하시리라는 것을 약속하셨습니다.  ㉠가나안 땅이 그에게 상속되었습니다. ㉡그의    후손이 땅의 티끌같이 번성하리라는 것인 그에게 약속되었습니다. ㉢땅의 모든 족속이 그   로 말미암아 축복을 받을 메시야가 그에게서 나오리라는 약속이 첨가되었습니다.

둘째, 새로운 약속이 야곱에게 주어졌습니다.  ㉠야곱은 형 에서로부터 당할 위험 때문에 불   안해 했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그를 지키시겠다고 약속하신 것입니다. ㉡야곱은 지   금 홀로 알지 못하는 길을 지나 미지의 땅으로 가야 하는 먼 여행길을 눈앞에 두고 있습니   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그에게 '내가 너와 함께 있어'라고 말씀하십니다.  ㉢야곱은 미처   알지 못하였으나 하나님께서는 그가 삼촌을 돕는 일에 얼마나 많은 어려움을 겪어야 할지   를 미리 아시고서 그가 어디로 가든지 그를 보호하시겠다고 약속하십니다. ㉣야곱은 지금   먼 곳으로 피신을 가는 중이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그를 다시 이 땅으로 돌아오게    하시겠다고 그에게 약속하십니다. ㉤그는 그의 모든 후원자들에게서 버림을 받은 것 같았   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그에게 '너를 떠나지 아니하리라'는 보증의 말씀을 하십니    다. 하나님께서는 그 사랑하시는 자를 결코 떠나지 아니하신다는 잊었서는 안된다는 것을   확신하게 보여 줍니다.

하나님은 야곱에게 꿈을 통하여 놀라운 생의 미래를 보여주고 확증하고 게십니다. 여기에서 야곱의 꾼 꿈은 우리의 일시적인(현상적인) 꿈이 아니라 미래에 대한 보증입니다. 우리는 이러한 꿈들을 사모해야 합니다.


야곱의 확신적인 삶

야곱이 밧단아람의 이십년 동안의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었던 원동력은 바로 벧엘에서의 꿈 때문이라 믿어집니다. 외삼촌의 결혼에 대한 사기, 열 번이나 임금을 바로 주지 않은 일, 나그네로서의 고향에 대한 그리움 그 모든 것을 이기게 만든 것은 바로 하나님이 보여 주신 꿈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밧단아람에서의 외로운 삶뿐만 아니라 가나안에 돌아와서 형과의 두려운 대면이 있었고, 딸 디나의 강간사건으로 그 자녀들이 세겜 족속을 멸하고 나서 위기 속에서 다시 벧엘로 올라감으로 그의 신앙을 회복하고 꿈을 다시 확증하게 되어집니다.

형제 자매 여러분 우리는 지금 어떤 꿈을 꾸고 있습니까. 하나님이 주신 꿈입니까? 아니면 개인의 사고한 일상적인 바람입니까? 저는 여러분들이 원대한 꿈의 주인공이 되시기를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저 역시 그 사람 중의 한 사람 되었음을 선포합니다. 영광교회는 젊은 교회입니다, 하나님은 많은 것을 보여 주시리라 확신합니다.


I Have a Dream.

이 설교를 준비하면서 참 행복했습니다. 야곱의 꿈과 비슷한 사람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그는 다름 아닌 마틴 루터 킹 목사님 이었습니다. 그의 꿈이 실현되는 것을 보게 되었습니다. 백악관의 새 주인으로 ‘버락 후세인 오바마’대통령이 되었습니다. 흑인인 그가 흑인의 노역으로 지어진 백악관의 주인이 되었다는 사실입니다. 미국 역사의 새로운 지평이 열리는 순간이었습니다. 그 순간I Have a Dream.’이 제 가슴을 요동치며 울려 퍼질 때 눈가에 작은 이슬이 맺혀 있던 것을 느꼈습니다. 가슴도 벅차올랐습니다.

미국의 역사를 보면 거의 100을 주기로 세 번의 커다란 혁명이 있었습니다. 첫 번째는 1775년 대영제국에 대한 독립전쟁, 두 번째는 1861년 노예해방정책의 갈등에 따른 남북전쟁, 그리고 세 번째는 1956년부터 시작된 흑인 인권운동인데 이 인권운동의 중심에 킹 목사님이 계십니다. 그는 1929년 미 조지아주 아틀란타에서 한 신실한 목회자의 가정에서 태어났습니다. 그의 인생의 전환점이 된 사건이 있습니다. 1955년 12월 1일 몽고메리에서 로라 팍스라는 한 흑인 여성이 버스를 타고 가는 중에 백인에게 자리를 양보하지 않았다고 해서 인종차별법 위반으로 체포되어 수감된 것입니다. 분노한 흑인들은 킹 목사를 중심으로 ‘비인간적으로 버스를 타느니 차라리 당당하게 걷겠다’고 하며 381일 동안 버스 탑승 거부운동을 했습니다. 이후 인종차별이 가장 심한 버밍험에서 평화작인 시위를 벌이다 감옥에 갇히기도 했습니다. 그들은 기도하며 아무 말 없이 비폭력 시위운동을 전개했습니다.

1963년 8월 28일 워싱턴에서 모든 종파와 백인 교회까지 연합된 미 역사상 최대 규모의 시위가 있었습니다. 미국 전역에 생중계되었던 이날 마틴 루터 킹 목사님은I Have a Dream.’이란 명연설을 하게 됩니다. 연설문의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 조지아주의 붉은 언덕에서 노예의 후손들과 노에 주인의 후손들이 형제처럼 손을 맞잡고 나란히 앉게 되는 꿈입니다. 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 내 아이들이 언젠가는 피부색이 아닌 인격으로 평가받는 나라에서 살게 되는 꿈입니다. 뉴욕의 장엄한 산맥에서 자유의 종이 울려 퍼지게 합시다.”그의 꿈은 실현되었습니다. 반세기가 지나가기 전에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그의 기도에 대한 하나님의 응답이 이루어졌습니다. 그는 1969년 39세의 짧은 인생을 살았지만 하나님이 그에게 보여주신 ‘꿈’, ‘비전’삶으로 많은 사람에게 확신과 용기를 심어주었습니다. 미국에 흑인 대통령이 탄생되는 바탕에는 킹 목사님의 ‘꿈’이 서려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도 우리에게 이런 놀라운 꿈을 허락하신 줄 믿습니다.


또 한 부분을 소개하겠습니다. “자유가 울려 퍼지게 할 때, 모든 마을, 모든 부락, 모든 주와 도시에서 자유가 올려 퍼지게 할 때, 우리는 더 빨리 그 날을 향해 갈 수 있을 것입니다. 신의 모든 자손들, 흑인과 백인, 유태인과 이교도들, 개신교와 가톨릭교도들이 손에 손을 잡고, 옛 흑인 영가를 함께 부르는 그날이 말입니다.”저는 이부분에 한 대목을 추가하고 싶습니다.“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함께 손에 손 잡고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하여 함께 사는 좋은 세상 만들기에 애쓰는 향기나는 하나님의 편지되길 축복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영광 교회는 하나님이 세우신 교회입니다. 하나님이 원하신 목적과 계획이 있는 줄 믿습니다. 그리고 섬기는 우리에게 합당한 꿈을 주셨습니다. 우리는 이러한 일을 이루기 위해 힘을 다하는 분에게 예수님의 이름으로 선포합니다. “너희는 가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가는 곳곳마다 평안의 복음을 선포하라.” 할렐루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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